히키코모리 1년차 25살 인생 ss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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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392회 작성일 20-01-07 14:20본문
안녕... 올해 25살된 히키코모리야.. 오늘로 딱 일년째 된다... 히키코모리 된지..
일베 눈팅만하다가 혼자 술먹다가 용기내서 내 인생ssul 적어본다.. (히키코모리를 1년차라 필력종범일수있으니 이해해줘)
1. 유치원 시절 (4~7살)
25살이나 먹다보니 그때의 기억은 잘나지않아... 기억나는거 몇가지만 적어볼게..
일단 우리집은 엄마.아빠.5살 아래의 남동생이 있었어..
결론만 말하자면 화목하지 않았어... 절대 그럴수가 없었거든..
우리 아버지는 술을 자주먹었고 술만먹으면 어머니를 때렸어. 이유없이.. 20년정도 지났지만 아직도 기억하고있어.. 그지옥같은 나날들을..
나와 동생은 구석에서 있엇고 동생은 하염없이 울었어.. 애기때니까.. 나는 무서워서 벌벌떨고 있엇지..
다음날이되면 어머니는 멍투성이였고. 집은 엉망진창이였지... 아버지가 잡히는대로 다 집어던졌거든..
2. 초등학생 (8~13살)
내가 초등학교 입학하고 3학년쯤 되니까 아버지의 구타가 나에게까지 찾아왔어.
엎드려 뻐쳐를 시킨다음에 다리하나를 들게했었지.. 그렇게 1시간이고 계속시켯어 이유없이..
그러다가 들고있는 다리가 힘이빠져서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다가 땅에 닿기라도하면 엉덩이를 엄청 맞았어.. 쇠파이프로도 맞아봤고 빗자루로도 맞아봣고..
다음날이되면 내엉덩이는 피멍투성이가 되었었어... 학교가서 의자에 앉아있으면 엄청 아팠었지.. 후끈후끈하고..
집안이 이렇다 보니 내 성격은 갈수록 신경질적으로 변하게 됬어.. 학교에서 약한애들을 괴롭히고 욕하고 그랬엇거든 저학년(2~3학년)때
그러다가 내가 5학년때 내 학창시절에 문제가 발생하게 되..
왕따를 당하게 된거지... 내가 저학년때 괴롭히고 못살게 굴었던애들이 덩치가 커지고 몇몇애들이 뭉치면서 나를 왕따 시키기 시작했어..
왕따.. 그거.말이야... 진짜 안당해보면 모른다..... 맞기도 엄청맞앗어.. 학교끝나고 놀이터 끌려가서도 맞고 쉬는시간에 불려가서 맞고.. 집에서도 맞고..
한번은 방과후에 놀이터에 끌려가서 맞는데.. 지들끼리 때리는걸로 모잘라서 자기 아는동생들 3~4학년짜리 대려와서 때리라고 시키더라..
별수있나.. 맞았지 뭐.. 그 어린놈들 한테.. 그렇게 5~6학년 맞고 왕따당하면서 보냈던거 같다..
3.중학생 (14~16살)
이때가 내 인생중에 정말로 최악의 시절이였던거 같아... 암흑기였지..
중1여름방학때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을 하게되.. 그렇게 술을 드시던 아버지가 주식까지해서 재산을 홀라당 말아먹고 빚까지 지게되거든..
그렇게 합의이혼하고 어머니의 고향인 전라도 군산으로 이사를 가게되.. 나와 동생 어머니 셋이서..
전라도라서 거부감을 느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식구는 아니다.
김대중 개새끼 김일성 개새끼 이번 대선때도 그네찡 찍었다. 그네찡 다이스키!!
외가의 도움으로 17평짜리 임대아파트를 구해서 거기서 세식구가 살게되었고 전학 수속을 밟고 학교를 이사오게되지..
