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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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401회 작성일 20-01-09 20:57본문
아직 전역한지 2년하고 7개월정도 밖에 안지났지만..
대한민국 남자라면 군대썰을 풀면 한도끝도 없는것이 군대추억이라..
한번 썰 풀어봅니다.
아직은 겨울의 칼바람이 채 지나가지 않은 초봄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가족들과 함께 무거운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나를 제외하고 나머지 가족들은 모두가 연신 싱글벙글.
억지로 밝은 척을 하는 모습에 나도 아무렇지않다는듯
실컷 떠들고 있었다.
오전 8시쯤이 되자 날이 조금씩 따뜻해졌다.
봄기운 만연한 햇살과 차창밖 들꽃을 보니 더더욱 무너지는 심정의 나는
억지로라도 "새로운환경" 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부풀렸다.
택시기사 아저씨가 아버지께 앓은체를 한다.
15년정도 개인택시를 운행하셨던 아버지께서 조합에서 친했던 후배라고 했다.
두분이서는 꽤나 오랜만에 만난사이인듯 아주 반갑게 담화를 나누셨고
아무래도 날이 날이니 만큼 군대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아버지께서는 중사 출신으로 전방의 모 기갑사단에서 복무하셨었다.
아버지의 군생활 사진을 보면 항상 눈밭에서 탱크위에 올라가
꽤나 다부진 체격을 양껏 자랑하며 늠름하게 서 계신다.
아버지께서는 10여년도 채 안되는 군복무기간을 가장 자랑스러워 하셨고
그로 인해 어릴적부터 아버지의 군대이야기를 귀에 딱지가 붙을정도로 많이 들어왔었다.
엄마와의 만남도 군대에서였다.
눈이 많이 내리는 강원도지방이라 새벽이든 주말이든 간부들도 동원되어 제설작업을 했었었는데
한번은 주말 전날 어찌나 눈이 많이 내리던지 전 병력 외박 외출이 취소되어 주말아침부터 제설작업에 매진했었다.
극도로 짜증나있던 장교들은 모조리 위에다 허위 보고를 하고 몰래 빠져나가버렸고 결국 부사관들과
사병들만 남아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어째 부사관들도 한둘씩 빠져버리고 BOQ(간부숙소)로 내빼버리더니
결국엔 아버지와 사병들만 남게 되었다.
작업도 힘들고 또 엎친데 덮친격으로 눈발이 조금씩 날리기 시작하니 다들 사기가 떨어졌는데..
그때 하필이면 부대의 최고 막내에게 면회가 들어왔다는것!!!
그 막내는 고참들의 눈초리가 너무 무서워 그냥 면회를 하지않겠다고 뻐팅기다가
아버지의 명령(?)에 울며 겨자먹기로 면회를 갔다고 한다.
사실..입대를 하고서 얼마나 보고싶었던 가족들이었겠냐만은..
목숨을 바꿀만큼의 그리움은 아니었으리라..
그 막내병사는 면회를 온 자신의 누나에게 "나좀 살려주세요 다들 작업하는데 막내가 혼자 면회하면서
시간 삐대면 나중에 혼나요..다음주에 다시 와주세요 제발"
이라며 사정을 이야기 했고 그 말을 들은 사병의 누나는
다들 고생한다며 또 작업에서 빼내어 면회를 허락해준 그 중사(아버지)께 고맙다며
인사를 하러 가겠다며, 결국 위병사관에게 미인계를 사용, 흥쾌히 영내출입을 허락 맡아
면회올때 싸들고온 음식들을 가지고 연병장으로 올라갔다.
막내사병이 계속 말리었지만 너무나도 확고한 누나의 모습에 결국 그냥 포기하고 같이
연병장으로 올라갔고 그 사병의 누나가 연병장에 들어서는 순간..
