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반 사랑한 여자한테 차인썰.ss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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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416회 작성일 20-01-08 00:20본문
일년 반. 누군가에겐 짧은 시간이고 누군가에겐 긴 시간. 짧다고 하기엔 길고 길다고 하기엔 짧은 애매한 시간이다.
나는 그 기간동안 한 여자를 사랑해왔다. 그녀를 처음부터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런 글을 쓰고있지도, 혼자 괴로움에 허덕이지도 않을텐데, 라고 생각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1년 반이라는 기간동안 한 여자를 열렬히 사랑했고, 그 사랑이라는 환상은 오늘, 나의 가슴을 찢어놓는 칼날이 되어 돌아왔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까, 이전에. 어디부터가 시작이었을까.
그녀를 처음 본건 베트남에 이주하여 국제학교에 입학한지 1년이 갓 지났을 10학년 때였다. 이미 그때부터 그녀는 아름다웠고, 인망 높았으며, 재능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에게 그녀는 그저 어느 학교마다 으레 있기 마련인 학교의 아이돌, 그냥 올곧고 예쁜 선배일 뿐이었다.
그러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실연다운 실연을 맛봤다. 한창 때의 남학생이라면 으레 겪곤 하는 감정 호르몬의 과잉과, 서투른 고백. 후배에게 한 고백은 실연으로 끝났고, 나는 실의에 빠져 허우적 거렸다.
감수성 과잉의 막 11학년에 올라온 사춘기 남학생의 첫 고백은 그렇게 끝났다. 고백과 실연.
그리고 나는 그녀를 만났다. 사람과 사람이 으레 마주치며 지나갈때를 표현하는 '만나다' 가 아닌, 그녀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같은 통학버스를 타게 되며 교제하게된 그녀의 모습은 당시의 나로썬 구세주와 다름없었다. 상냥하고, 따스했으며, 미소넘치던 그녀의 모습은, 천진한 소녀의 모습과도 같던 그녀의 모습은 늪에 빠진 나에게 내밀어진 막대와 같은 존재였다.
그렇게 나는 작년 1월 즈음부터 사랑에 빠졌다.
내가 연심을 품게된 그녀는 나보다 한살 연상의 선배였다. 171cm, 장신의 늘씬한 키에 베트남 호치민시 한인사회에서는 소문난 미인이였고, 어른들에겐 공손하며 또래와 선배들에겐 상냥하고 재치넘치는, 올곧았고 바른 사람이었다. 유복한 가정에서 위로는 오빠 하나, 아래로는 여동생 하나를 두고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자란 온실속의 화초같은 여자였고, 그녀의 꿈인 예술가로써의 재능도 넘치는 완벽에 가까운 여자였다.
그에 반해 나는 평범한 축에 끼는 외모의, 밝음을 가장한 성격과 유머러스함, 공부 이외에는 자랑할것이 없는 178cm를 간신히 넘는 평범한 남자아이였다. 또래 남자아이들이 으레 고민하듯 외모에 대한 열등감도 있었고, 아름답지 않은 유년기와 소년기의 기억으로 겉으론 밝음을 가장하면서도 속으론 베베 꼬인, 못나고 교활한 소년이었다.
그녀에게 연심을 품게 되고서도 사실 통학 버스 이외에선 그녀와 대화하고 농담을 주고 받을 기회가 없었다. 그녀는 Key stage 5에 속하는 시니어였고, 나는 Key stage 4의 주니어였다. 버스에서나 간간히 얼굴을 마주치고 누나가 어울리는 친구들과 누나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지내는, 조금 친한 후배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렇게 반년간은 나혼자만의 풋풋한 호감으로 그녀를 대했다.
지금은 버밍엄 의대에 진학한 선배의 도움으로 나는 우수한 성적으로 키스테이지 4의 학력고사인 IGCSE를 학년 석차 3등이라는, 장학금까지 주어지는 우수한 성적으로 마칠수 있었다. 나름의 성취감과 들뜬 행복감을 가지고, 의대에 진학한 선배를 배웅한 나는 Key stage 5에 진학하여 그녀와 같은 휴게실을 쓰게 되었다.