거기서 내 암흑기는 시작되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왕따를 당해 소심해질때로 소심해진 내가 학교를 옴겨서 적응을 잘할수있을까?? 당연히 no다
충청도에서 전학왔다니까 호기심에 달라붙는 2놈이 있엇다... 그놈들이 한 일주일쯤 지나자 물어보더라 좋아하는애 생겼냐고..(남녀공학이였음)
나름 친해졌다고 생각해서 나는 솔직히 "아 김xx 가 이쁘더라" 라고 말을했고 다음날 학교가니 소문이 쫙퍼져있더라.
전학온 xx가 김xx 좋아한다고 얼레리 꼴레리 이런거 있잔아 ㅡㅡ 이때 내가 진짜 전라도가 통수 甲인걸 느꼈다. 그 어린나이에... 홍어 out
그렇게 시작해서 내 왕따생활이 계속 이어졌다.. 초등학교때보다 더 심하게..
맞는거와 놀림은 이제 일상이 되었고..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 새나 "
필자는 남자다 근데 새나 ? 이게 무슨 개소리냐고? 이건 앞글자를 하나 생략한것이다..
"냄새나" ... 정말 치욕적인 별명이다.. 집과 학교와의 거리가 멀어 아침에 지각하기 일쑤였고.. 항상 버스에 내려서 뛰어서 등교하다보니 땀이 날수밖에없었다.
담임인 여선생은 그런나를 조회시간마다 얼차려(엎드려뻐쳐있기)를 주었고 몸은 땀투성이가 되기 일쑤였다.
그 여선생은 내가 왕따를 당하는 사실을 알고있었다. 그러나 아무 조취도 하지않았다. 그시절 학교는 왕따에대해 쉬쉬하는 편이었기에..
그렇게 왕따를 당하다가 중2 여름방학때 다시 아버지에게 동생과 같이 가게된다.. (아버지가 어머니와 다시합치기위해 동생과 나를 미끼로 대려감)
나와 동생은 아버지에게 강제로 다시 살던 충주로 끌려가다시피했고 또다시 전학을 가게되었다....아버지는 일을 해야했으므로
고모네 집에 맡겨지게 되었다...
대우? 예상이 가지않는가? 찬밥신세였다 당연히.
끼니마다 들을수 있는소리는 고모왈" 니네 라면 좋아하지? 라면먹어" 라는 소리와함께 라면을 먹는것이였고.
틈만나면 듣는 잔소리가 " 니네 아버지는 우리집에 10원 한장 안갖다줘 알어? 그런대도 우리가 데리고 있는거야 " 이런 소리였다.
고모네 친척형은 툭하면 나와 내동생을 갈구기 일쑤였다. 무릎꿇히고 나보고 "넌 왜케 살이쪗냐 살좀빼라 컴퓨터게임좀 그만해라"
그시절 나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며 마음을 기댈곳이 없었다.... 오로지 컴퓨터 게임을 할때만이 내 마음의 안식처였다...
결국 어머니의 마음을 돌리지 못하고 아버지는 다시 나와 동생을 중2 겨울방학때 다시 어머니에게 보내게 되었다.
그렇게 다시 개같은 전라도로 전학을 또다시 오게 되었고 또다시 왕따를 당하였다.
3.고등학교 시절(17~19살)
지옥같은 중학교 시절을 마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쓰레기집단 기계공고로... 이전 글에서 내가 안적은게 있었는데.. 나는 중1 여름방학까지 공부를 곧 잘했었다..
초딩 5학년떄 반 2등도 했었으며 중1 중간고사때 42명중 8등(그래도 중위권은 넘지않냐..인문계 갈 실력은 됬었음;;) 였다.
공부에대한 열정과 욕구도 있엇지만 3회에 전학에 의한 수업 진도 부적응. 학교생활 부적응 으로 인해 성적은 점점 하락세를 타게되었다.
중2때 마지막 발악으로 시험기간 매일 학교끝나고 새벽 2시까지 공부를 해본적이있다...결과는 참패였다. 40명중 27등
그이후로 공부를 포기하게 되었고 나의 성적을 밑바닥을 긁다가 결국 쓰레기만 모인다는 기계공고에 입학하게 되었다.
