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ssul.! 읽어보면 도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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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457회 작성일 20-01-07 22:21본문
다 필요없고, 사실대로 쓴다.
난 존나 촌놈이었다.
술만 먹고 들어오면 개 패듯 패는 아버지와 형과 나 자식 바께모르는 우리어머님
밑에서 정상적으로 자랄려고 노력했다.
초딩때는 기억이 거의없다.
그냥 아버지 차 소리만 나면 벌벌 떤 기억뿐..
중딩때 이혼 하셨다.
그때 내가 사춘기라 조금 예민했는데,
아버지는 무슨 명절이나 뭔 때만 되면
집에 찾아왔다.
지금도 생각나는 그 날..
난 아버지를 막아섰다.
못 들어오게 더 이상 우리 어머님 아프지않게
그렇게 많이 맞았다.
그러면서도 현관문 앞에서 한 발자국도 안 물러섰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고
나도 어느덧 인문계에 진학했다.
1~2학년 때 까불면서 놀다가 2년이란 시간이
금방 지나가 버리더라..
3학년 때 스퍼트를 올렸다.
그래서 내가 최대한 갈 수 있었던 곳이
단국대 천안 캠...
뭐 촌놈이 별 수 없지..
결과는?? 1년 다니다가 군대갔다.
좋은 사람들 만나서 1년 보냈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
그렇게 해병대에 입대했다.
좆 같은 훈련소 생활 마치고,
실무와서 겨우 적응 할 때 즈음에
어머님이 위급하시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제는 내 옆에 계시지 않는다.
그렇게 복귀 후 관심해병 같은 날을 보냈다.
그 후 공정 FTX 훈련이 잡히고, 난 초병근무자로
중대 잔류가 되었지만, 중대장님께 면담을 요청했다.
그렇게 훈련에 참가하고, 선임들의 측은하다는 눈빛이
싫었다. 마음이 너무 아려오고, 미칠지경이지만,
그 훈련 끝까지 완수했다. 그 뒤 여러가지 얘기가 있지만,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전역 후 바로 통신공사를 배웠다.
말이 통신공사지 아파트 현장에서 세대입선이나하고
동축 케이블이나 따는 그야말로 단순작업을
1년간했다. 6개월 정도 하니까 회사 화물차도
보험명의가 내 이름으로 나오더라.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서울로 상경했다.
서울에와서 친형의 권유로 서비스업을 시작했다.
니들이 아는 레스토랑 따가리다.
그렇게 그 일을 하며 3년이라는 시간을 보낸다.
홀 팀장 자리까지 올랐다.
이쯤에서 내 미래에대한 생각이 오더라.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 뭘까??
하고싶은 일은??
나 지금 자동차정비 배우고있다.
그 전직에비해 반타작도 안되는 봉급 받으며,
누구는 연봉이 몇천이네 얼마다. 이러는데,
난 월 100받는다. 나는 만족한다.
내 한몸 누구에게 피해주지않고, 아쉬운소리 없이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간다는걸
게이들아 돈에 이끌려 돌아가는 세상이다.
근데 그거 아냐??
평생 내가..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배운다는 것의
즐거움을??
사회생활?? 겁내지마라.
일단 뛰어들면 죽지는 않는다.
죽고싶을 만큼의 고통은 오지만,
ㅆㅂ 죽지는 않더라.
나 저 푼돈으로 행복을 느끼며산다.
내가 잘났다거나 이런건 결코아니다.
여기 ㅈㄴ 잘나가는 놈들 많자나??
나 같은 놈도 존나게 뛴다.
니들도 뛰어라.
난 존나 촌놈이었다.
술만 먹고 들어오면 개 패듯 패는 아버지와 형과 나 자식 바께모르는 우리어머님
밑에서 정상적으로 자랄려고 노력했다.
초딩때는 기억이 거의없다.
그냥 아버지 차 소리만 나면 벌벌 떤 기억뿐..
중딩때 이혼 하셨다.
그때 내가 사춘기라 조금 예민했는데,
아버지는 무슨 명절이나 뭔 때만 되면
집에 찾아왔다.
지금도 생각나는 그 날..
난 아버지를 막아섰다.
못 들어오게 더 이상 우리 어머님 아프지않게
그렇게 많이 맞았다.
그러면서도 현관문 앞에서 한 발자국도 안 물러섰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고
나도 어느덧 인문계에 진학했다.
1~2학년 때 까불면서 놀다가 2년이란 시간이
금방 지나가 버리더라..
3학년 때 스퍼트를 올렸다.
그래서 내가 최대한 갈 수 있었던 곳이
단국대 천안 캠...
뭐 촌놈이 별 수 없지..
결과는?? 1년 다니다가 군대갔다.
좋은 사람들 만나서 1년 보냈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
그렇게 해병대에 입대했다.
좆 같은 훈련소 생활 마치고,
실무와서 겨우 적응 할 때 즈음에
어머님이 위급하시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제는 내 옆에 계시지 않는다.
그렇게 복귀 후 관심해병 같은 날을 보냈다.
그 후 공정 FTX 훈련이 잡히고, 난 초병근무자로
중대 잔류가 되었지만, 중대장님께 면담을 요청했다.
그렇게 훈련에 참가하고, 선임들의 측은하다는 눈빛이
싫었다. 마음이 너무 아려오고, 미칠지경이지만,
그 훈련 끝까지 완수했다. 그 뒤 여러가지 얘기가 있지만,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전역 후 바로 통신공사를 배웠다.
말이 통신공사지 아파트 현장에서 세대입선이나하고
동축 케이블이나 따는 그야말로 단순작업을
1년간했다. 6개월 정도 하니까 회사 화물차도
보험명의가 내 이름으로 나오더라.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서울로 상경했다.
서울에와서 친형의 권유로 서비스업을 시작했다.
니들이 아는 레스토랑 따가리다.
그렇게 그 일을 하며 3년이라는 시간을 보낸다.
홀 팀장 자리까지 올랐다.
이쯤에서 내 미래에대한 생각이 오더라.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 뭘까??
하고싶은 일은??
나 지금 자동차정비 배우고있다.
그 전직에비해 반타작도 안되는 봉급 받으며,
누구는 연봉이 몇천이네 얼마다. 이러는데,
난 월 100받는다. 나는 만족한다.
내 한몸 누구에게 피해주지않고, 아쉬운소리 없이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간다는걸
게이들아 돈에 이끌려 돌아가는 세상이다.
근데 그거 아냐??
평생 내가..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배운다는 것의
즐거움을??
사회생활?? 겁내지마라.
일단 뛰어들면 죽지는 않는다.
죽고싶을 만큼의 고통은 오지만,
ㅆㅂ 죽지는 않더라.
나 저 푼돈으로 행복을 느끼며산다.
내가 잘났다거나 이런건 결코아니다.
여기 ㅈㄴ 잘나가는 놈들 많자나??
나 같은 놈도 존나게 뛴다.
니들도 뛰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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