아버지 말씀으로는 그때 작업하던 전병력들이 하나같이 최면에 걸린듯
넋나간 표정으로 그여성..아니 우리 엄마를 구경했다고 한다.(외삼촌말씀으로는 젊을적 엄마의 미모가 꽤 이쁘셨다고한다.사진보니깐 조금 한고은 닮으신듯,지금은 박원숙-_-;;)
막내병사..아니 외삼촌께서는 아버지께 "누님이 고맙다고 인사하러 왔습니다"
라고 말했고 엄마는 뜨거운 환영을 받으며 일일히 장병들에게
인사를 해주었다.이 미소에 넘어간 장병들이 상사병 걸려 몇날몇일을 앓았다고 할정도였다니..
아버지도 한껏 기대하며 악수를 청했는데 어라 왠걸.
엄마의 표정이 급 매서워 지더니 "우리 동생한테 어떻게 대했길래 애가 날 보더니
면회하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벌벌 떠느냐 이러고도 당신이 우리 동생 상급자라고 할수있냐"
면서 막 따지셨단다..
아버지는 황당해서 아무말씀도 못하시다가 "그런게 아니다 막내이다 보니 많이 위축되었고 꽤나 미안한마음에
그런말을 했었는가보다" 뭐 이런식으로 오해를 푸셨다고 한다.
그리고 억지로 잘 지내고 있다 괴롭히지않는다는것을 보여주기 위해
눈밭에서 기마전도 하고 눈싸움도 하는등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는데..
아버지가 결정적으로 엄마를 쫓아다니게 된 계기가 바로 눈싸움..
눈싸움을 하다 실수로 엄마에게 큰 덩어리가 날라갔고 너무나도 아팠던 엄마는
그자리에서 주저앉아서 우셨단다(아픈것보다 외삼촌 걱정에 눈물이 더 나셨다고 하심)
그모습에 완전 빠져버린 아버지가 그날이후 외삼촌께 엄청 잘해주신뒤
겨우 연락처 알아내서 한통 한통 편지 주고 받다가 전화하는 사이가 되었다가
만나다가 결혼까지 하시게 된것.
하여간 이러한 로맨스고 자시고 옛 동료를 만나셔서 연신 남이야기하듯 요즘 군대는 어쩌고 하시는 아버지와
옛동료분, 그리고 나 입소식 끝나고 오랜만에 백화점 갈꺼라며 즐겁게 수다떠는 누나와 엄마를 보면서
나는 이제 세상 다 끝나는것처럼..다 무너질것처럼 이렇게 힘든데 어쩜 저렇게
얄밉게 웃고 수다를 떨수있는지..괜히 가족들에게 샘이 났고 야속했기에 신교대 도착할때까지 혼자 삐쳐서는 한마디도 않았다..
신교대를 도착하니 8시 40분쯤 되었다.
입소시간인 9시 30분까지는 거진 50분가량이 남아있었기에
근처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었다.
마땅한곳이 없어 김밥XX에 가서 돈까스를 먹었는데..
어찌나 맛이 없던지 소스는 싱겁고 돈까스는 튀긴 시간이 지났는지
눅눅했고 장국은 진짜 음식쓰레기 맛이 났었다.맛도 맛이지만
이제 정말 사회에서 가족들과 먹는 마지막 음식이라 생각하니 괜히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진짜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몰랐다..
한 반쯤 먹고 나니깐 급 올라오는 울렁증에 도저히 밥이 넘어가지 않아 남겼고
시간은 슬슬 입소시간으로 향해가고 있었다..
9시 15분쯤..신교대의 위병소를 지나고 입소식이 있을 연병장까지 걸어갔다
어느새 우리 가족들은 아무말도 않고 조금 길었던 그 길을 걸었다.
사단이라 그런지 꽤나 컸고 안에는 국군병원도 있었다.
조금은 길었던 탓에 걸어오며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할수있었는데..
그중 가장 컸던 것은 후회와 미련이 였다..좀더 놀다 올걸.좀더 공부 하고 올걸..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후회가 되었던것은 부모님께 효도를 좀더 할껄..
누나에게 매일 시비걸고 싸움걸지 않을껄..하는 가족에 좀더 잘하지못했던것이
후회가 되었다...전역하면 정말 잘하리라 굳게 다짐하였다.
혼자 사색에 잠겨 걸어가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았다..
가족들끼리 온 사람, 친구들끼리 온 사람, 여자친구랑 온 사람..
