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탔던 이야기 5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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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381회 작성일 20-01-09 21:35본문
4부 http://www.ttking.me.com/318835
23살이라는 그녀는 선주의딸인데 서울 근처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방학때면 가끔 내려오는데 휴학을 했서 와있다고했다
근데 여자볼일이 없었던 당시나에게는 내나이또래의 여자아이만 봐도 설레는건 사실이었다
내자신의 처지를 잘아니까 뭐 할수있는건 없겠지만
그래도 보이는곳에 내또래의 여자애가있다는것만으로도 충분한 활력소였다
이틀만에 몸을 추스리고
그뒤에는 일년동안 조업마칠때까지 한차례도 아픈일이없었다
그때 심한 몸살은예방접종처럼 내 몸과 정신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
한달이 넘어가던때 부선장이었던 형님이 항구에 하나있는 슈퍼로 나오라고 해서
나는 주섬주섬 담배를 챙겨서 나갔는데
소주 댓거리를 하나 사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씨벌-새끼야 일찍일찍 안다니냐
처음엔 놀랐는데 저건 그냥 일상언어였다 곰처럼 생긴 부선장형님은 그냥 삼형님이라고 그러는데
별명이 웅삼이라고했다 뭔 관련이있는지는 모르지만 삼형님이라고 불렀다
그는 나를 불러놓고 댓거리를 거리 비울때까지 아무말도 하지 않았고 나도 단배 몇대를 태우고 잔이빌떄마다
소주를 따라드렸다
힘들어도 살아야된다니께 죽지는 말아야제
뜬금없이 그말을 하고 내머리를 한번 헤집고는 들어가셨고 나는 자리를 주섬주섬 치우고
따라 들어가서 잠을 청했다
어쩌면 그건 일종에 통과의례였고 나를 구성원으로 인정한다는 의식같았다
그날이후로 나는 형들에게서 정식으로 일을 배울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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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내려온 형님은 충청도 사람으로 앞잡이일을 봤는데
성격이 원체느긋한데다가 자주 다리가 아파서 쉬었다 나는 걱정했지만
삼년째 저런식으로 농땡이치면서 일한다고 선주아부지와 삼이형은 마뜩치 않아했다
결국 선주와 대판싸우고 짐을싸서 올라갔고, 그날 떠나기전에 나를 들러서 찾아오라고했다
그와 다시만나게된건 굉장히 나중이야기지만, 그는 사실 집이 꽤 잘사는 사람이었는데
아직도 나는 그가 왜 굳이 배를 3년이나 탔는지를 이해를 못하고 있다 여러모로 이해할수 없었다
그의 포지션이 빈뒤로 동생하나가 더 들어왔고 나는 배안에서 입감과 앞잡이 둘다 볼수 있도록
꽤 많은것을 배울수 있었다 대전형님이 빠져나간까닭도 있지만 일을 배우는걸 죽어라 매달린탓도 있었다
선주의 딸과는 썸이 아닌 썸을 타기도 했고 읍내에서 몰래 만나는 일도 있었지만 이이야기와 어울리는 일은 아닌지라
별로 적지는 않겠다. 그녀는 지금 서울의 병원에서 간호사를 하는데 결혼한 후에도 연락이되는 사이다
어쨋거나 철이 시작되었고
그해는 꽤 괜찮은 드믄 풍년이었고 우리는 눈코뜰세없이 바빠졌다
그야말로 바다는 꽃게로 가득찬 깨밭이었고 선주와 부선장형은 매일 술을먹고 즐거웠다
나는 겨울이 되기전에 꽤 괜찮은 선원이 될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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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놈들이 겨울에 할수 있는일은 대낚이나 긴겨울밤을 보내는 노름밖에 없다
특히나 한집건너 하나씩 생기는 하우스에게는 뱃놈들의 돈은 좋은 단백질원일뿐이다
우리숙소는 하우스로 바뀌었고 선주는 너무 심하게 하지 말라고했지만
우리들은 모두다 선주가 일부러 허락한것임을 알고있다
돈이 많은 뱃놈은 배를타지 않는다
내년에 또 배를 타려면 이들은 어딘가 돈을 써서 빈털털이가 되어야하고
대부분 그건..다방레지의 허벅지 비용이나 도박에 쓰는것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도박장을 제공하는 선주의 마음씀씀이야 뻔한것이다
나는 눈치껏 재떨이를 갈고 뽀찌를 챙겨서 그걸로 버는돈도 쏠쏠했는데
운이 좋은날엔 하루에 20~30도 챙겨갈정도로 하우스는 인기가 있었다
사람은 눈치가 있어야한다
심지어는 해경들이 구경하러 올정도로..사실 여긴 그냥 모두가 식구인 마을 같은것이라
나갈때 일지를 쓰고 가끔 조사도 나오지만 결국 해경들역시 눈감아 주는 부분들이 많이있다
때문에...사실상 전과자나 심지어는 탈영한 군인들이 일하는 경우도 종종있고..
원래는 이들의 신고가 정식적으로 이루어져야 하지만
대개의 선주들은 지역유지고 마을촌이 작을수록 영향력이커서
이전에 일하고 갔던 다른 선원들의 신분증으로 대체하고
심지어 내경우에도 별다른 신고 없이 민증도 내지않고 배를 탈수가 있었다
그래서 뱃놈들중에는 무지막지한 미친놈들이 섞이는 경우가 생긴다
다그렇다는건아니지만 어촌마다 상황은 별반 다르진 않을것이다
뭐 아님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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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는 풍작이었고 정산금은 3천이 좀넘게 받았고 선주는 내년까지 탄다는 조건으로 800을 더 제시했다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고 부선장인형도 같이 3년정도만 타고 목돈으로 자신이 전에하던 과일장사를 하자고 했다
솔직히 일년일하고 번 3천이라는 돈이 적은건 아니었지만 당시 내가 갚을돈은 1억을 훌쩍넘었기때문에..
고민이 많았다..이대로 갚는게 맞는것일까
많은것을 배웠고 나름 좋은사람들과 만났던 시간들..나는 생각해보겠다고 했고
선주는 겨울은 추우니까 봄되면 생각해보라고 했다
이듬해 봄..가끔 대낚을 나가다가 나는 인사를 드리고 홀연히 떠나왔다
선주는 언제든 연락하라고 나에게 50만원을 집어줬고
부선장인 형은 화가났는지 내가 가는모습도 배웅하지 않았다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날정도로..기억이 난다
어쨋거나 아무리 힘든곳도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었고 내 인생에
1년이라는 시간을 남겼던 기억들..
하지만 지금에와서 다시타라고 하면 타고싶지는 않다
마치 군대와도 같은 경험이랄까..이겨내온과정이 너무 선명해서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겠지만 내가 배를 타지않았으면 지금처럼
내 어려운 상황들을 다 극복해내지는 못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 삶의 이야기의 하이라이트는 아직 시작도 안했지만...
3000을 들고 서울로 올라와서 다른이야기가 시작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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