졸업반에 진학하고 그녀와 다시 본격적으로 말문을 트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12, 13학년을 모두 합쳐 40명 남짓되는 인원중 한국인은 6명 뿐이었고, 해외에서 으레 그렇듯 한국인들은 뭉치게 되어있었다. 졸업반 휴게실 한켠의 자리를 점령한 5명의 한국인은 - 나머지 한명은 나와 같은 학년이었는데, 선배들을 불편해 했다. 같이 점심도 먹고, 공강 시간때 수다도 떨고, 가끔 도미노 피자를 배달시켜 먹기도 하면서 즐거운 졸업반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에게 놀라울 정도로 빠진 날 발견했다. 나는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기위해 항상 귀기울이고 있었고, 이어폰을 끼고 학교에 등교하면서도 사실은 음악도 틀어놓지 않은채로 그녀의 단짝친구와 대화하는 그녀의 말을 경청하곤 했다. 나는 다른곳을 보고 있으면서도 그녀의 목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이윽고는 그녀가 자신의 첫사랑에 대해 이야기했을때 그녀가 내 기분 변화를 알아챌 정도로 ㅡ 이유는 얼버무렸지만, 동요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곧 졸업한다, 게다가 그녀는 한국으로 진학하길 원하고 있었고 나는 영국진학을 원했다. 아마 금년 9월부터는 서로 마주치기 힘들 상황이었다. 그런 운명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과 몇달전까지만 해도 나는 청소년기의 남학생들에게 자주 나타나고는 하는 근거없는 낙관론적 자세를 견지하고 있어서였을까, 그런것은 어떠한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었다. 10,000km정도는 내 노력으로 극복할수 있지 않을까- 하는 대책없는 낙관론.
나는 미쳐가고 있었다. 그녀와 내가 줄곧 앉곤 하던 자리의 거리는 항상 1m였다. 1m, 그것이 우리의 거리였다. 그녀와의 거리나 그녀의 졸업은 아무래도 좋았다. 나에게 가장 두려웠던 바는 그녀가 나를 남자로 보느냐였다.
그녀의 시선을 신경쓰며 나는 12학년 초부터 운동을 시작했고, 몸을 불려왔다. 그녀의 시선을 신경쓰며 나는 멋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지나가며 던지는 '그 옷 예쁘다' 라는 말 한마디에 짜릿한 전율을 느끼기도 했다.
하여. 나는 그녀의 이성 친구, 나의 이성친구와 상담하기도 했지만 그들의 대답은 대체로 "여자들은 특유의 감이 있어서 왠만해선 어떤 남자애가 자길 좋아하면 거의 알게되", 라는 애매모호한 대답 뿐이었다.
나는 그녀의 마음을 얻으려 노력했다.너무 좋아하는 티가 나지 않게 자신을 최대한 자제하면서도 이따금 카톡할 꺼리가 생기면 카카오톡을 보내기도 했고, 학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그녀의 스케쥴을 파악하고 있다가 두번즈음은 우연을 가장해, 두번 즈음은 그녀의 물건을 전해준다며 찾아 만나기도 했다.
그렇게 우연을 가장하면서 그녀의 생일선물을 선물하기도 했고, 선물을 받고 기뻐하던 누나의 모습에 가슴벅차하던 기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누나는 진심으로 고마워했고, 생전 먼저 카카오톡을 하는법이 없던 그녀가 고맙다며, 정말 마음에 든다며 감사인사를 보내기도 했다. 2만원 짜리 립글로즈 치곤 괜찮은 성과였다. 당일 친구들과 채팅으로 농담이나 주고받는데 '너 약했냐?' 라는 소리를 들을정도로 당시의 나는 들떠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다였다. 곧있으면 대학 진학인 그녀는 특례입시 준비에 너무나도 바빴고, 그녀와 만날기회는 학교 이외엔 좀체 생기지 않았다.
상황은 완전히 정체되어 버렸다. 나는 그녀에게 끊임없이 좋아한다는 암시를 보냈으나 그녀는 나를 친한 동생 이외로는 생각치 않는듯 했다. 내가 카톡을 하면 친절히 받아줬지만, 그녀가 먼저 카톡을 하는 법은 없다. 그녀의 1순위는 언제나 대학이었다.