많은 가족들과 다양한 사람들을 봤지만..역시나 하나같이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다..
연병장에 도착하고 교관과 조교들의 통제에 따라 스텐드에 앉았었는데
진짜 입대한다는것이 실감이 났었다..
이미 주변에선 울음이 터져서는 울음바다가 되어있고 그렇지않더라도
다들 가라앉은 분위기속에서 나름의 이별을 준비하는듯 하였다.
이런말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너무나도 엄숙하고 장엄해보였다.
9시 30분이 되자 "입소를 앞둔 장병들은 연병장으로 모이세요"
라는 방송이 나왔고 마치 입을 모은듯 "아..." 하는 소리가
들렸다..일어나서 애써 밝은 표정으로 연병장으로 갈려는데
엄마와 누나가 먼저 눈물이 터졌고 나도 괜히 울컥해서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는 "이게 뭐라고 울으쌌노 퍼뜩 내리 가그라.어여(엄마랑 누나한테)고마 울으라.으데 죽으르가나?
잘 갔다온드라.2년 금방갈끼다."
라며 애써 냉정하고 담담하게 말씀하셨다.(나중에 누나가 말하길 아버지가 나 입대하고 3일동안 엄청 우셨다고함ㅋㅋ)
연병장으로 내려가니 엄청 인상좋은 마치 편안한 옆집 형같은 조교들이 정말 친절하게 줄을 맞추어주며 오와열을 맞추라고 하는데
그땐 오와 열이 뭔지 몰랐지만 대충 보기좋게 대열을 맞추었다.
어느정도 대열이 정리되고 나니 거수경례를 가르쳐주었는데..
어찌나 어색하던지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나왔고 나도 피식하고 웃었다.
문득 옆의 푸근한 인상의 조교형을 보았는데..어라? 순간 그 조교형의 표정에서 살기를 느꼈었다.
'에이 설마 잘못 봤겠지..저렇게 좋은사람이..'
이윽고..10시가 되었고 나팔소리가 방송에서 나오더니 너무 빤짝빤짝 눈이 부신 2개의 별이
두둥! 등장하는게 아닌가..
조교들 교관들 모두다 긴장하며 그 분의 동작하나 하나 눈짓하나하나에 예의주시하는데..
아직 사제 물이 하나도 안빠진 우리 예비훈련병님들은 여기저기 수다를 떨거나
아직도 울거나 피식거리며 웃거나 하늘을 보거나...아주 제멋대로였었다.
사단장님이 사열대에 올라와 한 1분을 조용히 지켜보다가
"이제 여러분들 군인입니다.군인이라면 멋지고 늠름해야됩니다.가족들에게 마지막으로 멋진 모습 보여주십시다"
라고 하니깐 그제서야 조금 잠잠해졌다.
10분여간의 축하연설(?)이 끝나고 이제 다시 스텐드가서 가족들 볼시간은 주겠지 하며
긴장을 풀었는데..
"아아 이제 장병여러분들은 저희 조교들의 통제하에 옆에 보이는 진충관(강당)으로 향하게됩니다.
모두들 마지막으로 가족들 친구분들께 큰절 한번 올립시다 그리고 큰소리로 사랑합니다 외칩니다"
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이..이게 무슨소리야 이보시오 교관양반.끝이라했소? 끝이라니..끝이라니 으 헣으 헣으 헣'
다들 입소식후엔 가족들과 이별의 시간이 따로 있을줄 알았었는데...알짤없이 이대로
가야된다는 생각에 실망이 컸었다..
스텐드에 앉아있는 가족에게 큰절을 올리고 큰소리로 사랑합니다 외치고 나니
이제 정말 이별인것이 실감이 났다...
"빨리 빨리 움직입니다."
이별의 슬픔을 깨부셔버리는듯한 조교의 무겁고 차가운 음성에
우리들은 조교들의 통제에 진충관까지 걸어갔다..그리고...
우리들의 모습이 스텐드에서 완전히 보이지않게되었을때......
