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 탈출 인생 썰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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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313회 작성일 20-01-09 21:54본문
상편 링크 http://www.ttking.me.com/323543
고시텔 살기 전에는 옆집에서 반찬 나눠주고 동사무소랑 무슨 동네 어머니회에서 와서 쌀이랑 반찬 갖다주고 갔는데
그것도 없어져서 걱정했었다.
근데 어디서 들은건 있어서 모든 고시텔엔 밥이랑 김치 잇는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음.
밥은 무제한 제공인데 김치는없더라.
거의 처음엔 밥있으면 가져온 냄비에 있던 간장 참기름 비벼서 밥 두공기 먹고 치우거나
동네에 몇몇 있는 친구들 만나면 김치라도 좀 집에서 달라해서 근근히 버텼다.
자연히 큰아버지랑은 연락은 끊겼고 뭐 알수도 없으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았지
알바계속 하면서 돈좀 더 모아서 라면하고 중국산 김치 사먹기 시작했다.
라면은 홈플러스 320원짜리 라면 30봉지 사서 하루 한끼 고시텔 해결,
햄버거 집 가는 날은 가서 치즈버거 한끼 해결 ,
피자집 가는 날은 가서 받는 3000원 식대로 삼각김밥에 라면 사고 남은돈 1200원은 꼬박꼬빡 저축했다.
주말에는 그냥 라면 한끼 아점으로 먹고 나머지는 먹지도 않음.
간혹가다가 고시텔에서 떡같은 거나 만두같은거 인당 몇개 이렇게 놔두는데
중국산에 질도 안좋은거 남들 먹지도 않으니까 그냥 내가 거의 독점하듯이 먹었다.
그리고 고시텔 냉장고 보면서 이사람꺼는 뭐고 뭐고 다 외웟다가 주인없는거 체크해서 몰래 조금씩 빼먹고 그랬음.
그렇게 19살때까지 그러다가 검정고시를 봤음.
주소 자체가 고시텔로 되있으니 주민세도 날라오고 뭐 종이랑 이런거 날라왔는데
그때 기초수급자 되서 20만원 안되는 돈 받는거였는데 그거 받으려고 동사무소 가서 신청하는데
거기서 내가 일하던 피자, 햄버거 집에서 일용직 근로 신고서 인가 제출해서 내가 소득이 일정수준으로 발생해서 안된다고 함.
내 안타까운 상황보던 사회복지사분이 도와줄건 더 없고 고등학교 검정고시 따라해서
3개월동안 야간학당 인가 거기서 공부해서 검정고시 패스함.
패스 축하한다고 그때 선생님이 삼겹살이랑 부대찌개 사주셧는데 부대찌개 처음 먹어봤음. 물론 소주 한두잔도
그렇게 지내다가 고시텔 사장님이 총무 같은거 해볼생각 없냐해서 알았다 하고 19살에 총무 일을 했다. 한 6개월 했나.
알바도 어느정도 했고 어떻게 할까 생각하면서 돈 모아놓은 것도 있어서 고시텔 사장한테 월 5만원씩 줄테니
갖고 있던 짐만 좀 맡아 달라 군대 가겠다.
라고 했다.
근데 그냥맡아줄테니 집처럼생각하고 다녀오라고 하더라. 그래서 짐은 지하 보일러실 같은 창고에 맡겨두고 군대 들어갔다.
웃긴게 엄마는 호적에서 나갔고 아빠는 호적은 살아있는데 행방불명 처리라서 군대 면제 일줄 알았는데
일가친척이 있고 아빠가 호적에서 살아있어서 부양가족 어쩌구 저쩌구 처리해도 현역 뜬다 해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갔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아니었음... ㅂㄷㅂㄷ
그렇게 군대 들어가서 오히려 편하게 지냈다.
처음에 행보관님이 너 여기서 공부하고 도와준다 했는데
솔직히 군대 일하면서 그거 불가능했고 군대가 오히려 집 같았음.
갖혀있는거 뭐 그러려니 했지만 가족같은 선후임에 하라는 일만하면 다 잘해주는 사람들이랑.
월급도 나오니까 과자도 한번씩 사먹고 아마 군대에서 가장 돈 많이 쓴듯...
그렇게 군대 갔다 나왔음.
군대 갔다오니 뭐 할만한 직업도없고 내가 알바를 그렇게 찾아서 해본것도 아니고
아는거라곤 피자 만드는거랑 햄버거배달하는 거 뿐인데...
뭘할까나... 그냥 그거나 하자하고 그거 구하기 전까지 군대에서 들은 얘기 기억하고 노가다 뛰러감.
전역날이랑 전역 다음날 쉬고 전투화신고 옷입고 막노동 뛰러 갔다가
그날 안전화 다떨어진거 받고 아침에 사무소 나가서 소장이 일주는 곳 가서 일하고 그랬음.