나는 정체된 상황에 대한 답답함에 미쳐버릴 노릇이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상담을 해보자, 그들은 나를 굉장히 한심히 여기기도 하고, 딱히 여기기도 하며 결국은 고백을 종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도, '지금 아니면 평생 못할거야' 라는 생각에 얼마간은 마음을 굳히는듯 했다. 이마음을 전하자, 라고.
하지만 매일같이 얼굴을 맞대는 친구들의 의견은 달랐다. 학교에서 가장 친하게 지내는 일본인 여자친구와 베트남 남자친구에게 누나에게 고백하겠다는 결심을 말하자, 한국 친구들과는 상반된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마라', 라고. 그들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고백해서 얻고 싶은게 뭐냐', '고백하면 지금과 같은 친구관계로는 돌아가지 못한다' '지금 네가하는 고백은 용기가 아니라 절박함이다' '그녀가 널 좋아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지도 않은데, 고백은 도박이 아니라 확인을 위해 하는거다' 라고.
완전히 꼬여버린 이 상황에, 너무나 답답한 마음뿐 이었다. 우유부단한 나는, 고백을 또다시 미뤘다.
크리스마스에는 독서실에서 시험공부를 하고 돌아오며 길거리를 보는데 즐거워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에 이질감과 답답함이 벅차올랐다. 집에와선 아무것도 할수 없었다. 까닭모를 울적함과 공허함, 절망감과 상실감이 머리와 심장 모두에 맴돌고 있었고, 아무 생각도 할수 없었다, 나는 우울함의 이유도 모르고 있다가,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고나서야, 그제서야 내가 우는 이유를 깨달았다. 나는 화가나면서도, 내 자신이 딱해 울었다. 짝사랑같은거 하지말걸, 후회하면서 울었다. 초라한 내 자신을 욕하며 울었다.
그녀를 사랑하기 시작한 이후로 나는 점점 자기혐오적으로 변해갔고, 타인을 대할때는 줄곧 '나'를 가장한 페르소나를 뒤집어쓰고 연기해온 덕에 들키지 않은, 왕따와 부모님의 이혼 등 순탄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을 보내며 형성된 이중인격적인 성정과 뒤틀린 성격이 더욱더 뒤틀리는것이 느껴졌다. 내 자신이 피폐해짐을 느끼고 있었다. 사랑은 정신병적 증상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사진을 컴퓨터에 모았고, 스파이 카메라로 그녀의 평소 모습을 찍어 컴퓨터로 보내 저장했으며, 그녀와의 대화를 때때로 녹음했다.
고백을 하고 싶다. 지금 고백하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못할것만 같고, 평생 후회 할것 같다. 그녀를 너무나도 사랑한다. 그녀와는 결혼도 할수 있을것만 같이 그녀를 사랑한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나의 고백을 허락하지 않는다. 라는 가슴을 쥐어 뜯고 싶은 상황이었다.
그렇게, 하염없이 시간만 보냈다. 어제가 오늘같고 오늘이 어제같은 평온-을 가장한- 학교생활을 하루하루 보내면서, 그녀를 보면서도 아무렇지 않은듯 가장하면서, 속은 썩어 문드러져 갔다. 그녀를 사랑하며 얻은 조울증적 성격과 이중인격적 모습은 날이 갈수록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하는거 아닌가 하는 위기감까지 들정도로 커져갔다. 나는 미쳐가고 있었다.
항상 밝은 나를 연기하는 나는 친구가 적은편이 아니었다. 아니 되려 유쾌한 친구들을 잔뜩 가진 편이었다. 주말마다 어울려 놀곤 하던 주로 경상도 출신의 유쾌한 녀석들로 구성된 한국인 친구들과 6명의 갱을 이루고는 맛집탐방, 피씨방을 전전하기도 했고, 위에 이미 언급된 일본인, 베트남인 친구와 일식집에서 3시간 내내 수다를 떨기도 했고, 아주 친한 한국인 여자친구와는 소울메이트를 자칭하며 서로 10년뒤에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며 깔깔거리곤 했다.
그 순간이 즐겁지 않다는건 아니었다. 다만, 혼자가 되면 상황은 달랐다. 남는게 없었다. 혼자가 되면 마음은 공허하게 비었고, 그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시간을 보내고 온듯했다. 그녀를 사랑하면서 심해진 증상이었다. 페르소나를 뒤집어쓰고 연기하기.
