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증조할아버지께서 탈북하신 썰 푼다.SS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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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431회 작성일 20-01-07 19:34본문
이야기는 1948년부터 시작된다. 우리 증조할아버지께서는 (이름은 안밝힐게) 현재 북한 황해도 강령군 등암리에 살고 계셨다. 그런데 굉장히 땅부자였음. 정말 어마어마한 지주라서 동네사람들은 모두 다 아는 사람이었다고 할아버지께서 말씀해주셨다. 그런데 1948년 한반도는 총체적 난국을 겪고 있었을 시기였지, 김일성이 북한 전지역의 지주들을 죽이고 땅을 거둬간다는 소문이 도는거야. 실제로 증조할아버지가 알고계시던 지주들도 여럿이 의문스럽게 죽었고 증조할아버지는 다행이도 일찍 알아차리렸음. 1948년 12월 16일, 할아버지께서 정확한 날짜까지 다 알고 계시더라, 증조할아버지께서 갖고 계시던 땅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다 팔아버렸데. 진짜 송곳하나 꽂을 땅도 없이. 그런데 그렇게 땅을 팔고나니까 돈이 요즘 웬만한 여행가방크기 정도의 쌕이 3가방정도 나오더레. 어마어마한 돈이지. 그리고 다음날 새벽, 그니까 1948년 12월 17일 새벽 1시경에 갑자기 증조할머니가 할아버지와 작은할아버지(할아버지의 동생)을 께우시더니 닭칼국수를 끓여서 먹여주시더레. 얼떨결에 닭칼국수를 먹고 났더니 증조할아버지가 돈가방을 메시고서 하시는 말씀이 남한으로 가시겠단다. 그때 우리 할아버지 나이는 18세였음. 아버지가 가겠다는데 막을 방법이 있나 게다가 할아버지께서도 철은 일찍 드셔서 그때 나라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충 감은 잡으셨었겠지. 그런데 집밖에 나가니까 어떤 아저씨가 있었단다. 지금으로 따지면 탈북 브로커같은? 그런거지. 걸리지 않고 길을 찾아서 38선까지 데려다 주는 사람이었단다. 그렇게 8시간을 걸으셔서 해가 다 뜨고 나니 38선에 도착하셨단다. 그런데 이 브로커가 돈가방 세개를 다 달라는거야. 안주면 불어버린다는데 별 수가 없으니 돈 가방 다 털리고 진짜 빈털털이로 서울로 내려오셨어. 돈이 없어서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니까 명동성당이 보이시더래. 그래서 성당에 가서 사정사정해서 옆에 텐트를 얻고 끼니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어. 여담이지만 그때부터 우리가족은 지금까지 천주교 신자고 나도 천주교를 믿는다(맹신은 아님). 그 영향인지 작은할아버지께선 신부가 되셨고 4년전쯤에 금경축, 그니까 신부가 되신지 50년이 되셨다. 어쨌든 그러다가 1년 반뒤에 6.25전쟁이 터졌고 우리 할아버지 일가는 살아남으셔서 지금 내가 박통이 일궈 주신 대한민국에 인터넷 두들기면서 살고 있는거지. 이 생각 할때마다 진짜 그때 증조할아버지의 결단이 아니었다면 나는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좃같은 정치범수용소에서 맨날 쳐맞으면서 살았을 생각을 하니까 소름돋을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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