아까까지의 좋은 조교형들은 어디가고 그냥 악 잔혹 암흑 다크 하여간 빨간모자를 쓴 악마들이
난생 처음 듣는 문자로 고함을 지르는게 아닌가?!
다들 처음에는 뭔가 싶다가 이건 뭔가 장난이 아니라는 생각에 그저 머리속으로
"좆 됬다" 만을 연신 외칠뿐 멍하게 그 악마들의 통제에 따랐다..
진충관에 들어가니 본격적으로 악마본색을 들어냈다..
당시에 비젼엠큐라는 병영개선프로그램을 실천중이었기에 그리 심한 욕설과
얼차려는 없었지만 이런게 군대구나 이래서 좆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얼차려를 받고 나니 다들 현실을 인지하고는 쥐죽은듯이 조용히 있었다.
통제가 끝난뒤 대위한명이 아까 사단장님 연설할때 보니깐 니네들이
지금까지 들어온 훈련병들중에 제일 개념없었다면서 앞으로 자대 배출할때까지
개념을 똑똑히 박아둘거라며 각오 단단히 하라고 협박같은 연설을 하고서
한명한명 본인인증샷(은 훼이크)본인인증을 확인하고 이것저것 확인후
서있는 순서대로 뚝뚝 끊는게 아닌가? 바로 내 앞 까지 와서는
1중대란다...
그리고 나부터 뒤에 3줄까지가 2중대..그리고 뭐 3중대 이런식으로
줄서있는 순서대로 중대를 지정받고는 역시나 빨간모자 악마들의 통제를 받으며
해당 생활관으로 향했다..
생활관으로 이동하는 도중 우리보다 앞기수들로 보이는 무리들이 B연병장(A연병장은 큰 모래운동장..B연병장은 중대막사 앞 시멘트운동장)
에서 전투화를 닦고 있는것이 보였다..
조교들이 "쟤들은 이제 다음주면 마지막 주차다..근데 쟤네들은 4중대..즉 공익들이다 전혀 부러워할 필요 없다 현역온것이
나중엔 가장 큰 자부심이 될테니깐."
이라는데..이제막 입소한 우리들한텐 들리지도 않고 먹히지도 않을 개10소리였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군대썰을 풀면 한도끝도 없는것이 군대추억이라..
한번 썰 풀어봅니다.
아직은 겨울의 칼바람이 채 지나가지 않은 초봄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가족들과 함께 무거운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나를 제외하고 나머지 가족들은 모두가 연신 싱글벙글.
억지로 밝은 척을 하는 모습에 나도 아무렇지않다는듯
실컷 떠들고 있었다.
오전 8시쯤이 되자 날이 조금씩 따뜻해졌다.
봄기운 만연한 햇살과 차창밖 들꽃을 보니 더더욱 무너지는 심정의 나는
억지로라도 "새로운환경" 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부풀렸다.
택시기사 아저씨가 아버지께 앓은체를 한다.
15년정도 개인택시를 운행하셨던 아버지께서 조합에서 친했던 후배라고 했다.
두분이서는 꽤나 오랜만에 만난사이인듯 아주 반갑게 담화를 나누셨고
아무래도 날이 날이니 만큼 군대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아버지께서는 중사 출신으로 전방의 모 기갑사단에서 복무하셨었다.
아버지의 군생활 사진을 보면 항상 눈밭에서 탱크위에 올라가
꽤나 다부진 체격을 양껏 자랑하며 늠름하게 서 계신다.
아버지께서는 10여년도 채 안되는 군복무기간을 가장 자랑스러워 하셨고
그로 인해 어릴적부터 아버지의 군대이야기를 귀에 딱지가 붙을정도로 많이 들어왔었다.
엄마와의 만남도 군대에서였다.
눈이 많이 내리는 강원도지방이라 새벽이든 주말이든 간부들도 동원되어 제설작업을 했었었는데
한번은 주말 전날 어찌나 눈이 많이 내리던지 전 병력 외박 외출이 취소되어 주말아침부터 제설작업에 매진했었다.
