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우익지도부에 재일교포가 많은 이유.Ss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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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476회 작성일 20-01-07 21:40본문
일단 야쿠자 오야붕들중에 재일이 많은건 다들 알것이다
야쿠자는 전통적으로 노점상(데키야) 도박단(바쿠도) 라는 두종류의 집단이었는데
여기에 태평양전쟁후 굴러들어온 패잔병들이 모여 뭉쳐다니며 삥뜯고 패싸움해대는 우련대(구렌타이)라는 패거리가 생긴다
태평양전쟁패배후 묵사발난 일본땅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저 세종류의 패거리들(데키야, 바쿠도, 구렌타이)이 모두 야쿠자로 불리며 각자의 특기를 살려 부흥기의 단물을 빨아처먹고 자라나기 시작한다
암시장을 위주로 활약하다보니 아무래도 구렌타이들이 돈줄을 잡게된다 (다 작살난 가난한 땅에 도박이니 노점이니가 제대로 될리가 없으니까)
그러다 한국전쟁 발발로 초대형 특수가 생겨나고
이미 어느정도 자금력을 가진 폭력전문 구렌타이들이 이권에 개입하면서 더욱 대형화되기 시작한다
(50년대 이전의 야쿠자 조직들은 조직원 50명이면 대조직이라고 할정도로 소규모였다)
이 과정에서 전통적인 데키야와 바쿠도는 구렌타이의 산하로 예속되고
한국전특수에 발맞춰 신나게 돈을 빨아처먹으며 조직의 현금창고화 되기 시작한다
덩치커진 넘들은 더욱 넓은 영역을 필요로 하게되고 (먹여살려야 하는 조직원이 많아지다보니 당연하다)
전국적인 흡수합병전이 펼쳐지게 되는데
50~60년대의 이 전국구항쟁에 권총 기관총 수류탄 다이나마이트 등이 쓰이며
아쿠자는 세계적인 폭력집단으로 알려지게된다
이과정에서 일게이들도 잘 아는 관서의 야마구치 구미, 관동의 이나가와 구미, 스미요시 카이 등 삼대 세력이 정립된다
항쟁이 격렬하고 잔인해 지면서 전투력으로 먹고 살던 재일교포 야쿠자들이 전면에 나서게 됬고
그결과 각조직내 상층부를 재일 야쿠자들이 장악하게 된다
파칭코의 보급으로 (재일에게 운영권을 줬었다) 자금력까지 갖추게 된 재일 야쿠자들은
넘치는자금과 물불안가리는 강력한 전투력으로 전국에 이름을 떨치게 된다
60년대 중반에 이미 전국의 야쿠자 구성원수는 10만이 훨씬 넘었고
야쿠자들간의 항쟁이 총격전과 폭발물투척으로 극렬해지고 있었고 그과정에서 일반 시민들이 작살나는등 치안이 개판이 되자
도쿄올림픽을 개최해야 하는 일본정부는
폭력단체 자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단속하는 특별법을 발효하게 된다
그때 일본 야쿠자들이 취한 방법이 바로 정치세력화였다
당시 좌익 학생운동이 격렬했기 때문에
그에 반대하는 청년단체라는 명분으로 조직을 우익단체로 탈바꿈시키기 시작했는데
사업체가 있었던 조직은 흥업이니 산업이니 조합이니 이름해서 일반 사업체처럼 꾸미고 (실재로 등기도 낸다)
별다른 사업체가 없던( 아니면 불법이라 내세울수가 없던지) 조직들은 우익단체로 둔갑시켜서
나라를 사랑하고 좌익에 대항하며 천황을 존중하는 (존황) 순수한 청년백수들 단체라고 포장을 하게 되지
실재로 도쿄올림픽 전후로 일본 야쿠자들의 가두행진을 보면 우익단체의 깃발을 걸고 여러곳에서 시위나 거리유세를 하는등
우익정치세력이란 포장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이 우익세력화는 몇가지 장점이 있었는데
첫째 기존 정치계와 연대하여 경찰의 압박을 뿌리칠수 있었고 각종 이권에 개입하기 더 편해졌다 (당시 극좌파의 난동때문에 오히려 좋은 시각으로 보였다)
둘째 청년멤버의 모집과 훈련에 더할나위없는 대의명분을 갖췄으며 (깡패하자고 하면 누가 오겠노)
셋째 자금과 조직을 갖추고도 손가락질 당하던 야쿠자 두목들이 도야마 미츠루로 대표되던 과거 전통 우익인양 행세하며 자위질을 할 수 있게되었다
도야마 미츠루 시절의 일본 전통 우익세력은
일게이들은 민비 시해로 악명높은 흑룡회라고 하면 알것이다
이 계통은 사실 야쿠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유신이후 사족의 최저층이었던 인간들이 낭인행세를 하며 다녔고
당시 정치계의 거물이었던 도야마 미츠루가 이런 낭인패거리를 모아 우익사상을 주입하고
정치계의 구린 뒷처리를 해주던게 전통우익
이패거리는 시정잡배중에서도 최저층인 야쿠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근데 야쿠자 오야붕들이 도야마 흉내를 내면서 거물입네 하고 설치려고 우익사상을 가져온것뿐이다
그래서 이때 탄생한 야쿠자계열 우익세력을 신우익이라고도 부른다
폭력단을 모체로 했다고 해서 임협계 혹은 행동파 우익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본인들은 절대 폭력단과 관계없다고 우기기때문에
임협어쩌고 하는것은 대중이 붙여준 이름일뿐이다
자 정리해보자 세줄 요약간다
1. 야쿠자 오야붕들중 재일이 많아졌다
(현재 야마구치구미 최고위층 오야붕 80%가 재일, 이나가와구미 상층부도 대부분 재일, 스미요시카이는 아예 카이쵸(회장)가 재일)
2. 그 야쿠자들이 우익단체를 많이 만들었다
3. 그러니 당연히 일본우익단체들 두목들은 재일이 많다.
