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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들도 생각보다 정(情)이 많다고 느낀 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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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370회 작성일 20-01-09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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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99년부터 2001년까지 공익요원으로 인천시 모 구청에서 근무했는데,
그때 후임으로 들어온 후배가 하나 있었다.
키도 크고 멀끔하니 잘 생긴데다 나중에 알고보니 전국체전에서 인천시 태권도 대표로 출전한 경력도 있는 녀석이었다.
나이도 동갑이고 해서그럭저럭 친하게 지냈는데, 자주 대화를 나누다보니 이 친구의 비밀스런 집안 사정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그의 막내 작은 삼촌이 인천에서대표적인 투망파(실제 이름에서 한 글자를 변형시킴)의 부두목이라는 게 아닌가.
그래서 자기도 어린 시절부터 투망파 보스를 알고 지냈고,
그에게서 조직에 들어오기만 하면 카페 하나를 차려주겠다는 말도 들었다고 한다.
그 후배는 공익을 마치자마자 조직 생활 을 할 거라며 꿈에 부풀어 있었다.
나는 속으로 한심하다 생각하며, 말려보려 했지만 녀석의 뜻이 워낙 굳건했고,
솔직히 그 녀석의 삶 이니 내가 무슨 말을 하랴 싶어 몇 번 만류하다 말았다.

어느 날인가 후배의 집에 간 적이 있었다.
퇴근하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져 그 후배가 자기 집에 들러서 우산을 가져가라는 것이었다.
후배 집이구청에서 아주 가까웠거든.
비 맞고 가는 것보다는 나을 듯해, 후배 집에 들르기로 했다.
그런데 그 집에서는 포커판이 벌어 지고 있었고, 거기에 투망파의 보스도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본 거물 조폭이라 어찌나 떨리던지, 지금도 그때 오싹하던 기분이 생생하다.
그 집에 잠깐 있었지만 보스는 부두목(후배의 삼촌)에게 담배 심부름을 시키는가 하면, 거침없이 욕설을 내뱉었다.
보스도 그렇지만, 부두목도 내가 보기에 나이마흔은 넘어 보였다.
저 나이에 조폭한다고 저런 대접을 받고 있나 생각하며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우산을 빌려 후배 집에서 나오는데, 후배가 그런다.
"저건 약과예요. 저 분, 술만 취하면 골프채로 저희 삼촌을 후려 갈기는걸요."

소집해제를 하고 나서는 그 후배와 연락이 끊겼다.
다시 대학 3학년으로 복학을 하고 열심히 학교를 다녔지만 가끔 한 번씩 후배 생각이 났다.
그 친구는 잘 지내고 있으려나. 그렇게 졸업을 하고 직장 생활을 하던 어느 주말, 결혼식이 있어 인천 송도에 있는 L호텔에 들렀다.
그런데 거기 로비에 후배가 있는 것이 아닌가! 무려 7년만이었다.
내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신세계파와 전쟁 중인데 비상 대기 명령을 받고 호텔에 나와있단다.
안타깝게도 그 후배는 정말 투망파에 들어간 것이다.
후배는 껄껄 웃으며,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 데 호텔 지하 바에서 술이나 한 잔마시자고 했다.
나도 반갑기도 하고, 뒷이야기도 궁금해서 흔쾌히 그를 따라갔다.
그때가 토요일 낮이라 바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카운터 바에 딱 한 사람이 앉아 위스키를 마시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그 사람과 두 자리 정도 떨어 져서 자리를 잡았다.
한동안 술을 마시며 옛 이야기에 정신이 없는데, 문이 짤랑 소리를 내며 열리며 누군가 들어온다.
그러자 대번에 후배의 얼굴이 시뻘개졌다.


"저희랑 전쟁 중인 신세계파 놈이요."


새로 들어온 녀석도 내 후배의 정체를 파악한 모양이었다.
순식간에 바에는 전운이 감돌았다. 나는 안절부절 어찌할 바를 몰랐다.
괜히 조폭 간의 다툼에 말려들어서 뼈도 못 추리게 생겼구나, 온몸이 달달 떨렸다.
후배와 신세계파 조직원은 어느새 서로를 딱 노려보고 서 있었다.
그런데,
우리보다 먼저 와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던 남자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아닌가.
삼십대쯤으로 보이는 남자는 웅크리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서 있는 걸 보니 엄청 건장했다. 남자가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서울에서 인천 내려왔는데, 여기서도 이 지X이야. 좋게좋게 풀자고.
나도 이 바닥 생활하는 사람이니 피차 주먹밥 먹고 사는 사람끼리 안면이나 틉시다."


원래 조폭들은 '생활'이라는 말을 잘 쓴다. 아마도 서울에서 활동하는 조폭인가 보다. 후배가 먼저 살기를 풀고 말했다.


"나 투망파 최요."


후배와 대치하고 있던 상대 조폭도 입을 연다.


"신세계파 김이요."


그러자 서울 조폭도 자기 소개를 시작했다.


"나 초코파 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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