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동안 컴퓨터게임만하다 4년동안 버리고 다시 잡은 내 인생사.ss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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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404회 작성일 20-01-07 17:51본문
나는 1994년 5월 27일생이다.
이제 갓 스물이다ㅋ 어리면 어린나이지만 학생들사이에서는 그래도 많다
... 많킨 뭘
그런데 난 이 20년 인생중 15년을 게임으로 채웠다. 그것도 거의다 나 혼자
그냥 그 썰을 이날밤 한번 풀어보고 싶었다. 고전게임 방송을 보다가 잠이 들었는데 문득 그 생각이 나더라구
패미컴게임... 금성오락기 게임.. 트윈비.... 뽀빠이.. 머피... 태권도장....쿵푸.. 배틀시티... 그속의 오락기...
그러나 이 게임들은 내가 10년전에 했고 나태어나고 10년후에야 즐겼던 게임중 일부고....
나의 게임에 대한 기억은 내 처음 기억이 시작된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 그전에 나한테 친구가 없었음을 밝혀둔다
어렸을때 엄마가 나한테 뭐라 많이해서.. 내가 많이 쫄았더라구.. 그래서 소극적이게 되었고
결정타는 2001년, 나의 사랑과 관심의 표현이 됐던 어느 여학생에게의 키스가 엄청난 구박과 욕지거리, 그리고 많은 성격변화와
수없이 흘리던 눈물이 될줄은 몰랐다.. (웃긴게 이후 초등학교다닐때 1년에 한번씩 여자애한테 무작정 키스를 더 했다. 그냥 날 봐달라 그런 표현이었던거 같다
하지만 이게 준성추행인줄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심지어 2학년때 같은학원 여자애 엉덩이를 만져서 그애가 학원을 끊을때도 몰랐는데....)
그래서 게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없다. 그래서 내가 게임에 적당히 미쳤나보다. 어릴때 매일 게임을 했지만 밤은 한번도 샌적이 없다.
게임을 더 재밌게 즐기는걸 포기하고 내방식대로 갔다가 대세라는 스킬트리 루트에 밀려 얼마못가 게임에 신물이나고 접는 형식이었다.
뭐.... 그렇게 난 게임상에서도 왕따였다. 게임하면서 사귄친구가 오프라인에서도 온라인에서도 없는 셈이었다....
.
1998년이라고 했지.. 그때 컴퓨터로 처음 게임한게.. 아니 게임보다는 엔터테인먼트 같은거였는데
티몬과 품바게임, 마술학교, 그리고 파퓰러스라는 전략게임이었는데 이게임은 최근에 알았다.
부족을 키워서 다른부족을 점령하는 게임이었는데 난 맵에서 돌아다니는 노숙자같은걸 바다에 빠트려 하늘로 올라가는걸 보고 재밌어했다가 아빠한테 혼났지
롤러코스터 타이쿤도 있었고.. 주타이쿤도 있었지만 확실히 롤코보단 재미없었다.
또 어깨너머로 게임을 보기도 했다. 사촌누나가 하던 바람의나라를 시작으로
저때 난 아버지가 빨간모자쓴 미국사람과 원시부족사람이 싸우는 게임을 하는걸 지켜봤었는데 이게 알고보니 아랑전설3이였다. 캐릭터는 테리와 죠였고..
그러다 2001년경. 바람의나라랑 크레이지아케이드를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다.
바람의나라는 아까말한 사촌누나가 하던걸 옆에서 지켜보고 따라했던건데 초보자사냥터에서의 무한 토끼와 다람쥐레이드. 그리고 쥐굴, 서생원, 뱀굴 이런걸
이때 처음 경험했나 보다. 처음엔 내가 도적을 했던걸로 기억하는데 땅을 가르는 마법을 쓰는걸 보고 도적이 마법도 쓰는걸 신기해했다.
그러다 주술사를 키우고 여동생은 도사를 키웠는데 이 세아이디가 전부 20을 못넘겼다. 심지어 6학년때 다시 새로 만든것도 20의 고지를 못넘겼다.
