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생활 왕따 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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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325회 작성일 20-01-09 20:14본문
나는 12년 4월에 군에 입대하여 7월에 자대를 배치받았고강원도 양양 출신의 J군, 전라도 광주 출신의 C군, 경기도 성남출신의 P군, 전라도 순천출신의 H군, 충청도 충주 출신의 K군 이렇게 5명의 동기들과 함께하게 되었다.
첫인상은 다들 좋았다.강원도 양양 출신의 J군은 자대전입 초부터 이상한 행동으로 선임은 물론 동기들에게도 좋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었고 동기들 사이에서도 공공연한 왕따였다.활발한 C군을 중심으로 J군을 제외한 5명은 똘똘 잘뭉쳐 놀았고 특히 C군이 나를 잘 챙겨주어 나는 동기들 사이에서 소위 잘나가는 놈이 되었다.그때까지 나는 그것이 C군 덕분이었음을 모르고 있었다.우리부대는 당시 부대 축소 계획 일환으로 인해 소대에서 3명이 타부대로 전출을 가야하는 상황이 발생하였고자신이 왕따라고 인지하고 있던 J군은 자원해서 타부대로 전출을 가게되었고, 나의 왕따 생활은 그 즈음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어느날 선임인 S일병이 우리 생활관에서와서 자기가 할 일인 총기관리를 우리에게 할 것을 강요하였다.C군은 S일병이 우리에게 말할 때 내가 가장 가까이 있었으니 내가 해야 할 일 이라며 나에게 모든 일을 할 것을 주장했다.하지만 나는 이일은 우리 동기들에게 시킨일이니 우리 모두 같이 해야한다고 주장하였고 나는 이때 C군에게 욕설을 하였다.이것이 왕따의 시작이었다. C군은 그 이후로 나에게 일체 말을 걸지 않았으며 없는 사람 취급하였다.우리 동기들의 분위기를 주도하던 C군이 나에게 등을 돌리자 나머지 동기 3명도 C군을 따라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한 것이었다.아침밥을 먹고 상번을 하러가는 길이면 나는 아침식사를 끝내지도 못한 상황인데 나머지 인원들은자기들끼리 다먹었지? 이러고는 일어나서 나가버리거나, 4명이서만 운동을 하러간다던지, 싸지방을 간다던지 하는 경우가 빈번하였다.
그 이후 나는 C군에게 내가 잘못했고 화해를 하자는 뉘앙스로 3번을 그에게 말했으나 그는 모두 묵살하였고, 왕따 생활은 계속되었다.
또한 C군이 나에게 등을 돌림에 있어서 그 즈음해서 선임들이 나를 보는 눈도 이상해졌다는 것이었다.특히 맞선임이었던 L일병이 가장 심하였다. 괜히 별것도 아닌 일로 정색을 하며 화를 낸다던지, 없는 일을 만들어서 나를 털기 시작한것이었다.L일병은 선후임에게 촉망받고 존경받는 사람이었던지라 L일병이 나에게 그런 짓을 하는 걸 믿어주는 사람은 없었다.그렇게 지옥의 나머지 군생활은 흘러갔고 나는 나머지 군생활동안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서 싸지방을 가고 왕따생활을 지속하였다.후임이 들어와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소위 기수열외라는 것을 당한 것이었다.
먼저 타부대로 떠났던 J군이 생각났다. J군도 이런 느낌이었겟구나...
첫인상은 다들 좋았다.강원도 양양 출신의 J군은 자대전입 초부터 이상한 행동으로 선임은 물론 동기들에게도 좋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었고 동기들 사이에서도 공공연한 왕따였다.활발한 C군을 중심으로 J군을 제외한 5명은 똘똘 잘뭉쳐 놀았고 특히 C군이 나를 잘 챙겨주어 나는 동기들 사이에서 소위 잘나가는 놈이 되었다.그때까지 나는 그것이 C군 덕분이었음을 모르고 있었다.우리부대는 당시 부대 축소 계획 일환으로 인해 소대에서 3명이 타부대로 전출을 가야하는 상황이 발생하였고자신이 왕따라고 인지하고 있던 J군은 자원해서 타부대로 전출을 가게되었고, 나의 왕따 생활은 그 즈음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어느날 선임인 S일병이 우리 생활관에서와서 자기가 할 일인 총기관리를 우리에게 할 것을 강요하였다.C군은 S일병이 우리에게 말할 때 내가 가장 가까이 있었으니 내가 해야 할 일 이라며 나에게 모든 일을 할 것을 주장했다.하지만 나는 이일은 우리 동기들에게 시킨일이니 우리 모두 같이 해야한다고 주장하였고 나는 이때 C군에게 욕설을 하였다.이것이 왕따의 시작이었다. C군은 그 이후로 나에게 일체 말을 걸지 않았으며 없는 사람 취급하였다.우리 동기들의 분위기를 주도하던 C군이 나에게 등을 돌리자 나머지 동기 3명도 C군을 따라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한 것이었다.아침밥을 먹고 상번을 하러가는 길이면 나는 아침식사를 끝내지도 못한 상황인데 나머지 인원들은자기들끼리 다먹었지? 이러고는 일어나서 나가버리거나, 4명이서만 운동을 하러간다던지, 싸지방을 간다던지 하는 경우가 빈번하였다.
그 이후 나는 C군에게 내가 잘못했고 화해를 하자는 뉘앙스로 3번을 그에게 말했으나 그는 모두 묵살하였고, 왕따 생활은 계속되었다.
또한 C군이 나에게 등을 돌림에 있어서 그 즈음해서 선임들이 나를 보는 눈도 이상해졌다는 것이었다.특히 맞선임이었던 L일병이 가장 심하였다. 괜히 별것도 아닌 일로 정색을 하며 화를 낸다던지, 없는 일을 만들어서 나를 털기 시작한것이었다.L일병은 선후임에게 촉망받고 존경받는 사람이었던지라 L일병이 나에게 그런 짓을 하는 걸 믿어주는 사람은 없었다.그렇게 지옥의 나머지 군생활은 흘러갔고 나는 나머지 군생활동안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서 싸지방을 가고 왕따생활을 지속하였다.후임이 들어와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소위 기수열외라는 것을 당한 것이었다.
먼저 타부대로 떠났던 J군이 생각났다. J군도 이런 느낌이었겟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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