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4수생 불효갑.ss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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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467회 작성일 20-01-07 19:13본문
*2011 반수실패까지
난 중딩때 반등수 37명 중 33등에 전교등수 450명 중 350등대까지 내려갈 정도로
공부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내신 60%로 인문계 고등학교를 들어갔고,
고1,2 내내 모의고사 평균 5~6등급만 맞아왔다.
고3 들어서는 이과생이었지만 공부를 하도 안한 탓에,
또 당시 새로 온 수학선생의 권유에 3월부터 가형에서 나형으로 갈아타는 꼴통이었다.
(참고: 현 수능과 비교해서 수학A=수리나형, 수학B=수리가형이라 보면 됨.심지어 저 당시 나형엔 미적이 없고 수1이 범위의 전부)
그 때의 내 생활을 상기하자면
야자끝나고 독서실가서 3시간 푹자다 집에 돌아와서는
밤새서 공부한다고 깝치다 매일 몰컴하면서 쳐놀았고
그러다 학교와서 1~2교시 잠깐 말똥말똥하다가 3교시부터 8교시까진
점심시간빼고 책상에 엎드려 스트레이트로 자기 일쑤였던
그야말로 한심한 나날들이었다.
그러다 고3 중후반 들어서면서 쪼끔 올라서 평균 4~5등급대를 유지했고
수능날 찍신 강림으로 3352464라는 대박(?)을 치고
대구에 있는 한 지잡대(지방잡대) 화학과에 입학하였다.
하지만 고2 때부터 좆도 공부 안하는 주제에 인서울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었고
또 한 편으론 사대에 들어가 중고딩교사가 되고 싶었던 탓에
5월에 자퇴서내고 미련없이 반수를 택했다.
고3 때부터 재수하면 꼭 독학재수를 해야지하는 다짐이 있었던 탓에,
집에서 20분 거리 독서실에서 독학반수를 시작했다.
하지만 공부 안하던 놈 습관이 하루아침에 고쳐지겠나 ㅡㅡ;
6월엔 그래도 하루 평균 6시간씩이나마 공부했지만
7월 들어서면서 흐트러지기 시작하더니 또 다시 나태의 늪에 빠지게 되었다.
공부는 관성의 법칙이 작용하거늘
공부해야지 하면서도 그간 공부를 안한 것이 관성이 되어 계속해서 펜을 놓게 되었다.
독서실에 가서 15시간을 앉아있었지만 그 중 공부시간은 2~3시간 정도밖에 안되었고
5시간 가량은 엎드려자고, 8시간 가량은 폰 만지작거리거나 PMP로 나가수를 보기 일쑤였다.(이 때부터 본 나가수를 삼수 끝날 때까지 계속 봤다)
친구들이랑 술마시러 나가는 날의 횟수도 점점 늘어가기 시작했다.
수능 D-60부턴 공부시간이 0에 수렴해갔고
수능 D-30부터 그나마 좀 끄적여보려 했지만 한달간 '총' 공부시간이 20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냥 벌레였다.
결국 수능에서 현역 때보다도 떨어진 처참한 점수를 받게 되었다.
545658
반수땐 목표가 그리 높지 않아 가톨릭대 자연과학부를 목표로 했는데(사대는 중고딩교사가 별로라고 느껴 반수 도중 접음. 지금 생각하면 갈수있었던것도 아니었지만)
가톨릭대 수시 최저등급이 하나 3등급이어서 최저등급에서마저 충족시키지 못하였다.
울며 겨자먹기로 단국대 천안캠 화학과에 수시를 썼지만 가고픈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고
결국 수시 발로 쓰고 나와서 예비번호조차 받지 못하고 광탈크리를 먹었다.
*12~3월
저 성적으론 자퇴한 학교에 재입학을 하거나,
지잡대 중에서도 하위권 지잡대를 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워낙 내 꿈이 컸고, 재입학이나 하위권 지잡대는 내 자존심이 허락해주지 않았다.