극도로 짜증나있던 장교들은 모조리 위에다 허위 보고를 하고 몰래 빠져나가버렸고 결국 부사관들과
사병들만 남아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어째 부사관들도 한둘씩 빠져버리고 BOQ(간부숙소)로 내빼버리더니
결국엔 아버지와 사병들만 남게 되었다.
작업도 힘들고 또 엎친데 덮친격으로 눈발이 조금씩 날리기 시작하니 다들 사기가 떨어졌는데..
그때 하필이면 부대의 최고 막내에게 면회가 들어왔다는것!!!
그 막내는 고참들의 눈초리가 너무 무서워 그냥 면회를 하지않겠다고 뻐팅기다가
아버지의 명령(?)에 울며 겨자먹기로 면회를 갔다고 한다.
사실..입대를 하고서 얼마나 보고싶었던 가족들이었겠냐만은..
목숨을 바꿀만큼의 그리움은 아니었으리라..
그 막내병사는 면회를 온 자신의 누나에게 "나좀 살려주세요 다들 작업하는데 막내가 혼자 면회하면서
시간 삐대면 나중에 혼나요..다음주에 다시 와주세요 제발"
이라며 사정을 이야기 했고 그 말을 들은 사병의 누나는
다들 고생한다며 또 작업에서 빼내어 면회를 허락해준 그 중사(아버지)께 고맙다며
인사를 하러 가겠다며, 결국 위병사관에게 미인계를 사용, 흥쾌히 영내출입을 허락 맡아
면회올때 싸들고온 음식들을 가지고 연병장으로 올라갔다.
막내사병이 계속 말리었지만 너무나도 확고한 누나의 모습에 결국 그냥 포기하고 같이
연병장으로 올라갔고 그 사병의 누나가 연병장에 들어서는 순간..
아버지 말씀으로는 그때 작업하던 전병력들이 하나같이 최면에 걸린듯
넋나간 표정으로 그여성..아니 우리 엄마를 구경했다고 한다.(외삼촌말씀으로는 젊을적 엄마의 미모가 꽤 이쁘셨다고한다.사진보니깐 조금 한고은 닮으신듯,지금은 박원숙-_-;;)
막내병사..아니 외삼촌께서는 아버지께 "누님이 고맙다고 인사하러 왔습니다"
라고 말했고 엄마는 뜨거운 환영을 받으며 일일히 장병들에게
인사를 해주었다.이 미소에 넘어간 장병들이 상사병 걸려 몇날몇일을 앓았다고 할정도였다니..
아버지도 한껏 기대하며 악수를 청했는데 어라 왠걸.
엄마의 표정이 급 매서워 지더니 "우리 동생한테 어떻게 대했길래 애가 날 보더니
면회하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벌벌 떠느냐 이러고도 당신이 우리 동생 상급자라고 할수있냐"
면서 막 따지셨단다..
아버지는 황당해서 아무말씀도 못하시다가 "그런게 아니다 막내이다 보니 많이 위축되었고 꽤나 미안한마음에
그런말을 했었는가보다" 뭐 이런식으로 오해를 푸셨다고 한다.
그리고 억지로 잘 지내고 있다 괴롭히지않는다는것을 보여주기 위해
눈밭에서 기마전도 하고 눈싸움도 하는등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는데..
아버지가 결정적으로 엄마를 쫓아다니게 된 계기가 바로 눈싸움..
눈싸움을 하다 실수로 엄마에게 큰 덩어리가 날라갔고 너무나도 아팠던 엄마는
그자리에서 주저앉아서 우셨단다(아픈것보다 외삼촌 걱정에 눈물이 더 나셨다고 하심)
그모습에 완전 빠져버린 아버지가 그날이후 외삼촌께 엄청 잘해주신뒤
겨우 연락처 알아내서 한통 한통 편지 주고 받다가 전화하는 사이가 되었다가
만나다가 결혼까지 하시게 된것.
