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리건을 싫어하는 이유.SS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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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363회 작성일 20-01-07 21:45본문
나는 딱히 스포츠를 딱히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도 아닌 평범한 게이다하지만 이놈의 야구만큼은 악몽과도같은 기억이 너무나 좉같아서 나도 썰한번 풀어본다초딩때는 내가 울산에 살았는데 기억은 잘안나지만 초딩1년때라 등판에 최동원적힌 롯데야구복을 입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연도상 86~87년정도였던거 같네 자세한 기억이 종범이므로 따지지는 말아라.별로 입고 싶지 않았는데 아버지가 사주셔서 등하교일상복 운동복 외출복 행사복으로 입었던 기억이든다.이말은 곧 잘때빼고는 야구복으로 생활했다는거다.
초딩5-6학년이 되어서 부산으로 이사와서는 주말마다 야구보는게 정말 곤욕이었다.나른한 오후에 아버진 티비를 끼고 야구응원을 즐겼고 온가족이 봐야만했다.물론 자고있는 사람은 일어나야했고 공부하는사람은 공부를 멈추고 설겆이를 하던 어머니는 설겆이멈추고와서옆에서 과일깍으면서 온가족이 그시간은 공유를 해야했다.1번부터 후보선수까지 해설자보다 더유창한 해설을 들으면서 봐야했지.
뭐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면서 안타와 홈런이 오고가는 공방전이라면 나름 흥미를 가지고 보는 날도 있겠지만존나 지루한 날도 있다. 특히나 지루하게 지는 경기면 고문시간이 따로없었다.머 나이든 지금에야 생각하면 무뚝뚝한 아버지가 유일하게 가장 말이 많던 시간이었고 웃는 모습을 보여주던 그런 시간이였던거 같다.
악몽은 중딩1년때 시작되었는데경남밀양에서 사촌형이 찾아봐서 사직야구장으로 보러갔었다.그때가 사직야구장은 기억상으로 처음갔던거 같은데 그날도 7회인가에 역전당해서 저버린거 같아술취한 아재한명이 펜스넘다가 야구장안쪽으로 떨어져서 실려가고 소주병날아다니고 그러더니내가 1루쪽 4번째줄에 앉아있었는데 뒤에서 컵라면이 날아왔다.그걸 다 그대로 머리서부터 딱 뒤집어써서 컵라면화이바를 쓴 모양이 됐다. 사촌형은 어떤새끼냐고 뒤에 술취한 꼴데팬이랑 멱살잡이하고 일행이 나빼고 3명은 되었던거 같은데 라면국물뒤집어쓴 나를 아무도 챙겨주지않아서 화장실가서 대충씻고 울면서 집에갔던 기억이 난다.사촌형은 어찌되었는지 그후론 소식도 없더라.뭐 다음해에 밀양갔을땐 잘지내고 있더만. 그때 어땠냐니깐 기억도 안난다고 그러고.
그리고는 야구어쩌고 하는 넘은 적개심이 생겼었다. 사직구장간다는 넘이면 왠지 존나 밉고 죽빵을 날리고 싶은 충동에 휩쌓였었다.집에서도 야구하는 날이면 아예 밖에 나가서 안들어오고 그랬다.
군대를 의경으로 99년에 입대를 했는데 99년에 호세 박정태 마해영의 꼴데의 마지막전성기라 불리는 전설의 플레이오프전이 그해에 있었지.내 인생중에 정말 실수였던거 같다. 한해미루고 2000년에 입대를 했어야했는데..야구를 잊고 살다가 입대를 했는데 99년 당시에는 의경들이 파출소에 지원나가서 먹고 자고했다.
나는 말년수경1이랑 상경하고 2개월된 나 이경나부랭이이렇게 한조였다.그런데 그 말년이 완전 개 야빠인겨.플레이오프 1차전 1차전할때마다 이기면 깍지박고 존나게 두들겨맞았다. 이유는 꼴데가 져서.이기면 맛난거 먹자고 내가 치킨쏘고 지는 그냥 처먹고 내가 그새끼덕에 하루2시간밖에 못자서 3주도 안되서 6키로가 빠졌던거 같다.맨날 자살할것만 같은 얼굴로 댕기니깐 직원들이 눈치를 줬는지상경보고 쟤 때리지말라고 탈영한다고 신경써주라고 그러더니 그러고 나서는 시발 더빡치게 잠을 안재우고 말로 갈구더라직원38구경 훔쳐서 대갈통에 4발 갈겨주고 싶었다.