왜냐하면 당시 20을 넘기면 돈을 받았다. 그런 단순한 이유였다.
저때 조랑이의 만화일기같은걸 재밌게 봤다. 또 다꾸라는 바람의나라 커뮤니티에서 몇컷안되는 스크린샷으로 짜집기한 야인시대 같은것도 보고... 지금보니 정
말 별거아니다
그리고 크레이지아케이드... 이게 오락실 겜을 본뜬줄 몰랐다.
그래도 재밌게 했다. 난 처음엔 모스를 애용했는데 왜 가장 뚱뚱하고 못생긴 배찌를 골랐는지 이해가 안됐다. 나중엔 나도 배찌를 쓰긴 했지만..
나랑 동생이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는데 그때 처음본 2p시스템. 아이디어 진짜 좋더라
나랑 동생이랑 경쟁하듯이 풍선을 터트리고 놀았는데 결과적으로 동생이 가장 아이디를 많이 키웠다. 은색표창 빨3인가? 그까지 갔다.
그러나 그닉은 이제 없다. 7년후에 다시 찾으려고 한적이 있는데 아이디가 아예 삭제됐나보다.
테트리스도 있고, 히든캐치도 진짜 꿀잼이었는데 원래 크레이지아케이드 하나에 여러가지 게임을 집어넣자는 작전이었나 보다. 또 기억안나는 폭탄퐁인가도 있
었고..
그러나 이 세가지 게임은 오래가지 못하고 지금은 물풍선놀이만 남아있다.
.
2004년. 한창 크레이지 아케이드로 사촌지간과 1대1로 붙고 이랬을때
사촌누나가 처음보는 게임을 보여줬다. 옷을 힙합스타일로 입고 권투장갑을 낀 누나의 캐릭터가 사막에서 멧돼지를 잡고 있었다. 메이플이었다.
당시 누나의 레벨은 23.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누나는 전사임에도 불구하고 인트를 10포인트나 찍었었다.
난 그게임에 매료되어 게임을 시작하였다. 저때가 메이플아일랜드의 어떤건물이 메인화면을 차지하고, 서버가 10개도 안되던 때였다.
스탯은 무조건 4/4 아니면 4/5 이걸 맞추기 얼마나 어렵던지... 그걸 시작으로 메이플은 날 사막세계는 물론 잔디밭의 마을이랑 깡촌도시에도 가봤고
고목나무에서 뛰놀고있는 점액덩어리랑 바위밑에서 돌아다니는 나무밑둥을 잡으며 경험치를 쌓았다.
시작은 전사였다. 법사는 그때 너무 내가 인내심이 없었다. 마나가 10초에 3씩 쌓여서 8이되고 그걸 에너지볼트로 쏴서 슬라임한테 한방먹이는것이 정말 오래걸
렸고
난 그냥 한방한방이 에너지볼트 공격력인 전사를 선택하기로 했다.
그러나 내 기억으로는 레벨이 22가 되자마자 해킹을 당했다. 내가 쫄딱... 벗는건 면했으나 돈이랑 그동안 모은 아이템들이 다 털려있었다.
그래서 아이디를 새로 파서 만든 전사캐릭 닉네임이 레벨 22짜리 내 전아이디의 후손이라는 뜻의 '22의후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이가 없다.
또 저때 대세라는 도적도 같이 키웠는데 이 두아이디도 30을 못넘겼다. 하여간 저때는 2차전직하는 애들이 드물었다.
사촌형은 법사로 성장하여 그때당시 정말 인기가... 없었던 불법사를 했다. 심지어 그중에서도 버려진 스킬인 포이즌물방울을 6이나 찍어놓은 망캐였다.
그러나 법사가 초반에는 어렵지만 후반에는 초강캐라는것을 알고있기에 형이 저정도 성장한걸 보고 난 불화살을 한방먹일때마다 네자리수의 데미지가 나오는
형의 캐릭터를 신기한듯 쳐다보았다.
저때가 2005년 중반쯤, 냄비뚜껑으로 방어를 하고 작메와 7장의 주문서를 바른 노가다장갑이 고가에 거래되던 시절이었다.
