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학년 여대생 한명 따먹고 버린 썰 9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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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408회 작성일 20-01-09 16:34본문
8부http://www.ttking.me.com/187948
혜정이 멱살을 풀었다. 혜정이가 켁켁 거린다. 난 목이 탔다.
컵에 물을 따랐다. 덜덜덜덜...컵이 식탁에 또 부딪친다. 내 손이 또 바들바들 떨렸다.
내가 극도로 화났다는 증거다. 나는 화가 나도 손을 떨지는 않았다.
이건 다 현주 때문이다.
학교 앞 <목마와 숙녀>에서 혜정의 꾐에 빠져 헤어지자는 나의 말에 현주가 얼굴이 새파랗게 되어
지금 나처럼 손을 바들 바들 떨었었지...
나도..모르게 현주 너를 닮아가는가 보다.
박현주...넌 진짜 나한테 많은 것을 돌려주는구나....
나도 그게 의문이었어. 왜 그렇게 혜정이는 결혼을 서둘렀을까.
꼬였던 실타래가 풀리리면서 흘어졌던 퍼즐의 조각이 맞춰지는 것 같았다.
혜정이가 임신하는 바람에 내가 서둘러 결혼식을 올렸듯이.....
현주는 임신하는 바람에 거꾸로 애를 지우고 서둘러 결혼식을 올렸다........
내가 생명인 아기를 차마 지울 수 없어서 결국 혜정이를 택했듯이...
현주 너는 우리 아기를 지운 죄책감에 서둘러 유시민을 택해 결혼이라는 굴레로 빨리 도피했는지 모른다....
그래..네가 무슨 죄냐..다 내 업이지..
내 아내, 윤혜정, 이 여자와 나 김동민은 살인마다. 그 순간 나는 이혼을 결심했다.
어머니 병세가 점점 악화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병원 가보니 말기암이었다.
이 상태가 되도록 연로한 어머니 못챙기고 뭐했냐고 의사샘에게 꾸지람을 들었다.
혜정이는 맏며느리지만 입원실에 자주 나타나지도 않았다.
그래도 입원한 어머니 병수발을 든 것은 착한 제수씨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사업 망한 후 술에 쪄들어 살았지만 어머니가 말기 선고 받으시고 뒤늦게 약간 정신을 차리셨다
"착한 우리 아들 동민아. 세상 살아가면서..우리가 받아야 할 쓴 잔이 있단다. 피하려고 하면 더 벌주를 받게 될지도 모르지.
초롱이 엄마와 노력하고 잘 살아봐라. 우리 귀한 초롱이... 꼭 잘키워. 엄마 없는 애로 만들지 말아라.
에미가 이제 다 된 것같다..."
"엄마, 왜 자꾸 그런 말을 해.."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가느다란 숨을 힘겹게 내쉬며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내가 혜정이와 이혼을 결심한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현주의 존재는 잘 모른다.
다만 한번은 혜정이가 대판 싸우고 초롱이 데리고 처가로 갔을 때...
우리 집에 오셔서 뜬금없이 나한테 이런 말씀은 하신 적이 있다.
"너 초롱엄마 만나기 전에 사귀던 여자 있었지? 현주라던가...."
어머니는 아버지와 평생 살갑지 않았고... 집안에서도 겉돌았다.
어쩌면 어머니도 나처럼 슬픈 사연이 비슷했을지 모른다. 다 팔자다. ....
내가 혜정이와 싸우고 공허한 눈빛으로 베란다에서 담배를 필 때, 어머니는 어쩌면 내 마음을 다 알고 계셨는지 모른다.
그래, 쓴 잔이다.
내 동생 동호는 저렇게 착한 제수씨와 금슬이 좋지 않은가.
누군가는 받아 마셔야 한다. 어머니는 다음날 새벽에 내 손을 잡고 조용히 숨을 거두셨다.
어머니의 그 말씀은 내겐 그대로 유언이 되었다. 나는 혜정이와 이혼을 포기했다.
초롱이가 유치원에 들어갔다. 피아노에 영어에 뭐 이것 저것 시키는 것도 많았다.
우리 때와 확연히 달랐다. 가까운 데로 이사 온 장모님이 애를 봐줬다.
생활비 모자란다고 징징거리며 혜정이는 요즘 동네 아줌마들 꾐에 빠져서 보험영업하겠다고 난리가 아니다.
"너 보험 그거 아무나 하는거 아냐."
"오빠가 어떻게 아는데?
'내가 옛날에 도서관 공시생 시절에 가슴큰 보험아줌마 따먹어 봐서 잘 알지..넌 다 볍신같은데 가슴만 크잖아'
... .라고 말할 뻔 했다.
문득, 그 시절 한강변을 손잡고 건던 현주 말이 떠올랐다.
"오빠. 회계 공부 했지?"
"응. "
"그럼 대차대조표 알겠네."
"알지.."
"오빠. 그거 알아? 우리 삶에도 대차대조표가 있어. 회계는 차변과 대변이 맞아야 하듯
돈을 빌리면 갚아야 하고..또 잘못하면 반드시 치러야 하지. 그게 삶의 대차대조표야"
삶의 대차대조표.... 그렇구나. 네 말이 맞다.