공장도 가서 인형눈깔붙이듯이 별것도 조립하는것도 하고 공사현장가서 막노동 하고 통신현장 가갖고
지하철 보다 더 밑으로 들어가는 곳에 가서 케이블 선 엄청 많은데 그거 일일히 닦고 정리하고 케이블 옮기고 잡일하고...
뭐 그러다가 알바도 잘 안구해 지더라. 학기중이 아니라 방학중이라서 자리가 없다고...
그래서 다시 고시텔 들어와서 할만한거 뭐 있을까 하다가.
문득 울산공장이나 구미 창원 김해 같은 경상도 지방에 공장취업하면하루10만원 이상 땡길수있다길래 무작정 버스 타고갔다.
가서 새벽에 인력소 찾으러 돌아다녔는데 오히려 노무자 임금이 나 살던 도시보다 싸더라...
왜냐고 물으니 지방은 원래비싸고 공장같은거 들어갈려면 무슨 검사를 해야한다해서
그날 검사받고 보름정도 거기서 노무자로 일하면서 돈벌엇다.
그리고 족장아르바이트, 현대차 조립부품 야간조, 조선소 용접보조
(여기서 용접자격증 있어야 하는데 그냥 조선소 노무자 보조로 들어갔다가 용접보조 처럼 그냥 쓰였음) 등등 별걸 다함.
그렇게 두달정도 지나니까 통장에 보니 딱 돈 500만원 모여있더라.
근데 더이상 이일은 못하겠는게 다치기도 엄청다치고 손도 파이고 꿰메기도 하고 위험천만하고
잘 못먹고 잘 못자는 나는 진짜 죽을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듬
그돈을 처음 들고 다시 어딜 갈 생각도 안들었고 울산은 물가가 엄청비싸서 여기선 더이상 못살겠다 생각했다.
그길로 부산에 갔다. 부산 못사는 언덕배기 동네에 보증금 300에 월 10만원짜리 단칸방 하나 잡아서 세간살이 없이
그냥 버너에 라면 끓여먹으면서 살았다.
한달 전기값이 아까워서 불도 안키고 살았더니 전기가 너무 안쓴다고 끊는다고 고지서까지 날라오더라... 와 무서운 세상;;
그렇게 23살 청년은 부산에서 생활을 시작했지 처
음엔 인력소 나가서 노가다 뛰고 그랬는데 이쪽 동네 반대편이 재개발 붐이 불어서 아파트가 막 올라가더라...
그래서 원룸,아파트 공사현장 엄청 다님.
이동네 아파트 사는 놈들 있으면 거기 벽돌한장이랑 판넬 한장 다 내가 붙이고 옮기고 한거다. ㅇㅇ
노가다 하다보니 손가락도 굽어있고 허리도 많이 아파서 병원 갔다.
큰돈내고 CT찍었는데 디스크가 헐었다고 하더라; 손가락은 굽어서 뭐 별수 없고
그냥 그래서 노가다 관두고 배달일 시작했다.
그러다가 운전면허 따고 자그마한 식품회사에서 거래처 돌면서 물건 갖다주고 물건 팔고 하는 일 하고 있다.
월 250넘는 돈 내 식대 20만원 제외하고 30만원은 여유자금. 혹시모르니까... 150만원은 저축 나머지 50만원은 방값이랑 일부 전기세 핸드폰 값 내고 산다.
남들이 보면 아직도 흙수저라 하겠지... 오히려 가난했던 초등학교 시절보다 못먹는 홀아비 같은 존재가 되버렸으니까.
근데 진짜 할려고 하고 살다보면 뭐든 길이 보인다.
나도 지금 남부럽지 않게 돈 4천만원 정도 모았고 이제는 이동네를 벗어나서 옆동네 원룸에 싼집에 들어가 볼까 생각중이다.
돈을 좀더 모은다면... 내집을 마련하거나 중고차를 구매해서 한번 예전 살던 동네를 다녀와 보는 휴가도 가보고 싶음.
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 인거 같고...
누군가에게는 끔찍한 기억이겠지만. 진짜 나에게는 죽고싶다는 생각보다는 남들 놀리는건지도 모르고 자라서
그냥 당연한듯이 커서 뭐 기억 할만하거나 부끄럽거나 지우고 싶다는 생각도 없다.
사실 바쁘게 살아서 뭐했는지도 모르는 하루가 더 많다.
오늘 이렇게 글쓰는걸 제외하고 다른 날도 그냥 평범한 나의 똑같은 일상이겠지
흙수저 흙수저 하는 애들이 많길래... 기본베이스가 나보다 더 불쌍한 애들이 있을까 생각해서 글써본다.
3줄 요약
1. 집이 망하고 어린나이에 부모 다 도망감
2. 할머니랑 같이살다 고시텔 들어감
3. 막노동 뛰다가 지금 취업해서 탈출...ing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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