.
형의 아이디를 빌려서 해봤다. 내가 넣던 데미지와는 차원이 달랐다. 게이머들은 이 데미지를 더 높이고 그런 쾌감을 얻기 위해 게임을 하는걸지도 모른다.
난 그 불타는 활을 이끌고 루디브리엄 탑을 탐사했는데.. 더... 더... 더... 내려가다가 지구방위본부라는곳에 도착했다.
그런데 귀환서가 없었다.. 그냥 여기에 꼼짝없이 갇힌 셈이였다. 설상가상으로 그쪽의 적들은 장난감마을 곰인형이랑 목각기사들보다 훨씬 강했다.
저때 내가 형에게 큰 죄를 진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죽고싶었다. 현실과 전혀 동떨어진, 게임속 세상 때문이다. 부모님 그리고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국민들은
메이플 세상에서 무슨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고 산다. 그러나 난 이 가상세상때문에 현실의 감정을 지배당하게 된 것이다. 그런 때가 있었다. 지금도 약간 그러
지만
다행히 형이 자유시장에서 귀환서를 사서 다시 장난감마을에 도착하는 바람에 평생 감옥처럼 사는건 면하게 됐다.
그후 35에서 시작됐던 형의 아이디는 봉을 바꾸고, 망토를 달고, 새옷을 맞추기 시작했고
최종적으로 내가 접었을때가 57쯤인걸로 기억한다. 그까지 키웠다.
뭐 메이플에서는 이외에도 많은 아바타를 만들었다. 궁수만 3개를 만들고. 여캐도 만들고 또 그때 캐시상품이었던 메소레인저 복장이 끌려서
그것만 입는 도적캐도 만들었다. 그러나 내가 만든 아이디는 모두 30을 넘기진 못했다. 오히려 동생쪽 아이디에서 30을 넘긴 아이디가 나왔고 그동생, 그후로 8년
이 지난
작년 아니 올해 1월 1일에 만렙캐릭을 만들었다. 뭐 그달말에 만렙이 다시 확장되어서 동생도 이젠 질려버렸다고 말하지만....
이제 갓 스물이다ㅋ 어리면 어린나이지만 학생들사이에서는 그래도 많다
... 많킨 뭘
그런데 난 이 20년 인생중 15년을 게임으로 채웠다. 그것도 거의다 나 혼자
그냥 그 썰을 이날밤 한번 풀어보고 싶었다. 고전게임 방송을 보다가 잠이 들었는데 문득 그 생각이 나더라구
패미컴게임... 금성오락기 게임.. 트윈비.... 뽀빠이.. 머피... 태권도장....쿵푸.. 배틀시티... 그속의 오락기...
그러나 이 게임들은 내가 10년전에 했고 나태어나고 10년후에야 즐겼던 게임중 일부고....
나의 게임에 대한 기억은 내 처음 기억이 시작된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 그전에 나한테 친구가 없었음을 밝혀둔다
어렸을때 엄마가 나한테 뭐라 많이해서.. 내가 많이 쫄았더라구.. 그래서 소극적이게 되었고
결정타는 2001년, 나의 사랑과 관심의 표현이 됐던 어느 여학생에게의 키스가 엄청난 구박과 욕지거리, 그리고 많은 성격변화와
수없이 흘리던 눈물이 될줄은 몰랐다.. (웃긴게 이후 초등학교다닐때 1년에 한번씩 여자애한테 무작정 키스를 더 했다. 그냥 날 봐달라 그런 표현이었던거 같다
하지만 이게 준성추행인줄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심지어 2학년때 같은학원 여자애 엉덩이를 만져서 그애가 학원을 끊을때도 몰랐는데....)
그래서 게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없다. 그래서 내가 게임에 적당히 미쳤나보다. 어릴때 매일 게임을 했지만 밤은 한번도 샌적이 없다.
게임을 더 재밌게 즐기는걸 포기하고 내방식대로 갔다가 대세라는 스킬트리 루트에 밀려 얼마못가 게임에 신물이나고 접는 형식이었다.
