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딩 배고픈 시절 7시 출신 동네 통장에게 6년간 뒷통수 당한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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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366회 작성일 20-01-07 21:55본문
이건 내가 좃고딩 시절 겪어던 뼈아픈 일이었고 아직도 그때일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내가 춥고 배고픈 좃중고딩 시절 7시 지방민 통장에게 통수 당한일이다. 아주 오래전 아버님이 해병대 중사로 성산포 해안방어 근무중 돌아가신 이후 아버지가 남긴 빚에 쪼들리고 어머님 혼자 4형제 키우느라 찢어지게 가난해서 큰형과 둘째형은 가출하고(돈벌러 나감) 어머님은 중학교 1학년인 나와 윗형님 둘만 집에 놔두고 부산으로 돈벌러 올라갔다. 가면서 어머님은 읍사무소에 빈곤대상 생계유지 지원신청을 해놓고 동네 7시 지방 출신인 통장에게 확인서류 일임하고 올라갔다...
그당시 복지라바야 굶어죽지 않을 정도의 정부 양곡지원이었는데 7시 홍어새끼 통장이라는 양반이 나와 형에게 분기별 지원됐던 그 양곡을 고등학교 졸업때까지 무려 6년간 빼돌려버렸다... 나와 형은 어린시절이라 그런게 지원되는지 꿈에도 몰랐다... 어머님은 가끔 생활비 하라고 약간의 돈을 보내줬지만 그 돈으론 두형제 입에 풀칠 하기도 버거운 돈이었죠 어려운 형편이라 그렇게 굶어가며 알바로 신문배달 우유배달 댕기고 멸치잡이 철엔 성산포에서 작은 어선에 승선하여 속칭 밥쟁이 선원으로 고생하고 선주집에 머슴살이도 1년여하며 살아도 어머님 원망은 하지 않았다... 어머님은 그 6년간 지원양곡을 제대로 수급받는줄 알았단다.. 이모든게 어머님이 부산 생활 마치고 제주로 내려온뒤 알게된 사실이다... 그런데 그 양곡을 빼돌린걸 알게된땐 7시 지방민 통장이 이미 죽은지 반년이 지난후였다.. 그 통장은 양곡 수급시 날인하는 도장을 도용하여 빼돌려왔던걸 양곡 지급처인 농협에가서 그때사 알게 됐다...
그걸 알게된 어머니하고 형제들 모두 평평 울었다. 정말 땅을치고 통곡할 일이었다... 그새끼 살아있었으면 그때 갈아마셧을지도 모른다... 그일이후 30년이 지난 지금도 이가갈린다. 그런데 더 웃긴건 그런 지원을 까맣게 모르고 있던 나와 형님은 사실을 알게 되기 전까지 그 통장을 아주 성은이 망극한 사람으로 천사처럼 여겼었다... 그 통장 새끼는 가끔 쌀 두어됫박 들고와서 부모도 없는데 고생한다며 우리 형제에게 도와주는 것처럼 해왔던 거다...
정작 그쌀 대부분으로 지새끼들 쳐먹이고 나머지 두어됫박으로 생색을 낸거지... 그당시 내가 살던동네는 제주도 성산포 의 소구막 동네란 곳이였다... 그동네 주민 대부분이 7시 지방민들이고... 아마 감귤국 일게이중에 그동네 아는놈 있을꺼다... 그동넨 유난히 홍어종자들만 쳐모여 사는동네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이 어려운 주민들을 위해 하사한 난방용 연탄도 그 통장이 꿀꺽 한거 까지 밝혀지고 나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후에도 난 15년의 선원시절동안 7시 지방민들의 추잡한 행태를 너무나도 많이 보아왔고 겪었던 사람이다. 일베간 내글중에 인신매매당한 썰이랑 흑산도 인신매매글이 시리즈로 올려진게 있다. 선원 임금 갈취 노동착취등... 그들이 광주서 이루냈다는 속칭 민주화를 부르짓는 사람들이 나와 수많은 타지방 사람들에게 통수치며 해왔던 행태이고... 그걸 옆에서 보고 자란 홍어새끼들이 지금의 종북세력의 일원들이다. 7시 지방민들은 겪어봐야 안다.
요즘 전쟁 터질까 말까한 시기에 어떤 새끼들은 국민 화합으로 단합이니 머니 씨부리는데 너거들 홍허새끼들이 변하지도 않는데 무슨 개같은 단합이 되겠노?... 겉으론 단합한다며 감성팔이 하지만 결국 저들에게 돌아오는건 뒤통수 오함마일 뿐이다... 종북 새끼들만 없애면 나머지 7시 홍어종자들 변할수 있다. 맹목적 단합으로 주절거리는놈들 더이상 선동하지마라 먼저 니들이 변하고나서 단합하자 손내밀라... 30년전 겪었던 일이라 인증자료 찾을수 없다... 이해해라... 윗쨜은 방송탈때다... 요약1. 좃중고딩때 찌저지게 가난했다.2. 생활보호대상자로 약곡을 수령받아야 하는데 그걸 7시 홍어 통장새끼가 6년간 꿀꺽 했다.3. 홍어는 삼일에 몇번이냐?