꿈도 희망도 없이 고등학교 생활을 보냈다. 쓰레기같은 학교를 다니다보니 당연히 쓰레기같은 친구들이 생겼고
학교도 밥먹듯이 걸렀다. 아침에 학교간다고 하고 나간후에 피시방에서 시간을떄우다가 집에 들어가기 일쑤였다.
결국 어머니 소환까지 당하게 되고 자퇴서까지 미리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불효도 이런 불효가 있을까.. 아버지없이 나와 동생을 키워내는 어머니를 학교에 안좋을일로 오시게 만들다니..
어영부영 3년을보내고 졸업후 그해 20살 5월 자원입대를해서 군대를 가게되었다.
4.20~25(군대시절.아르바이트생활.히키코모리 1년)
20살 입대를하고 나는 102보를 들어가서 강원도 양구에서 군생활을 하게 되었다.
군대는 계급사회다. 고로 개 병신같은 선임도 선임 대접을 해줘야 하는곳이다.
당연히 훈련병~일병 시절은 힘들다. 갈굼도 많이먹고 욕도 많이먹고 일도 많이하고 ㅋㅋ
상병~병장 ? 재밌다. 좆같을떄도 많지만 재밌었던 기억이 더많이 남는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개병신같은놈은 아니였다.. 근본은 착한놈 이여서 진짜 직접 후임한번 갈군적없다;;(밑후임 시켜서 대신 갈군적은있어도)
군시절중 상병때 간부추천으로 부사관 지원을 고려한적이 있엇다. 그때 정말 고민 많이했었는데..
왜냐하면 대학도 안나왔고 집안형편은 안좋고 동생대학도 보내야하고 배운 기술은없고.. 전역해도 먹고 살만한게 없었기 때문이다.
군대 나온놈은 알겠지만 현역중에 부사관 지원한다고하면 대부분 말린다.. 왜냐..? 군생활을 목표는 대부분 전역이기에..
일베 눈팅만하다가 혼자 술먹다가 용기내서 내 인생ssul 적어본다.. (히키코모리를 1년차라 필력종범일수있으니 이해해줘)
1. 유치원 시절 (4~7살)
25살이나 먹다보니 그때의 기억은 잘나지않아... 기억나는거 몇가지만 적어볼게..
일단 우리집은 엄마.아빠.5살 아래의 남동생이 있었어..
결론만 말하자면 화목하지 않았어... 절대 그럴수가 없었거든..
우리 아버지는 술을 자주먹었고 술만먹으면 어머니를 때렸어. 이유없이.. 20년정도 지났지만 아직도 기억하고있어.. 그지옥같은 나날들을..
나와 동생은 구석에서 있엇고 동생은 하염없이 울었어.. 애기때니까.. 나는 무서워서 벌벌떨고 있엇지..
다음날이되면 어머니는 멍투성이였고. 집은 엉망진창이였지... 아버지가 잡히는대로 다 집어던졌거든..
2. 초등학생 (8~13살)
내가 초등학교 입학하고 3학년쯤 되니까 아버지의 구타가 나에게까지 찾아왔어.
엎드려 뻐쳐를 시킨다음에 다리하나를 들게했었지.. 그렇게 1시간이고 계속시켯어 이유없이..
그러다가 들고있는 다리가 힘이빠져서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다가 땅에 닿기라도하면 엉덩이를 엄청 맞았어.. 쇠파이프로도 맞아봤고 빗자루로도 맞아봣고..
다음날이되면 내엉덩이는 피멍투성이가 되었었어... 학교가서 의자에 앉아있으면 엄청 아팠었지.. 후끈후끈하고..
집안이 이렇다 보니 내 성격은 갈수록 신경질적으로 변하게 됬어.. 학교에서 약한애들을 괴롭히고 욕하고 그랬엇거든 저학년(2~3학년)때
그러다가 내가 5학년때 내 학창시절에 문제가 발생하게 되..