뭐.... 그렇게 난 게임상에서도 왕따였다. 게임하면서 사귄친구가 오프라인에서도 온라인에서도 없는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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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이라고 했지.. 그때 컴퓨터로 처음 게임한게.. 아니 게임보다는 엔터테인먼트 같은거였는데
티몬과 품바게임, 마술학교, 그리고 파퓰러스라는 전략게임이었는데 이게임은 최근에 알았다.
부족을 키워서 다른부족을 점령하는 게임이었는데 난 맵에서 돌아다니는 노숙자같은걸 바다에 빠트려 하늘로 올라가는걸 보고 재밌어했다가 아빠한테 혼났지
롤러코스터 타이쿤도 있었고.. 주타이쿤도 있었지만 확실히 롤코보단 재미없었다.
또 어깨너머로 게임을 보기도 했다. 사촌누나가 하던 바람의나라를 시작으로
저때 난 아버지가 빨간모자쓴 미국사람과 원시부족사람이 싸우는 게임을 하는걸 지켜봤었는데 이게 알고보니 아랑전설3이였다. 캐릭터는 테리와 죠였고..
그러다 2001년경. 바람의나라랑 크레이지아케이드를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다.
바람의나라는 아까말한 사촌누나가 하던걸 옆에서 지켜보고 따라했던건데 초보자사냥터에서의 무한 토끼와 다람쥐레이드. 그리고 쥐굴, 서생원, 뱀굴 이런걸
이때 처음 경험했나 보다. 처음엔 내가 도적을 했던걸로 기억하는데 땅을 가르는 마법을 쓰는걸 보고 도적이 마법도 쓰는걸 신기해했다.
그러다 주술사를 키우고 여동생은 도사를 키웠는데 이 세아이디가 전부 20을 못넘겼다. 심지어 6학년때 다시 새로 만든것도 20의 고지를 못넘겼다.
왜냐하면 당시 20을 넘기면 돈을 받았다. 그런 단순한 이유였다.
저때 조랑이의 만화일기같은걸 재밌게 봤다. 또 다꾸라는 바람의나라 커뮤니티에서 몇컷안되는 스크린샷으로 짜집기한 야인시대 같은것도 보고... 지금보니 정
말 별거아니다
그리고 크레이지아케이드... 이게 오락실 겜을 본뜬줄 몰랐다.
그래도 재밌게 했다. 난 처음엔 모스를 애용했는데 왜 가장 뚱뚱하고 못생긴 배찌를 골랐는지 이해가 안됐다. 나중엔 나도 배찌를 쓰긴 했지만..
나랑 동생이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는데 그때 처음본 2p시스템. 아이디어 진짜 좋더라
나랑 동생이랑 경쟁하듯이 풍선을 터트리고 놀았는데 결과적으로 동생이 가장 아이디를 많이 키웠다. 은색표창 빨3인가? 그까지 갔다.
그러나 그닉은 이제 없다. 7년후에 다시 찾으려고 한적이 있는데 아이디가 아예 삭제됐나보다.
테트리스도 있고, 히든캐치도 진짜 꿀잼이었는데 원래 크레이지아케이드 하나에 여러가지 게임을 집어넣자는 작전이었나 보다. 또 기억안나는 폭탄퐁인가도 있
었고..
그러나 이 세가지 게임은 오래가지 못하고 지금은 물풍선놀이만 남아있다.
.
2004년. 한창 크레이지 아케이드로 사촌지간과 1대1로 붙고 이랬을때
사촌누나가 처음보는 게임을 보여줬다. 옷을 힙합스타일로 입고 권투장갑을 낀 누나의 캐릭터가 사막에서 멧돼지를 잡고 있었다. 메이플이었다.
당시 누나의 레벨은 23.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누나는 전사임에도 불구하고 인트를 10포인트나 찍었었다.
난 그게임에 매료되어 게임을 시작하였다. 저때가 메이플아일랜드의 어떤건물이 메인화면을 차지하고, 서버가 10개도 안되던 때였다.