삼수를 결심했다. 남들 한다면 하는 삼수, 나라고 못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잡대 졸업 후 어정쩡한데 취직하거나 공무원으로 월1~200씩 근근히 벌며
평생을 지방에서 살아가기는 죽기보다 싫은게 내 신념이었고
그동안 제대로 수능공부를 해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올해라도 제대로 수능공부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대학에 있어서도 지금 상태로 대학을 들어가면
작년과 다를 바가 없는 막장 생활이 될 게 뻔했다. 머리에 든게 없으니.
난 아직 대학에 갈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었다.
비록 그간 치룬 모의고사 및 수능에서 단 한 과목도 1등급을 받아보지 못한 중하위권이었지만
삼수까지 하는 마당에 나도 SKY에 들어가 당당하게 살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며 살고 싶었고,
그 꿈은 최소 연고대에 가야만 이룰 수 있으리라 여겼다.
집에서 노량진가서 삼수하겠다고 선언했고,
부모님도 공부 안하는 내 꼬라지를 아시니까 처음엔 허락받지 못하였다.
하지만 계속 삼수 허락을 간청했고 내가 워낙 뜻이 완고하니 부모님도 결국 허락해 주셨다.
결국 정시 원서는 한 군데도 쓰지 않았다.
삼수한다는걸 알려지는게 좀 쪽팔렸고,
친구들과 연락하면 분명 반수 때처럼 존나 쳐놀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고시원 입실 이틀 전 페북과 카톡에 군입대한다고 구라쳤다.
미친듯이 연락오는거 다 씹고 폰정지 후 잠적에 돌입했다.
그렇게 2012년 1월 29일, 내 노량진 삼수생활은 시작되었다.
처음 내 주된 계획은 하루 17시간 공부였다.
하루 최소 14시간은 해야 대학간다던 신승범의 조언을 넘어서고 싶었고,
17시간이면 그 어떤 시험도 통과할 수 있다던 고승덕에 닿고 싶어서였다.
이후 총체적인 계획을 짰고, 짜둔 계획은 미루면 메꿀 방도가 없다고 생각했다.
고시원에 8석짜리 자습실이 하나 딸려있었다.
그 곳에 독서실 고정석인마냥 자리 하나를 잡았고,
2월부터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할 태세를 갖추었다.
하지만 반수 때도 그랬듯
20년 내내 잡혀오지 않은 공부습관이 이제와서 하루아침에 뚝딱 교정되는게 아니었다.
롤러코스터마냥 하루 1시간 공부했다가 하루 8시간 공부했다가 하였고,
평균적으론 4~5시간 가량 공부했다.
하루에 17시간 공부한다는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딱 한번 하루 16시간 반 공부를 한 적이 있는데,
공부가 끝나고 나서 머리가 두갈래로 쪼개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적당 이하의 공부를 하다 3월 말 내 생일이 되었는데
그날 한 달 뒤 여자친구가 된 애가 서울올라와서 불태웠고,
그게 기폭제가 되어 안그래도 부족한 공부량에서 더 풀어져버렸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심한 감기몸살에 걸렸고 그걸로 거진 1주일을 날렸다.
문제는 그 1주일이 끝이 아니었다.
*4~6월
위에서 말했다시피 공부는 관성의 법칙이 작용한다.
하루 미친듯이 노니까 그렇게 하루, 이틀, 일주일, 이주일 펜을 잡지 못하는 지경이 되었다.
......
4월 한달간 '총' 공부시간이 5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작년 반수 말기보다도 더 벌레같은 날백수로서의 모습이었다.
구속하는 사람이 없으니 정모에 참석해 신촌과 홍대 일대에서 술집을 전전했다.
노량진에서 공부하면 새롭고 고립된 공간이니 더 열심히 공부하리라 생각했거늘
내 계획을 비웃기라도 하듯, 늘상 대구에만 쳐박혀있다 난생 처음 서울에 정착하다보니
4월 들어서면서 슬슬 노는데 정신이 팔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토록 놀기 좋아하는 새끼가 서울 상경 & 그 누구의 간섭도 없으니
한 번 고삐가 풀리고는 얼마나 개처럼 싸돌아 다녔을지 충분히 감이 오리라 본다.
그렇게 놀다보면 피곤해서 매일 잠을 12시간 넘게 쳐잤고,
점점 자는 시간이 15시간을 넘더니 하루는 20시간동안 잔적도 있다.