내가 젊은 날 도서관에 찾아 온 가슴 큰 보험아줌마를 억지로 따먹듯...
가슴 큰 혜정이도 보험영업하다고 그 옛날의 나같은 새끼한테 따 먹힐지 모르지......
난 거구가 된 혜정이의 이중턱을 보면서...
아무리 굶어도 돼지처럼 살찐 널 먹지는 않을것 같네..라는 생각도 들었다.
초롱이의 병세는 잠시 아팠다 다시 호전되었다. 그래서 1년 늦게 초등학교에 갔다.
초롱이의 병은....두 번이나 멀대와의 애기를 낙태한 혜정이의 대차대조표라고 위로했다.
난 1년에 한, 두번인 대학동기 모임에 나간다. 고병달도 나왔다. 반가웠다.
고병달이는 노무현 때 인터넷 사업한다고 깝치다가 제대로 말아먹고 처가가 운영하는 뷔페식당 고용 지배인이 되었다.
"아참, 동민아?"
"왜 쉬발럼아."
"너 박현주씨라고 아니?"
바..박현주...박현주라고...난 가슴이 뛰었다.
애써 태연한척 했다.
"알지, 나 졸업반때 만났잖아. 너도 알걸."
"난 가물가물 해."
"그러니까 넌 골통이지. 쉬발러마."
"전에 우리 뷔페식당에서 무슨 돌잔치 있어서 왔는데 날 보고 어떤 여자가 아는 척 하더라고."
"근데?"
"나보고 혹시 김동민씨 친구 아니냐고 묻더라구. MX 대학교 후배라고"
"그래서?"
"내 이름도 알던데? 공대 앞에서 내가 동현씨랑 자기한테 사진도 찍어주고 그랬대. 그 사진 아직도 갖고 있다고 그러더라 .
근데 난 도통 기억이 없네. 동현씨 자주 보냐고 묻기에 가끔 만난다고 했다"
공대 앞 봄꽃 사진...난 눈물이 핑 돌았다. 맞아.. 현주는 그 사진 평생 간직한다고 했어.
"그래 어떻게 변했디?"
"엉. 키도 크고 늘씬하고 예쁘장하던데.."
"내 연락처라도 알려주지 그랬어. 나도 반가운 애인데..."
"얌마. 혹시 너랑 국빈관 다니면서 따먹은 아줌마인지 내가 어떻게 아냐? 명함 받아놨는데 내가 그 명함 잃어버렸어"
이 쉬발럼아....에휴, 그러니까 네가 영원히 쉬발럼인거야.
"내가 지하 주차장에서 잠깐 뭐 가지러 내려갔는데 거기서 한번 더 만났어. 꼭 좀 동현씨에게 전해달라고 다시 부탁하더라.
자기 몇 달 안에 선교인가 뭐 때문에 다른나라로 떠난다는데한번 가면 한국에는 언제 돌아올지 모른대"
그래서 꼭 한번만 만나고 싶대. "
"남편이랑 까만 에쿠스 타고 가던데. 잘사나봐" 고병달이 덧붙였다.
나는 말없이 담배 한 대를 물었다.
"쉬발럼아. 오늘 뭐해? 끝나고 우리끼리 한잔 더 빨자."
"그래? 뭐 좋은 일있냐? 국빈관 갈려고?"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쉬발럼아."
때로는 술이 취하면 정신이 더 또렷해질 때가 있다.
나는 단골 BAR에서 잭다니엘을 들이키면서 곰곰히 생각해봤다..
다른 나라? .. 선교?... 많이 듣던 얘긴데..
현주도 언젠가 나한테 얘기한 적 있었다. 자기는 언젠가 선교하러 아프리카나 오지 같은 나라로 갈거라고.
오빠도 나랑 결혼하면 함께 가줬으면 한다고.
"오빠야. 이렇게 손을 모아봐, 그리고 눈을 감아. 기도라는 것은 이렇게 진정어린 마음과 자세로 하는거지."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야. 그리고 뭘 그 먼나라까지..."
"오빠. 우리 같이 교회 나가자..."
"아. 싫다고! 난 바퀴벌레와 개독들이 젤 싫어."
아마, 그래서 현주가 토라진적이 있었지. 현주나 그 남편 유시민이나 둘다 집안 자체가 독실한 크리스챤이었다.
맞네. 아마 개독들이 잘하는 선교인가 뭔가 갔을 거 같다.
현주는 혜정에게 내 아이를 지우고 평생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 거라고 했다.
그래, 현주는 아마 그런 마음으로 아프리카나 아마 먼 오지의 나라로 떠났을지도 모른다.
나랑 만날때도 교회 무슨 과정 수강하러 다닌다고 그랬는데... 그러고 보니 그것도 그런 계통 아닐까 싶다..
그 먼나라로 갔다면... 언제올까..현주야. 살아서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끝)
- 에필로그 -
다시 덧없는 몇 년의 세월이 속절 없이 흘렀다.
201X년 어느 토요일날 난 퇴근길에 교보문고에 들렀다. 몇가지 책을 사는데 눈에 띄는 시집이 있다.