그당시 복지라바야 굶어죽지 않을 정도의 정부 양곡지원이었는데 7시 홍어새끼 통장이라는 양반이 나와 형에게 분기별 지원됐던 그 양곡을 고등학교 졸업때까지 무려 6년간 빼돌려버렸다... 나와 형은 어린시절이라 그런게 지원되는지 꿈에도 몰랐다... 어머님은 가끔 생활비 하라고 약간의 돈을 보내줬지만 그 돈으론 두형제 입에 풀칠 하기도 버거운 돈이었죠 어려운 형편이라 그렇게 굶어가며 알바로 신문배달 우유배달 댕기고 멸치잡이 철엔 성산포에서 작은 어선에 승선하여 속칭 밥쟁이 선원으로 고생하고 선주집에 머슴살이도 1년여하며 살아도 어머님 원망은 하지 않았다... 어머님은 그 6년간 지원양곡을 제대로 수급받는줄 알았단다.. 이모든게 어머님이 부산 생활 마치고 제주로 내려온뒤 알게된 사실이다... 그런데 그 양곡을 빼돌린걸 알게된땐 7시 지방민 통장이 이미 죽은지 반년이 지난후였다.. 그 통장은 양곡 수급시 날인하는 도장을 도용하여 빼돌려왔던걸 양곡 지급처인 농협에가서 그때사 알게 됐다...
그걸 알게된 어머니하고 형제들 모두 평평 울었다. 정말 땅을치고 통곡할 일이었다... 그새끼 살아있었으면 그때 갈아마셧을지도 모른다... 그일이후 30년이 지난 지금도 이가갈린다. 그런데 더 웃긴건 그런 지원을 까맣게 모르고 있던 나와 형님은 사실을 알게 되기 전까지 그 통장을 아주 성은이 망극한 사람으로 천사처럼 여겼었다... 그 통장 새끼는 가끔 쌀 두어됫박 들고와서 부모도 없는데 고생한다며 우리 형제에게 도와주는 것처럼 해왔던 거다...
정작 그쌀 대부분으로 지새끼들 쳐먹이고 나머지 두어됫박으로 생색을 낸거지... 그당시 내가 살던동네는 제주도 성산포 의 소구막 동네란 곳이였다... 그동네 주민 대부분이 7시 지방민들이고... 아마 감귤국 일게이중에 그동네 아는놈 있을꺼다... 그동넨 유난히 홍어종자들만 쳐모여 사는동네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이 어려운 주민들을 위해 하사한 난방용 연탄도 그 통장이 꿀꺽 한거 까지 밝혀지고 나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후에도 난 15년의 선원시절동안 7시 지방민들의 추잡한 행태를 너무나도 많이 보아왔고 겪었던 사람이다. 일베간 내글중에 인신매매당한 썰이랑 흑산도 인신매매글이 시리즈로 올려진게 있다. 선원 임금 갈취 노동착취등... 그들이 광주서 이루냈다는 속칭 민주화를 부르짓는 사람들이 나와 수많은 타지방 사람들에게 통수치며 해왔던 행태이고... 그걸 옆에서 보고 자란 홍어새끼들이 지금의 종북세력의 일원들이다. 7시 지방민들은 겪어봐야 안다.
요즘 전쟁 터질까 말까한 시기에 어떤 새끼들은 국민 화합으로 단합이니 머니 씨부리는데 너거들 홍허새끼들이 변하지도 않는데 무슨 개같은 단합이 되겠노?... 겉으론 단합한다며 감성팔이 하지만 결국 저들에게 돌아오는건 뒤통수 오함마일 뿐이다... 종북 새끼들만 없애면 나머지 7시 홍어종자들 변할수 있다. 맹목적 단합으로 주절거리는놈들 더이상 선동하지마라 먼저 니들이 변하고나서 단합하자 손내밀라... 30년전 겪었던 일이라 인증자료 찾을수 없다... 이해해라... 윗쨜은 방송탈때다... 요약1. 좃중고딩때 찌저지게 가난했다.2. 생활보호대상자로 약곡을 수령받아야 하는데 그걸 7시 홍어 통장새끼가 6년간 꿀꺽 했다.3. 홍어는 삼일에 몇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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