그러
난 중딩때 반등수 37명 중 33등에 전교등수 450명 중 350등대까지 내려갈 정도로
공부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내신 60%로 인문계 고등학교를 들어갔고,
고1,2 내내 모의고사 평균 5~6등급만 맞아왔다.
고3 들어서는 이과생이었지만 공부를 하도 안한 탓에,
또 당시 새로 온 수학선생의 권유에 3월부터 가형에서 나형으로 갈아타는 꼴통이었다.
(참고: 현 수능과 비교해서 수학A=수리나형, 수학B=수리가형이라 보면 됨.심지어 저 당시 나형엔 미적이 없고 수1이 범위의 전부)
그 때의 내 생활을 상기하자면
야자끝나고 독서실가서 3시간 푹자다 집에 돌아와서는
밤새서 공부한다고 깝치다 매일 몰컴하면서 쳐놀았고
그러다 학교와서 1~2교시 잠깐 말똥말똥하다가 3교시부터 8교시까진
점심시간빼고 책상에 엎드려 스트레이트로 자기 일쑤였던
그야말로 한심한 나날들이었다.
그러다 고3 중후반 들어서면서 쪼끔 올라서 평균 4~5등급대를 유지했고
수능날 찍신 강림으로 3352464라는 대박(?)을 치고
대구에 있는 한 지잡대(지방잡대) 화학과에 입학하였다.
하지만 고2 때부터 좆도 공부 안하는 주제에 인서울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었고
또 한 편으론 사대에 들어가 중고딩교사가 되고 싶었던 탓에
5월에 자퇴서내고 미련없이 반수를 택했다.
고3 때부터 재수하면 꼭 독학재수를 해야지하는 다짐이 있었던 탓에,
집에서 20분 거리 독서실에서 독학반수를 시작했다.
하지만 공부 안하던 놈 습관이 하루아침에 고쳐지겠나 ㅡㅡ;
6월엔 그래도 하루 평균 6시간씩이나마 공부했지만
7월 들어서면서 흐트러지기 시작하더니 또 다시 나태의 늪에 빠지게 되었다.
공부는 관성의 법칙이 작용하거늘
공부해야지 하면서도 그간 공부를 안한 것이 관성이 되어 계속해서 펜을 놓게 되었다.
독서실에 가서 15시간을 앉아있었지만 그 중 공부시간은 2~3시간 정도밖에 안되었고
5시간 가량은 엎드려자고, 8시간 가량은 폰 만지작거리거나 PMP로 나가수를 보기 일쑤였다.(이 때부터 본 나가수를 삼수 끝날 때까지 계속 봤다)
친구들이랑 술마시러 나가는 날의 횟수도 점점 늘어가기 시작했다.
수능 D-60부턴 공부시간이 0에 수렴해갔고
수능 D-30부터 그나마 좀 끄적여보려 했지만 한달간 '총' 공부시간이 20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냥 벌레였다.
결국 수능에서 현역 때보다도 떨어진 처참한 점수를 받게 되었다.
545658
반수땐 목표가 그리 높지 않아 가톨릭대 자연과학부를 목표로 했는데(사대는 중고딩교사가 별로라고 느껴 반수 도중 접음. 지금 생각하면 갈수있었던것도 아니었지만)
가톨릭대 수시 최저등급이 하나 3등급이어서 최저등급에서마저 충족시키지 못하였다.
울며 겨자먹기로 단국대 천안캠 화학과에 수시를 썼지만 가고픈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고
결국 수시 발로 쓰고 나와서 예비번호조차 받지 못하고 광탈크리를 먹었다.
*12~3월
저 성적으론 자퇴한 학교에 재입학을 하거나,
지잡대 중에서도 하위권 지잡대를 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워낙 내 꿈이 컸고, 재입학이나 하위권 지잡대는 내 자존심이 허락해주지 않았다.