하여간 이러한 로맨스고 자시고 옛 동료를 만나셔서 연신 남이야기하듯 요즘 군대는 어쩌고 하시는 아버지와
옛동료분, 그리고 나 입소식 끝나고 오랜만에 백화점 갈꺼라며 즐겁게 수다떠는 누나와 엄마를 보면서
나는 이제 세상 다 끝나는것처럼..다 무너질것처럼 이렇게 힘든데 어쩜 저렇게
얄밉게 웃고 수다를 떨수있는지..괜히 가족들에게 샘이 났고 야속했기에 신교대 도착할때까지 혼자 삐쳐서는 한마디도 않았다..
신교대를 도착하니 8시 40분쯤 되었다.
입소시간인 9시 30분까지는 거진 50분가량이 남아있었기에
근처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었다.
마땅한곳이 없어 김밥XX에 가서 돈까스를 먹었는데..
어찌나 맛이 없던지 소스는 싱겁고 돈까스는 튀긴 시간이 지났는지
눅눅했고 장국은 진짜 음식쓰레기 맛이 났었다.맛도 맛이지만
이제 정말 사회에서 가족들과 먹는 마지막 음식이라 생각하니 괜히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진짜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몰랐다..
한 반쯤 먹고 나니깐 급 올라오는 울렁증에 도저히 밥이 넘어가지 않아 남겼고
시간은 슬슬 입소시간으로 향해가고 있었다..
9시 15분쯤..신교대의 위병소를 지나고 입소식이 있을 연병장까지 걸어갔다
어느새 우리 가족들은 아무말도 않고 조금 길었던 그 길을 걸었다.
사단이라 그런지 꽤나 컸고 안에는 국군병원도 있었다.
조금은 길었던 탓에 걸어오며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할수있었는데..
그중 가장 컸던 것은 후회와 미련이 였다..좀더 놀다 올걸.좀더 공부 하고 올걸..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후회가 되었던것은 부모님께 효도를 좀더 할껄..
누나에게 매일 시비걸고 싸움걸지 않을껄..하는 가족에 좀더 잘하지못했던것이
후회가 되었다...전역하면 정말 잘하리라 굳게 다짐하였다.
혼자 사색에 잠겨 걸어가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았다..
가족들끼리 온 사람, 친구들끼리 온 사람, 여자친구랑 온 사람..
많은 가족들과 다양한 사람들을 봤지만..역시나 하나같이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다..
연병장에 도착하고 교관과 조교들의 통제에 따라 스텐드에 앉았었는데
진짜 입대한다는것이 실감이 났었다..
이미 주변에선 울음이 터져서는 울음바다가 되어있고 그렇지않더라도
다들 가라앉은 분위기속에서 나름의 이별을 준비하는듯 하였다.
이런말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너무나도 엄숙하고 장엄해보였다.
9시 30분이 되자 "입소를 앞둔 장병들은 연병장으로 모이세요"
라는 방송이 나왔고 마치 입을 모은듯 "아..." 하는 소리가
들렸다..일어나서 애써 밝은 표정으로 연병장으로 갈려는데
엄마와 누나가 먼저 눈물이 터졌고 나도 괜히 울컥해서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는 "이게 뭐라고 울으쌌노 퍼뜩 내리 가그라.어여(엄마랑 누나한테)고마 울으라.으데 죽으르가나?
잘 갔다온드라.2년 금방갈끼다."
라며 애써 냉정하고 담담하게 말씀하셨다.(나중에 누나가 말하길 아버지가 나 입대하고 3일동안 엄청 우셨다고함ㅋㅋ)
연병장으로 내려가니 엄청 인상좋은 마치 편안한 옆집 형같은 조교들이 정말 친절하게 줄을 맞추어주며 오와열을 맞추라고 하는데
그땐 오와 열이 뭔지 몰랐지만 대충 보기좋게 대열을 맞추었다.
어느정도 대열이 정리되고 나니 거수경례를 가르쳐주었는데..
어찌나 어색하던지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나왔고 나도 피식하고 웃었다.
문득 옆의 푸근한 인상의 조교형을 보았는데..어라? 순간 그 조교형의 표정에서 살기를 느꼈었다.
'에이 설마 잘못 봤겠지..저렇게 좋은사람이..'
이윽고..10시가 되었고 나팔소리가 방송에서 나오더니 너무 빤짝빤짝 눈이 부신 2개의 별이
두둥! 등장하는게 아닌가..