총체적 난국이었다. 정신적 멘토로 의지하던 선배는 영국으로 떠났고, 시험은 다가오고 있었고, 그녀를 사랑하며 심해진 정신병적 집착과 조울증세는 심해지고 있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나에게는 AS level, 그녀에겐 A2 level 시험이 다가왔다. 학교는 방학을 맞았고, 나는 독서실에 나가기 시작했다. 소울메이트라고 서로 부르곤 하던 한국인 여자친구는 내 정신적 불안정함을 깨달아가기 시작했고, 그녀는 나를 걱정했다.
그리고 나는 결심했다.
고백하자고.
그리고 나는 어제, 그녀를 불러냈다. 그녀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저 '왜? 맛있는거 사주게?ㅋㅋㅋㅋ' 라고 답장해왔을뿐.
토할것 같은 긴장감에 덜덜 떨던 나는, 오히려 8시 30분, 약속시간에 그녀를 만나자 오히려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녀는 내가 준 초콜릿을 기뻐하며 받았고, 우리는 그녀의 학원쪽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게 그 맛있는거야? 초콜릿도 받았으니 카페라도 가서 마실거라도 사줄게!' 라고 생글생글 웃으며 제안해왔다. 시험걱정, 시답잖은 잡담, 지금 나와 독서실에 같이 나오는 그녀의 단짝친구 이야기, 옷이야기. 일상적인, 가벼운 이야기를 하며 우린 걸었다.
그리고, 우리는 카페에 다다랐고, 나와 그녀는 음료를 주문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잠깐 화제가 떨어져 침묵이 둘사이에 자리 잡았을때, 나는 수십번이나 머릿속으로 되뇌어온 이야기를 꺼냈다.
'누나'
'응?'
'만약에, 무언가 성공할수도 실패할수도 있는 일이 있다고 해요.'
'누나라면, 실패한다고 가정할 경우에 하고서 후회할래요 아니면 하지 않고 후회하지 않을,' 나는 긴장한탓에 잠시 말을 더듬었다. '아니, 후회할래요?'
그녀는 잠시 미묘한 표정을 짓더니 평소의 그녀대로 생글생글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나, 너 무슨 이야기 하려는지 알것같아.'
'네? 뭔데요'
'헤헤, 잠깐 생각좀 하고'
그녀는 웃는 모습 그대로였다. 평소의 그녀대로 귀여운 눈웃음을 지어가며, 애써 태연을 가장하려는 모습으로.
'전 역시, 하고 후회할래요'
그녀는 장난기 넘치는 그녀 모습 그대로 '아냐, 하지마' 하며 날 만류했다. 그 모습 마저 매력적이어서, 심장이 쿵쿵 뛰었다.
'누나, 제가 예전에 카톡으로 이성문제 상담한적 있죠?'
'그거 누나 얘기였어요.'
'누나, 좋아해요.'
'선후배나, 친한 누나 동생이 아니라, 이성으로써'
'근데 나 2달후면 졸업해' 그녀는 미묘하게 웃는 얼굴 그대로였다.
'알아요. 그래서 많이 고민했어요. 고백 해야할지 말아야 할지'
'근데, 역시, 전하지도 못하고 끝내는건 역시 슬프잖아요.'
'2달후면 졸업인것도 알아요.'
'하지만, 어떤 대답이던 괜찮아요. 어느정돈 각오하고 나온거니까.'
'누나, 좋아해요.'
잠시간의 침묵이 자리잡았다.
그리고 누나는 웃고 있는것 같으면서도 전혀 웃고있지 않은, 미묘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원빈이 와도 지금은 무리야.'
'곧 있으면 나 입시잖아.'
오히려 예상한 대답이어서 였을까, 심장이 내려앉는듯 하면서도 묘하게 평온했다. 아니, 오히려 모종의 만족감이 자리잡았다. 전신마취 뒤 막 깨어났을때의 몽롱하고 아련한 그 느낌같은 만족감. 나도 고백하는 내내 오히려 평온한 기분으로, 웃는 얼굴인 채로였다. 그녀와의 약속시간 1시간전부터 나와 미친듯이 요동치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했었음에도.