스탯은 무조건 4/4 아니면 4/5 이걸 맞추기 얼마나 어렵던지... 그걸 시작으로 메이플은 날 사막세계는 물론 잔디밭의 마을이랑 깡촌도시에도 가봤고
고목나무에서 뛰놀고있는 점액덩어리랑 바위밑에서 돌아다니는 나무밑둥을 잡으며 경험치를 쌓았다.
시작은 전사였다. 법사는 그때 너무 내가 인내심이 없었다. 마나가 10초에 3씩 쌓여서 8이되고 그걸 에너지볼트로 쏴서 슬라임한테 한방먹이는것이 정말 오래걸
렸고
난 그냥 한방한방이 에너지볼트 공격력인 전사를 선택하기로 했다.
그러나 내 기억으로는 레벨이 22가 되자마자 해킹을 당했다. 내가 쫄딱... 벗는건 면했으나 돈이랑 그동안 모은 아이템들이 다 털려있었다.
그래서 아이디를 새로 파서 만든 전사캐릭 닉네임이 레벨 22짜리 내 전아이디의 후손이라는 뜻의 '22의후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이가 없다.
또 저때 대세라는 도적도 같이 키웠는데 이 두아이디도 30을 못넘겼다. 하여간 저때는 2차전직하는 애들이 드물었다.
사촌형은 법사로 성장하여 그때당시 정말 인기가... 없었던 불법사를 했다. 심지어 그중에서도 버려진 스킬인 포이즌물방울을 6이나 찍어놓은 망캐였다.
그러나 법사가 초반에는 어렵지만 후반에는 초강캐라는것을 알고있기에 형이 저정도 성장한걸 보고 난 불화살을 한방먹일때마다 네자리수의 데미지가 나오는
형의 캐릭터를 신기한듯 쳐다보았다.
저때가 2005년 중반쯤, 냄비뚜껑으로 방어를 하고 작메와 7장의 주문서를 바른 노가다장갑이 고가에 거래되던 시절이었다.
.
형의 아이디를 빌려서 해봤다. 내가 넣던 데미지와는 차원이 달랐다. 게이머들은 이 데미지를 더 높이고 그런 쾌감을 얻기 위해 게임을 하는걸지도 모른다.
난 그 불타는 활을 이끌고 루디브리엄 탑을 탐사했는데.. 더... 더... 더... 내려가다가 지구방위본부라는곳에 도착했다.
그런데 귀환서가 없었다.. 그냥 여기에 꼼짝없이 갇힌 셈이였다. 설상가상으로 그쪽의 적들은 장난감마을 곰인형이랑 목각기사들보다 훨씬 강했다.
저때 내가 형에게 큰 죄를 진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죽고싶었다. 현실과 전혀 동떨어진, 게임속 세상 때문이다. 부모님 그리고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국민들은
메이플 세상에서 무슨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고 산다. 그러나 난 이 가상세상때문에 현실의 감정을 지배당하게 된 것이다. 그런 때가 있었다. 지금도 약간 그러
지만
다행히 형이 자유시장에서 귀환서를 사서 다시 장난감마을에 도착하는 바람에 평생 감옥처럼 사는건 면하게 됐다.
그후 35에서 시작됐던 형의 아이디는 봉을 바꾸고, 망토를 달고, 새옷을 맞추기 시작했고
최종적으로 내가 접었을때가 57쯤인걸로 기억한다. 그까지 키웠다.
뭐 메이플에서는 이외에도 많은 아바타를 만들었다. 궁수만 3개를 만들고. 여캐도 만들고 또 그때 캐시상품이었던 메소레인저 복장이 끌려서
그것만 입는 도적캐도 만들었다. 그러나 내가 만든 아이디는 모두 30을 넘기진 못했다. 오히려 동생쪽 아이디에서 30을 넘긴 아이디가 나왔고 그동생, 그후로 8년
이 지난
작년 아니 올해 1월 1일에 만렙캐릭을 만들었다. 뭐 그달말에 만렙이 다시 확장되어서 동생도 이젠 질려버렸다고 말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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