조교들 교관들 모두다 긴장하며 그 분의 동작하나 하나 눈짓하나하나에 예의주시하는데..
아직 사제 물이 하나도 안빠진 우리 예비훈련병님들은 여기저기 수다를 떨거나
아직도 울거나 피식거리며 웃거나 하늘을 보거나...아주 제멋대로였었다.
사단장님이 사열대에 올라와 한 1분을 조용히 지켜보다가
"이제 여러분들 군인입니다.군인이라면 멋지고 늠름해야됩니다.가족들에게 마지막으로 멋진 모습 보여주십시다"
라고 하니깐 그제서야 조금 잠잠해졌다.
10분여간의 축하연설(?)이 끝나고 이제 다시 스텐드가서 가족들 볼시간은 주겠지 하며
긴장을 풀었는데..
"아아 이제 장병여러분들은 저희 조교들의 통제하에 옆에 보이는 진충관(강당)으로 향하게됩니다.
모두들 마지막으로 가족들 친구분들께 큰절 한번 올립시다 그리고 큰소리로 사랑합니다 외칩니다"
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이..이게 무슨소리야 이보시오 교관양반.끝이라했소? 끝이라니..끝이라니 으 헣으 헣으 헣'
다들 입소식후엔 가족들과 이별의 시간이 따로 있을줄 알았었는데...알짤없이 이대로
가야된다는 생각에 실망이 컸었다..
스텐드에 앉아있는 가족에게 큰절을 올리고 큰소리로 사랑합니다 외치고 나니
이제 정말 이별인것이 실감이 났다...
"빨리 빨리 움직입니다."
이별의 슬픔을 깨부셔버리는듯한 조교의 무겁고 차가운 음성에
우리들은 조교들의 통제에 진충관까지 걸어갔다..그리고...
우리들의 모습이 스텐드에서 완전히 보이지않게되었을때......
아까까지의 좋은 조교형들은 어디가고 그냥 악 잔혹 암흑 다크 하여간 빨간모자를 쓴 악마들이
난생 처음 듣는 문자로 고함을 지르는게 아닌가?!
다들 처음에는 뭔가 싶다가 이건 뭔가 장난이 아니라는 생각에 그저 머리속으로
"좆 됬다" 만을 연신 외칠뿐 멍하게 그 악마들의 통제에 따랐다..
진충관에 들어가니 본격적으로 악마본색을 들어냈다..
당시에 비젼엠큐라는 병영개선프로그램을 실천중이었기에 그리 심한 욕설과
얼차려는 없었지만 이런게 군대구나 이래서 좆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얼차려를 받고 나니 다들 현실을 인지하고는 쥐죽은듯이 조용히 있었다.
통제가 끝난뒤 대위한명이 아까 사단장님 연설할때 보니깐 니네들이
지금까지 들어온 훈련병들중에 제일 개념없었다면서 앞으로 자대 배출할때까지
개념을 똑똑히 박아둘거라며 각오 단단히 하라고 협박같은 연설을 하고서
한명한명 본인인증샷(은 훼이크)본인인증을 확인하고 이것저것 확인후
서있는 순서대로 뚝뚝 끊는게 아닌가? 바로 내 앞 까지 와서는
1중대란다...
그리고 나부터 뒤에 3줄까지가 2중대..그리고 뭐 3중대 이런식으로
줄서있는 순서대로 중대를 지정받고는 역시나 빨간모자 악마들의 통제를 받으며
해당 생활관으로 향했다..
생활관으로 이동하는 도중 우리보다 앞기수들로 보이는 무리들이 B연병장(A연병장은 큰 모래운동장..B연병장은 중대막사 앞 시멘트운동장)
에서 전투화를 닦고 있는것이 보였다..
조교들이 "쟤들은 이제 다음주면 마지막 주차다..근데 쟤네들은 4중대..즉 공익들이다 전혀 부러워할 필요 없다 현역온것이
나중엔 가장 큰 자부심이 될테니깐."
이라는데..이제막 입소한 우리들한텐 들리지도 않고 먹히지도 않을 개10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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