김용택의 시집이다. 몇 장을 펼쳐 보니 <젊은 날>이라는 시가 있었다.
이 시를 잘 알지. 얼치기 학생운동 시절 내가 프로파간다로 써먹었던 거거든..
이 시가 마음에 들어 우리 사진을 책갈피 처럼 끼워서 현주에게 선물했었지....난 쓴 웃음을 지었다.
다음날 일요일 아침 몸이 부슬부슬 했다. 혜정이는 초롱이만 두고 친구 만난다고 아침 부터 집을 비웠다.
난 늦게까지 잠을 자며 꿈을 꾸었다. 생생한 그 날의 꿈을 잊을 수 없다.
긴 생머리에 물빠진 청바지를 입은 현주와 내가 환하게 웃으며 손잡고 캠퍼스를 걷고 있다.
내리는 봄 햇살 속에 현주의 화사한 얼굴도 마냥 사랑스럽다. 고병달이가 봄꽃을 배경으로 나와 현주의 사진을 찍는다.
어? 그런데 가만히 보니 현주 옆에 어린 남자 아이가 하나 있다. 초등 4학년이 된 우리 초롱이와 비슷한 나이같다.
자세히 보니 나를 닮았다.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다. 아니, 어린 시절의 나다.
그런데 아이의 표정이 슬퍼보인다. 아이의 모습이 사라진다. 가지마....아이야..제발...
또 장면이 스냅사진처럼 바뀐다. 다시 공대 앞 꽃밭이다.
한눈에 봐도 외부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이과대 쪽에서 천천히 걸어온다. 예쁘장한 중년의 여인이다.
키도 크고 날씬하다. 저 실루엣...혹시...아, 현주다. 분명 박현주였다. 난 붙잡고 싶었다.
나는 총총걸음으로 그 여자 쪽으로 조심스럽게 향했다. 혹시 아니면 어쩌지...맞아. 틀림없어.
아....슬픈 표정으로 한동안 꽃밭을 거닐던 그 여자 옆에 승용차가 한 대 선다. 현주가 그 차에 타려고 한다.
나는 급해서 막 뛰어갔다. "박현주씨.. 현주야!" 목소리가 제대로 안나온다. 목이 메였다.
차는 벌써 교문 밖으로 사라졌다. 분명 까만 에쿠스 였다.
눈이 번쩍 띄였다. 난 벌떡 일어났다. 식은 땀이 났다. 현주는 이미 선교 여행을 떠났을 텐데...
난 갑자기 모교로 가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나는 지방으로 발령 받아 서울 쪽으로 가려면 2시간이 넘는다.
초롱이를 뒷좌석에 태우고 고속도로를 밟는다.
다행히 초롱이는 자라면서 건강을 많이 회복했다.
"애 감기기운이 있는데 그 먼데를 어디라고 데꾸 가요?" 혜정이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일요일 오후의 대학 캠퍼스는 한산했다.
기숙사 학생들로 보이는 애들이 풀밭에 앉아서 재잘 거린다. 봄 햇살이 잔잔히 내린다.
그 옛날..그 시절처럼.. 내 생애 가장 빛나는 그 봄 날처럼...나는 초롱이 손을 잡고 현주와 사진을 찍던 공대앞을 거닐었다
"초롱아. 아빠가 여기 다니던 학교야."
"와, 아빠 학교 참 크다. 우리 학교 100배 만해."
"초롱아. 너도 너 네반에 좋아하는 남자애 있지?"
"응, 있어. 아니없어. 아니 몰라."
"초롱아."
"왜 아빠?"
"넌 나중에 사랑하는 남자 만나면 꼭 놓치지 말아."
"놓치지 마는게 어떤 건데?"
"엉. 남자가 너 싫다고 해도. 한번만 더 얘기하고.. 한번만 더 꾹 참고 더 기다리는거야. 먼저 결혼하지 말고...
그러면 언젠가 그 남자가 너에게 돌아 올 수도 있어."
"응. 알겠어. 아니, 잘 모르겠어. 그런데 아빠. 왜 울어?"
어느덧 서산 너머로 노을이 지고 있다.
"초롱아. 엄마 화내겠다. 빨리 가야겠다."
우리가 붉게 물드는 저녁 노을 볼 때마다 슬픔에 잠기는 것은 누구나 한번쯤 사랑의 실패를 겪어서 그럴지 모른다.
나는 다시 노을을 바라봤다. 먼 하늘 저편에서 현주가 웃고 있었다. .
그래, 나도 이제 쓰레기 같은 자학의 방탕생활을 정리하자.
혜정이와도 노력할거야. 현주, 이제 내 마음에 너도 지워야겠지. 그리고 나도 너처럼 부끄럽지 않게 살거야.
우리 착한 현주야, 지금쯤 지구 저편 어디쯤에 있니.. 그 때 나 너무 미안했어. 꼭 건강하고 행복해야 해.....
나는 교회는 안다니지만 난생 처음으로 초롱이 손을 잡고 노을지는 공대 캠퍼스에서
그 옛날 현주가 알려 준대로 두손을 모아 기도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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