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동안 살아온 내 인생 썰.SS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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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380회 작성일 20-01-07 22:43본문
난 1993년 부천의 어느 동네에서 태어났어
"어려서부터 우리집은 가난했었고
남들 다하는 외식 몇 번 한 적이 없었고 ~"
노래 가사 처럼 그 시절 우리집은 정말 너무 가난했었어.
반지하방에 엄마,아빠,형,나 이렇게 넷이 살았는데
난 그때 갓 태어난 아기라 잘 기억은 못하지만
가족들이 말하는거 보면 가난해서 엄청 힘들었대
형이 4살때까지 할머니네 집에서 살면서
고생도 많이 하고 차곡차곡 돈을 모아 부천 반지하방으로 이사와서
부모님은 나를 낳으셨어.
그렇게 부모님은 밤낮 할거 없이 애들 키우랴,일 하랴 정신없이 사셨지.
엄마는 집에서 부업을 하셨고 아빠는 지인분과 같이 일을 하셨어.
그렇게 한푼 안쓰고 애들 옷 입힐거 남들한테 물려 받은 옷 입히고
먹고 싶은거 안먹고 해서 돈을 모아 우리는 경기도의 18평 아파트로 이사를 갔어.
그때 난 5살이었어.
형은 부천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 다시 전학을 가게 됬지.
거기서 약 1년을 살았는데
엄마가 나를 유치원에 보낼때 가난한 아이 취급 받지 않게 할려고
그 동네에서 가장 비싼 유치원으로 보냈어.
그땐 아무것도 모르고 철 없이 유치원 안가겠다고 울고 불고 떼 쓰고 했었는데..
엄만 날 그 유치원에 보낼려고 손이 부르트도록 부업을 하셨어..
그렇게 엄마와 아빠는 다시 돈을 차곡 차곡 모으셔서 imf때
서울의 22평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됬어.
처음으로 우리집을 갖게 됬다면서 가족들 모두가 기뻐했던게 아직도 기억난다 ㅎ
이때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피자라는것을 먹어봤어.
그때 엄마가 형이랑 나한테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우셨는데..ㅠ.ㅠ
그렇게 거기서 내가 고1때 까지 살게 됬어.
그동안 아빠는 지인분과 하던일을 그만두시고 여태 모으신 돈으로 아버지는 혼자 사업을 하시게 됬고
엄마는 하던 부업을 그만두시고 아는 분의 소개로 번듯한 직장을 구하시게 됬어.
그리고 형은 서울의 명문대는 아니지만 그래도 괜찮은 대학에 진학을 했지.
그러나 나는 집안 막내로 늘 사고만 치는 말썽쟁이였어.
처음 아버지의 사업은 엄청 힘드셨어.
한 1년 가량은 일이 없어 죽겠다고 하셨지.
그러던 도중 할머니가 돌아가시게 됬어.
당시 할머니가 소유한 땅이 좀 많았는데
그 땅이 신도시 개발에 포함되면서 토지 보상금이 꽤 많이 나오게 됬어.
그리고 그 돈은 유산으로 아버지께 됬어.
아버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신것에 슬퍼하셨고
유산은 할머니가 주신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하시면서
그 돈으로 다시 한번 사업을 시작하셨어.
그렇게 아버지의 사업은 성공가도를 달리셨고
지금은 직원들도 몇명 뽑으시면서 일 하신다..ㅎ
그리고 우리는 서울의 42평대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됬어.
부모님 방이 따로 생겼고 내 방,형 방 또한 생겼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나만의 방이 생기게 된거야...
그리고 나는 공부를 좀...아니 많이 못해서
지방에 있는 대학을 가게 됬고 ㅠ.ㅠ
지금은 담달에 군대에 가게 됬어.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정말 힘들때도 포기 하지 않고 열심히 살면
언젠가 해뜰날이 올거라는걸 느끼게 됬어.