p.s
일본 우익이 지랄하는건 우익이 우익다운 일을 해야 우익이지 하며 뭐든 지랄을 해야 되서 지랄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밑바닥 행동대원들은 우익 사상에 쩔어서 완전히 그쪽으로 맹신하고 행동하는게 맞다
대가리들은 천황이고 나발이고 아무 관심도 없다
오죽하면 천황이 사는 궁궐 앞에서 천황이 씨끄럽다고 하는데도 스피커 틀어놓고 우익 노래 불러대겠냐 천황따위 사실 관심없는게 일본 우익
요즘은 혐한이 키워드라 일본우익들이 툭하면 혐한운동을 벌이지만
이것도 트렌드에 맞춰 벌이는 일일뿐이다
과거에 일본 스모 요코즈나 아사소류가 한국기자에게 김치새끼야 라고 했다가
일본 우익단체 두목들에게 죽고싶냐는 협박을 들었던 적이 있으니 이것들이 과연 일본우익인지 한국우익인지 모호할때가 많긴 하다
야쿠자는 전통적으로 노점상(데키야) 도박단(바쿠도) 라는 두종류의 집단이었는데
여기에 태평양전쟁후 굴러들어온 패잔병들이 모여 뭉쳐다니며 삥뜯고 패싸움해대는 우련대(구렌타이)라는 패거리가 생긴다
태평양전쟁패배후 묵사발난 일본땅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저 세종류의 패거리들(데키야, 바쿠도, 구렌타이)이 모두 야쿠자로 불리며 각자의 특기를 살려 부흥기의 단물을 빨아처먹고 자라나기 시작한다
암시장을 위주로 활약하다보니 아무래도 구렌타이들이 돈줄을 잡게된다 (다 작살난 가난한 땅에 도박이니 노점이니가 제대로 될리가 없으니까)
그러다 한국전쟁 발발로 초대형 특수가 생겨나고
이미 어느정도 자금력을 가진 폭력전문 구렌타이들이 이권에 개입하면서 더욱 대형화되기 시작한다
(50년대 이전의 야쿠자 조직들은 조직원 50명이면 대조직이라고 할정도로 소규모였다)
이 과정에서 전통적인 데키야와 바쿠도는 구렌타이의 산하로 예속되고
한국전특수에 발맞춰 신나게 돈을 빨아처먹으며 조직의 현금창고화 되기 시작한다
덩치커진 넘들은 더욱 넓은 영역을 필요로 하게되고 (먹여살려야 하는 조직원이 많아지다보니 당연하다)
전국적인 흡수합병전이 펼쳐지게 되는데
50~60년대의 이 전국구항쟁에 권총 기관총 수류탄 다이나마이트 등이 쓰이며
아쿠자는 세계적인 폭력집단으로 알려지게된다
이과정에서 일게이들도 잘 아는 관서의 야마구치 구미, 관동의 이나가와 구미, 스미요시 카이 등 삼대 세력이 정립된다
항쟁이 격렬하고 잔인해 지면서 전투력으로 먹고 살던 재일교포 야쿠자들이 전면에 나서게 됬고
그결과 각조직내 상층부를 재일 야쿠자들이 장악하게 된다
파칭코의 보급으로 (재일에게 운영권을 줬었다) 자금력까지 갖추게 된 재일 야쿠자들은
넘치는자금과 물불안가리는 강력한 전투력으로 전국에 이름을 떨치게 된다
60년대 중반에 이미 전국의 야쿠자 구성원수는 10만이 훨씬 넘었고
야쿠자들간의 항쟁이 총격전과 폭발물투척으로 극렬해지고 있었고 그과정에서 일반 시민들이 작살나는등 치안이 개판이 되자
도쿄올림픽을 개최해야 하는 일본정부는
폭력단체 자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단속하는 특별법을 발효하게 된다
그때 일본 야쿠자들이 취한 방법이 바로 정치세력화였다
당시 좌익 학생운동이 격렬했기 때문에
그에 반대하는 청년단체라는 명분으로 조직을 우익단체로 탈바꿈시키기 시작했는데
사업체가 있었던 조직은 흥업이니 산업이니 조합이니 이름해서 일반 사업체처럼 꾸미고 (실재로 등기도 낸다)