6개월후에 중대로 복귀한다길래 이제좀 벗어나나했는데 소대반이상이 다 꼴리건.시발 아주 좉같았지.
한줄요약1.꼴리건 좉같다
초딩5-6학년이 되어서 부산으로 이사와서는 주말마다 야구보는게 정말 곤욕이었다.나른한 오후에 아버진 티비를 끼고 야구응원을 즐겼고 온가족이 봐야만했다.물론 자고있는 사람은 일어나야했고 공부하는사람은 공부를 멈추고 설겆이를 하던 어머니는 설겆이멈추고와서옆에서 과일깍으면서 온가족이 그시간은 공유를 해야했다.1번부터 후보선수까지 해설자보다 더유창한 해설을 들으면서 봐야했지.
뭐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면서 안타와 홈런이 오고가는 공방전이라면 나름 흥미를 가지고 보는 날도 있겠지만존나 지루한 날도 있다. 특히나 지루하게 지는 경기면 고문시간이 따로없었다.머 나이든 지금에야 생각하면 무뚝뚝한 아버지가 유일하게 가장 말이 많던 시간이었고 웃는 모습을 보여주던 그런 시간이였던거 같다.
악몽은 중딩1년때 시작되었는데경남밀양에서 사촌형이 찾아봐서 사직야구장으로 보러갔었다.그때가 사직야구장은 기억상으로 처음갔던거 같은데 그날도 7회인가에 역전당해서 저버린거 같아술취한 아재한명이 펜스넘다가 야구장안쪽으로 떨어져서 실려가고 소주병날아다니고 그러더니내가 1루쪽 4번째줄에 앉아있었는데 뒤에서 컵라면이 날아왔다.그걸 다 그대로 머리서부터 딱 뒤집어써서 컵라면화이바를 쓴 모양이 됐다. 사촌형은 어떤새끼냐고 뒤에 술취한 꼴데팬이랑 멱살잡이하고 일행이 나빼고 3명은 되었던거 같은데 라면국물뒤집어쓴 나를 아무도 챙겨주지않아서 화장실가서 대충씻고 울면서 집에갔던 기억이 난다.사촌형은 어찌되었는지 그후론 소식도 없더라.뭐 다음해에 밀양갔을땐 잘지내고 있더만. 그때 어땠냐니깐 기억도 안난다고 그러고.
그리고는 야구어쩌고 하는 넘은 적개심이 생겼었다. 사직구장간다는 넘이면 왠지 존나 밉고 죽빵을 날리고 싶은 충동에 휩쌓였었다.집에서도 야구하는 날이면 아예 밖에 나가서 안들어오고 그랬다.
군대를 의경으로 99년에 입대를 했는데 99년에 호세 박정태 마해영의 꼴데의 마지막전성기라 불리는 전설의 플레이오프전이 그해에 있었지.내 인생중에 정말 실수였던거 같다. 한해미루고 2000년에 입대를 했어야했는데..야구를 잊고 살다가 입대를 했는데 99년 당시에는 의경들이 파출소에 지원나가서 먹고 자고했다.
나는 말년수경1이랑 상경하고 2개월된 나 이경나부랭이이렇게 한조였다.그런데 그 말년이 완전 개 야빠인겨.플레이오프 1차전 1차전할때마다 이기면 깍지박고 존나게 두들겨맞았다. 이유는 꼴데가 져서.이기면 맛난거 먹자고 내가 치킨쏘고 지는 그냥 처먹고 내가 그새끼덕에 하루2시간밖에 못자서 3주도 안되서 6키로가 빠졌던거 같다.맨날 자살할것만 같은 얼굴로 댕기니깐 직원들이 눈치를 줬는지상경보고 쟤 때리지말라고 탈영한다고 신경써주라고 그러더니 그러고 나서는 시발 더빡치게 잠을 안재우고 말로 갈구더라직원38구경 훔쳐서 대갈통에 4발 갈겨주고 싶었다.
6개월후에 중대로 복귀한다길래 이제좀 벗어나나했는데 소대반이상이 다 꼴리건.시발 아주 좉같았지.
한줄요약1.꼴리건 좉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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