'그래도, 고마워.'
'어떻게보면 굉장한 칭찬이잖아? 너도 알다시피 난 칭찬에 약하고'
'알아요.'
그리고 누나는 의미없는 잡담을 이어갔다. 하지만 표정은 애써 태연을 가장한 미묘한 표정이었다. 나는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면서도, 내가 차인건가? 라는 비현실적인 감각이 몸을 옥죄어 오는것을 느꼈다. 그런 의미없는 잡담을 이어가다, 시간을 물은 그녀에게 나는 학원 시작 10분전이라고 말했고, 그녀의 학원 앞까지 역시 일상적 잡담을 이어가며 바래다 줬다. 머릿속은 텅비어있었다. 그녀와의 잡담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윽고 그녀의 학원앞에 다다랐을때, 사실 그녀의 말을 제대로 듣고있지도 않던 난 물었다
'저, 차인건가요?'
'그렇게 된건가?' 그녀는 여전히 장난기 넘치는 얼굴이었다. 아마 장난기 넘치는 얼굴을 가장해서 어색함을 숨기려 하는거겠지.
'...그래요. 역시, 좋은 선후배로 남아요.'
'응, 나 들어갈게. 다음에 봐.' 그녀가 돌아섰다.
'누나'
나는 그녀를 불러세웠다. 그리고 그녀의 오른손을 붙잡았다.
'잠깐만, 잠깐만 이러고 있어요.'
그녀는 웃는채였고, 나는 눈을 감고 왼손을 타고 전해져 오는 그녀의 체온을 느끼고 있었다. 오른손엔 그녀가 사준 카페모카 아이스 블랜드를 들고서. 5초라는 찰나였을까. 나는 그녀의 손을 놓았다. 그녀의 손은 따뜻하지도, 차지도 않은, 미적지근한 기분이었다.
'조금은 마음이 시원해졌을지도'
그녀는 웃으며 돌아섰고, 나에게 안녕이라고 말했다. 나는 학원으로 들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학원으로 들어가면서 다시 돌아보고는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나는 완전히 얼이 빠진채로 걷기 시작했다. 그녀가 떠나자 그제서야 뒷통수를 후드려 맞은듯한 기분이 들었다. 온갖 생각이 들었다. 머리속이 완전히 뒤죽박죽이었다. 온갖 노이즈와 온갖 잡음이 섞인, 그녀와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고, 혐오스럽게도, 나에게 호감을 보이던 여자아이의 얼굴도 떠올랐다.
평소 소울메이트 한국인 여자친구와 자주 가던 어느 아파트 단지의 벤치로 걸었다. 벤치에서 혼자 맥주 4캔을 사와 까마셨다. 집안의 술고래 유전자가 이때는 원망스러웠다. 좀 취하고 싶었는데, 조금 어지러운것 빼곤 전혀 취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에게 호감을 보이던, 아까 문득 떠올리고 내 자신에게 진저리를 친, 그 아이에게 그 모습을 보여버렸고, 그녀를 실망시켰다. 그녀는 나를 걱정하면서도 꾸중했다. 집에 빨리 가라면서.
집에 갈수 없었다. 그녀에게 묻지 못한것이 있었다.
나는 독서실에 가 곧장 짐을 싸고 앞뒤 가리지 않고 그녀의 아파트 앞으로 자전거를 몰았다. 11시 40분이었다. 11시 40분부터 1시 25분까지 나는 무작정 그녀를 기다렸다. 학원이 이 시간 사이에 끝나길 빌면서.
하지만 그녀는 오지 않았다. 나는 어지러운 머리를 정리하려 노력하며, 정신 차리려 노력하며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려 애썼다. 그녀와의 기억을 떠올리려 애썼다.
그녀는 오지 않았다.
나는 구차해보일지 몰라도, 그녀에게 묻고 싶었다. 너무나도 사랑했던 그녀기에. 실연 한번에 포기하기엔 가슴이 찢어지는 그녀이기에.