별다른 사업체가 없던( 아니면 불법이라 내세울수가 없던지) 조직들은 우익단체로 둔갑시켜서
나라를 사랑하고 좌익에 대항하며 천황을 존중하는 (존황) 순수한 청년백수들 단체라고 포장을 하게 되지
실재로 도쿄올림픽 전후로 일본 야쿠자들의 가두행진을 보면 우익단체의 깃발을 걸고 여러곳에서 시위나 거리유세를 하는등
우익정치세력이란 포장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이 우익세력화는 몇가지 장점이 있었는데
첫째 기존 정치계와 연대하여 경찰의 압박을 뿌리칠수 있었고 각종 이권에 개입하기 더 편해졌다 (당시 극좌파의 난동때문에 오히려 좋은 시각으로 보였다)
둘째 청년멤버의 모집과 훈련에 더할나위없는 대의명분을 갖췄으며 (깡패하자고 하면 누가 오겠노)
셋째 자금과 조직을 갖추고도 손가락질 당하던 야쿠자 두목들이 도야마 미츠루로 대표되던 과거 전통 우익인양 행세하며 자위질을 할 수 있게되었다
도야마 미츠루 시절의 일본 전통 우익세력은
일게이들은 민비 시해로 악명높은 흑룡회라고 하면 알것이다
이 계통은 사실 야쿠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유신이후 사족의 최저층이었던 인간들이 낭인행세를 하며 다녔고
당시 정치계의 거물이었던 도야마 미츠루가 이런 낭인패거리를 모아 우익사상을 주입하고
정치계의 구린 뒷처리를 해주던게 전통우익
이패거리는 시정잡배중에서도 최저층인 야쿠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근데 야쿠자 오야붕들이 도야마 흉내를 내면서 거물입네 하고 설치려고 우익사상을 가져온것뿐이다
그래서 이때 탄생한 야쿠자계열 우익세력을 신우익이라고도 부른다
폭력단을 모체로 했다고 해서 임협계 혹은 행동파 우익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본인들은 절대 폭력단과 관계없다고 우기기때문에
임협어쩌고 하는것은 대중이 붙여준 이름일뿐이다
자 정리해보자 세줄 요약간다
1. 야쿠자 오야붕들중 재일이 많아졌다
(현재 야마구치구미 최고위층 오야붕 80%가 재일, 이나가와구미 상층부도 대부분 재일, 스미요시카이는 아예 카이쵸(회장)가 재일)
2. 그 야쿠자들이 우익단체를 많이 만들었다
3. 그러니 당연히 일본우익단체들 두목들은 재일이 많다.
p.s
일본 우익이 지랄하는건 우익이 우익다운 일을 해야 우익이지 하며 뭐든 지랄을 해야 되서 지랄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밑바닥 행동대원들은 우익 사상에 쩔어서 완전히 그쪽으로 맹신하고 행동하는게 맞다
대가리들은 천황이고 나발이고 아무 관심도 없다
오죽하면 천황이 사는 궁궐 앞에서 천황이 씨끄럽다고 하는데도 스피커 틀어놓고 우익 노래 불러대겠냐 천황따위 사실 관심없는게 일본 우익
요즘은 혐한이 키워드라 일본우익들이 툭하면 혐한운동을 벌이지만
이것도 트렌드에 맞춰 벌이는 일일뿐이다
과거에 일본 스모 요코즈나 아사소류가 한국기자에게 김치새끼야 라고 했다가
일본 우익단체 두목들에게 죽고싶냐는 협박을 들었던 적이 있으니 이것들이 과연 일본우익인지 한국우익인지 모호할때가 많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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