나도 군생활 하면서 힘들지만 언젠가 해뜰날이 오겠지?ㅎ..
"어려서부터 우리집은 가난했었고
남들 다하는 외식 몇 번 한 적이 없었고 ~"
노래 가사 처럼 그 시절 우리집은 정말 너무 가난했었어.
반지하방에 엄마,아빠,형,나 이렇게 넷이 살았는데
난 그때 갓 태어난 아기라 잘 기억은 못하지만
가족들이 말하는거 보면 가난해서 엄청 힘들었대
형이 4살때까지 할머니네 집에서 살면서
고생도 많이 하고 차곡차곡 돈을 모아 부천 반지하방으로 이사와서
부모님은 나를 낳으셨어.
그렇게 부모님은 밤낮 할거 없이 애들 키우랴,일 하랴 정신없이 사셨지.
엄마는 집에서 부업을 하셨고 아빠는 지인분과 같이 일을 하셨어.
그렇게 한푼 안쓰고 애들 옷 입힐거 남들한테 물려 받은 옷 입히고
먹고 싶은거 안먹고 해서 돈을 모아 우리는 경기도의 18평 아파트로 이사를 갔어.
그때 난 5살이었어.
형은 부천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 다시 전학을 가게 됬지.
거기서 약 1년을 살았는데
엄마가 나를 유치원에 보낼때 가난한 아이 취급 받지 않게 할려고
그 동네에서 가장 비싼 유치원으로 보냈어.
그땐 아무것도 모르고 철 없이 유치원 안가겠다고 울고 불고 떼 쓰고 했었는데..
엄만 날 그 유치원에 보낼려고 손이 부르트도록 부업을 하셨어..
그렇게 엄마와 아빠는 다시 돈을 차곡 차곡 모으셔서 imf때
서울의 22평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됬어.
처음으로 우리집을 갖게 됬다면서 가족들 모두가 기뻐했던게 아직도 기억난다 ㅎ
이때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피자라는것을 먹어봤어.
그때 엄마가 형이랑 나한테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우셨는데..ㅠ.ㅠ
그렇게 거기서 내가 고1때 까지 살게 됬어.
그동안 아빠는 지인분과 하던일을 그만두시고 여태 모으신 돈으로 아버지는 혼자 사업을 하시게 됬고
엄마는 하던 부업을 그만두시고 아는 분의 소개로 번듯한 직장을 구하시게 됬어.
그리고 형은 서울의 명문대는 아니지만 그래도 괜찮은 대학에 진학을 했지.
그러나 나는 집안 막내로 늘 사고만 치는 말썽쟁이였어.
처음 아버지의 사업은 엄청 힘드셨어.
한 1년 가량은 일이 없어 죽겠다고 하셨지.
그러던 도중 할머니가 돌아가시게 됬어.
당시 할머니가 소유한 땅이 좀 많았는데
그 땅이 신도시 개발에 포함되면서 토지 보상금이 꽤 많이 나오게 됬어.
그리고 그 돈은 유산으로 아버지께 됬어.
아버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신것에 슬퍼하셨고
유산은 할머니가 주신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하시면서
그 돈으로 다시 한번 사업을 시작하셨어.
그렇게 아버지의 사업은 성공가도를 달리셨고
지금은 직원들도 몇명 뽑으시면서 일 하신다..ㅎ
그리고 우리는 서울의 42평대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됬어.
부모님 방이 따로 생겼고 내 방,형 방 또한 생겼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나만의 방이 생기게 된거야...
그리고 나는 공부를 좀...아니 많이 못해서
지방에 있는 대학을 가게 됬고 ㅠ.ㅠ
지금은 담달에 군대에 가게 됬어.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정말 힘들때도 포기 하지 않고 열심히 살면
언젠가 해뜰날이 올거라는걸 느끼게 됬어.
나도 군생활 하면서 힘들지만 언젠가 해뜰날이 오겠지?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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