왕따를 당하게 된거지... 내가 저학년때 괴롭히고 못살게 굴었던애들이 덩치가 커지고 몇몇애들이 뭉치면서 나를 왕따 시키기 시작했어..
왕따.. 그거.말이야... 진짜 안당해보면 모른다..... 맞기도 엄청맞앗어.. 학교끝나고 놀이터 끌려가서도 맞고 쉬는시간에 불려가서 맞고.. 집에서도 맞고..
한번은 방과후에 놀이터에 끌려가서 맞는데.. 지들끼리 때리는걸로 모잘라서 자기 아는동생들 3~4학년짜리 대려와서 때리라고 시키더라..
별수있나.. 맞았지 뭐.. 그 어린놈들 한테.. 그렇게 5~6학년 맞고 왕따당하면서 보냈던거 같다..
3.중학생 (14~16살)
이때가 내 인생중에 정말로 최악의 시절이였던거 같아... 암흑기였지..
중1여름방학때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을 하게되.. 그렇게 술을 드시던 아버지가 주식까지해서 재산을 홀라당 말아먹고 빚까지 지게되거든..
그렇게 합의이혼하고 어머니의 고향인 전라도 군산으로 이사를 가게되.. 나와 동생 어머니 셋이서..
전라도라서 거부감을 느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식구는 아니다.
김대중 개새끼 김일성 개새끼 이번 대선때도 그네찡 찍었다. 그네찡 다이스키!!
외가의 도움으로 17평짜리 임대아파트를 구해서 거기서 세식구가 살게되었고 전학 수속을 밟고 학교를 이사오게되지..
거기서 내 암흑기는 시작되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왕따를 당해 소심해질때로 소심해진 내가 학교를 옴겨서 적응을 잘할수있을까?? 당연히 no다
충청도에서 전학왔다니까 호기심에 달라붙는 2놈이 있엇다... 그놈들이 한 일주일쯤 지나자 물어보더라 좋아하는애 생겼냐고..(남녀공학이였음)
나름 친해졌다고 생각해서 나는 솔직히 "아 김xx 가 이쁘더라" 라고 말을했고 다음날 학교가니 소문이 쫙퍼져있더라.
전학온 xx가 김xx 좋아한다고 얼레리 꼴레리 이런거 있잔아 ㅡㅡ 이때 내가 진짜 전라도가 통수 甲인걸 느꼈다. 그 어린나이에... 홍어 out
그렇게 시작해서 내 왕따생활이 계속 이어졌다.. 초등학교때보다 더 심하게..
맞는거와 놀림은 이제 일상이 되었고..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 새나 "
필자는 남자다 근데 새나 ? 이게 무슨 개소리냐고? 이건 앞글자를 하나 생략한것이다..
"냄새나" ... 정말 치욕적인 별명이다.. 집과 학교와의 거리가 멀어 아침에 지각하기 일쑤였고.. 항상 버스에 내려서 뛰어서 등교하다보니 땀이 날수밖에없었다.
담임인 여선생은 그런나를 조회시간마다 얼차려(엎드려뻐쳐있기)를 주었고 몸은 땀투성이가 되기 일쑤였다.
그 여선생은 내가 왕따를 당하는 사실을 알고있었다. 그러나 아무 조취도 하지않았다. 그시절 학교는 왕따에대해 쉬쉬하는 편이었기에..
그렇게 왕따를 당하다가 중2 여름방학때 다시 아버지에게 동생과 같이 가게된다.. (아버지가 어머니와 다시합치기위해 동생과 나를 미끼로 대려감)
나와 동생은 아버지에게 강제로 다시 살던 충주로 끌려가다시피했고 또다시 전학을 가게되었다....아버지는 일을 해야했으므로
고모네 집에 맡겨지게 되었다...