삼수를 결심했다. 남들 한다면 하는 삼수, 나라고 못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잡대 졸업 후 어정쩡한데 취직하거나 공무원으로 월1~200씩 근근히 벌며
평생을 지방에서 살아가기는 죽기보다 싫은게 내 신념이었고
그동안 제대로 수능공부를 해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올해라도 제대로 수능공부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대학에 있어서도 지금 상태로 대학을 들어가면
작년과 다를 바가 없는 막장 생활이 될 게 뻔했다. 머리에 든게 없으니.
난 아직 대학에 갈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었다.
비록 그간 치룬 모의고사 및 수능에서 단 한 과목도 1등급을 받아보지 못한 중하위권이었지만
삼수까지 하는 마당에 나도 SKY에 들어가 당당하게 살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며 살고 싶었고,
그 꿈은 최소 연고대에 가야만 이룰 수 있으리라 여겼다.
집에서 노량진가서 삼수하겠다고 선언했고,
부모님도 공부 안하는 내 꼬라지를 아시니까 처음엔 허락받지 못하였다.
하지만 계속 삼수 허락을 간청했고 내가 워낙 뜻이 완고하니 부모님도 결국 허락해 주셨다.
결국 정시 원서는 한 군데도 쓰지 않았다.
삼수한다는걸 알려지는게 좀 쪽팔렸고,
친구들과 연락하면 분명 반수 때처럼 존나 쳐놀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고시원 입실 이틀 전 페북과 카톡에 군입대한다고 구라쳤다.
미친듯이 연락오는거 다 씹고 폰정지 후 잠적에 돌입했다.
그렇게 2012년 1월 29일, 내 노량진 삼수생활은 시작되었다.
처음 내 주된 계획은 하루 17시간 공부였다.
하루 최소 14시간은 해야 대학간다던 신승범의 조언을 넘어서고 싶었고,
17시간이면 그 어떤 시험도 통과할 수 있다던 고승덕에 닿고 싶어서였다.
이후 총체적인 계획을 짰고, 짜둔 계획은 미루면 메꿀 방도가 없다고 생각했다.
고시원에 8석짜리 자습실이 하나 딸려있었다.
그 곳에 독서실 고정석인마냥 자리 하나를 잡았고,
2월부터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할 태세를 갖추었다.
하지만 반수 때도 그랬듯
20년 내내 잡혀오지 않은 공부습관이 이제와서 하루아침에 뚝딱 교정되는게 아니었다.
롤러코스터마냥 하루 1시간 공부했다가 하루 8시간 공부했다가 하였고,
평균적으론 4~5시간 가량 공부했다.
하루에 17시간 공부한다는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딱 한번 하루 16시간 반 공부를 한 적이 있는데,
공부가 끝나고 나서 머리가 두갈래로 쪼개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적당 이하의 공부를 하다 3월 말 내 생일이 되었는데
그날 한 달 뒤 여자친구가 된 애가 서울올라와서 불태웠고,
그게 기폭제가 되어 안그래도 부족한 공부량에서 더 풀어져버렸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심한 감기몸살에 걸렸고 그걸로 거진 1주일을 날렸다.
문제는 그 1주일이 끝이 아니었다.
*4~6월
위에서 말했다시피 공부는 관성의 법칙이 작용한다.
하루 미친듯이 노니까 그렇게 하루, 이틀, 일주일, 이주일 펜을 잡지 못하는 지경이 되었다.
......
4월 한달간 '총' 공부시간이 5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작년 반수 말기보다도 더 벌레같은 날백수로서의 모습이었다.
구속하는 사람이 없으니 정모에 참석해 신촌과 홍대 일대에서 술집을 전전했다.
노량진에서 공부하면 새롭고 고립된 공간이니 더 열심히 공부하리라 생각했거늘
내 계획을 비웃기라도 하듯, 늘상 대구에만 쳐박혀있다 난생 처음 서울에 정착하다보니
4월 들어서면서 슬슬 노는데 정신이 팔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토록 놀기 좋아하는 새끼가 서울 상경 & 그 누구의 간섭도 없으니
한 번 고삐가 풀리고는 얼마나 개처럼 싸돌아 다녔을지 충분히 감이 오리라 본다.
그렇게 놀다보면 피곤해서 매일 잠을 12시간 넘게 쳐잤고,
점점 자는 시간이 15시간을 넘더니 하루는 20시간동안 잔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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