대우? 예상이 가지않는가? 찬밥신세였다 당연히.
끼니마다 들을수 있는소리는 고모왈" 니네 라면 좋아하지? 라면먹어" 라는 소리와함께 라면을 먹는것이였고.
틈만나면 듣는 잔소리가 " 니네 아버지는 우리집에 10원 한장 안갖다줘 알어? 그런대도 우리가 데리고 있는거야 " 이런 소리였다.
고모네 친척형은 툭하면 나와 내동생을 갈구기 일쑤였다. 무릎꿇히고 나보고 "넌 왜케 살이쪗냐 살좀빼라 컴퓨터게임좀 그만해라"
그시절 나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며 마음을 기댈곳이 없었다.... 오로지 컴퓨터 게임을 할때만이 내 마음의 안식처였다...
결국 어머니의 마음을 돌리지 못하고 아버지는 다시 나와 동생을 중2 겨울방학때 다시 어머니에게 보내게 되었다.
그렇게 다시 개같은 전라도로 전학을 또다시 오게 되었고 또다시 왕따를 당하였다.
3.고등학교 시절(17~19살)
지옥같은 중학교 시절을 마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쓰레기집단 기계공고로... 이전 글에서 내가 안적은게 있었는데.. 나는 중1 여름방학까지 공부를 곧 잘했었다..
초딩 5학년떄 반 2등도 했었으며 중1 중간고사때 42명중 8등(그래도 중위권은 넘지않냐..인문계 갈 실력은 됬었음;;) 였다.
공부에대한 열정과 욕구도 있엇지만 3회에 전학에 의한 수업 진도 부적응. 학교생활 부적응 으로 인해 성적은 점점 하락세를 타게되었다.
중2때 마지막 발악으로 시험기간 매일 학교끝나고 새벽 2시까지 공부를 해본적이있다...결과는 참패였다. 40명중 27등
그이후로 공부를 포기하게 되었고 나의 성적을 밑바닥을 긁다가 결국 쓰레기만 모인다는 기계공고에 입학하게 되었다.
꿈도 희망도 없이 고등학교 생활을 보냈다. 쓰레기같은 학교를 다니다보니 당연히 쓰레기같은 친구들이 생겼고
학교도 밥먹듯이 걸렀다. 아침에 학교간다고 하고 나간후에 피시방에서 시간을떄우다가 집에 들어가기 일쑤였다.
결국 어머니 소환까지 당하게 되고 자퇴서까지 미리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불효도 이런 불효가 있을까.. 아버지없이 나와 동생을 키워내는 어머니를 학교에 안좋을일로 오시게 만들다니..
어영부영 3년을보내고 졸업후 그해 20살 5월 자원입대를해서 군대를 가게되었다.
4.20~25(군대시절.아르바이트생활.히키코모리 1년)
20살 입대를하고 나는 102보를 들어가서 강원도 양구에서 군생활을 하게 되었다.
군대는 계급사회다. 고로 개 병신같은 선임도 선임 대접을 해줘야 하는곳이다.
당연히 훈련병~일병 시절은 힘들다. 갈굼도 많이먹고 욕도 많이먹고 일도 많이하고 ㅋㅋ
상병~병장 ? 재밌다. 좆같을떄도 많지만 재밌었던 기억이 더많이 남는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개병신같은놈은 아니였다.. 근본은 착한놈 이여서 진짜 직접 후임한번 갈군적없다;;(밑후임 시켜서 대신 갈군적은있어도)
군시절중 상병때 간부추천으로 부사관 지원을 고려한적이 있엇다. 그때 정말 고민 많이했었는데..
왜냐하면 대학도 안나왔고 집안형편은 안좋고 동생대학도 보내야하고 배운 기술은없고.. 전역해도 먹고 살만한게 없었기 때문이다.
군대 나온놈은 알겠지만 현역중에 부사관 지원한다고하면 대부분 말린다.. 왜냐..? 군생활을 목표는 대부분 전역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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