'입시가 없었다면 나를 받아 주었겠는가, 다른 남자를 사귀지 말라는게 아니다. 내가 영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돌아왔을때 나에게 기회를 주겠는가'
1시 25분. 액정에 표시된 배터리 2%를 응시하던 나는, 그녀에게 '반드시 묻고 싶은게 있었어요. 오늘은 학원이 일찍 끝났나보네요. 지금까지 기다리다가 집에 가요.' 라고, 술기운과 이미 고백해버린 마당에 막가보자는 치기어린 마음이었을까, 그런 메세지를 남기곤 집으로 왔다. 내리막길에서 전기엔진을 풀로 놓고, 페달을 밟으며 브레이크도 잡지 않고 내려오는데, 기묘한 해방감이 느껴졌다.
이젠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무엇을 목표로 살아야할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혼란스럽다.
세줄요약
1. 나병신새끼
2. 고백함
3. 차임
나는 그 기간동안 한 여자를 사랑해왔다. 그녀를 처음부터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런 글을 쓰고있지도, 혼자 괴로움에 허덕이지도 않을텐데, 라고 생각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1년 반이라는 기간동안 한 여자를 열렬히 사랑했고, 그 사랑이라는 환상은 오늘, 나의 가슴을 찢어놓는 칼날이 되어 돌아왔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까, 이전에. 어디부터가 시작이었을까.
그녀를 처음 본건 베트남에 이주하여 국제학교에 입학한지 1년이 갓 지났을 10학년 때였다. 이미 그때부터 그녀는 아름다웠고, 인망 높았으며, 재능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에게 그녀는 그저 어느 학교마다 으레 있기 마련인 학교의 아이돌, 그냥 올곧고 예쁜 선배일 뿐이었다.
그러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실연다운 실연을 맛봤다. 한창 때의 남학생이라면 으레 겪곤 하는 감정 호르몬의 과잉과, 서투른 고백. 후배에게 한 고백은 실연으로 끝났고, 나는 실의에 빠져 허우적 거렸다.
감수성 과잉의 막 11학년에 올라온 사춘기 남학생의 첫 고백은 그렇게 끝났다. 고백과 실연.
그리고 나는 그녀를 만났다. 사람과 사람이 으레 마주치며 지나갈때를 표현하는 '만나다' 가 아닌, 그녀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같은 통학버스를 타게 되며 교제하게된 그녀의 모습은 당시의 나로썬 구세주와 다름없었다. 상냥하고, 따스했으며, 미소넘치던 그녀의 모습은, 천진한 소녀의 모습과도 같던 그녀의 모습은 늪에 빠진 나에게 내밀어진 막대와 같은 존재였다.
그렇게 나는 작년 1월 즈음부터 사랑에 빠졌다.
내가 연심을 품게된 그녀는 나보다 한살 연상의 선배였다. 171cm, 장신의 늘씬한 키에 베트남 호치민시 한인사회에서는 소문난 미인이였고, 어른들에겐 공손하며 또래와 선배들에겐 상냥하고 재치넘치는, 올곧았고 바른 사람이었다. 유복한 가정에서 위로는 오빠 하나, 아래로는 여동생 하나를 두고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자란 온실속의 화초같은 여자였고, 그녀의 꿈인 예술가로써의 재능도 넘치는 완벽에 가까운 여자였다.
그에 반해 나는 평범한 축에 끼는 외모의, 밝음을 가장한 성격과 유머러스함, 공부 이외에는 자랑할것이 없는 178cm를 간신히 넘는 평범한 남자아이였다. 또래 남자아이들이 으레 고민하듯 외모에 대한 열등감도 있었고, 아름답지 않은 유년기와 소년기의 기억으로 겉으론 밝음을 가장하면서도 속으론 베베 꼬인, 못나고 교활한 소년이었다.
그녀에게 연심을 품게 되고서도 사실 통학 버스 이외에선 그녀와 대화하고 농담을 주고 받을 기회가 없었다. 그녀는 Key stage 5에 속하는 시니어였고, 나는 Key stage 4의 주니어였다. 버스에서나 간간히 얼굴을 마주치고 누나가 어울리는 친구들과 누나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지내는, 조금 친한 후배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렇게 반년간은 나혼자만의 풋풋한 호감으로 그녀를 대했다.
지금은 버밍엄 의대에 진학한 선배의 도움으로 나는 우수한 성적으로 키스테이지 4의 학력고사인 IGCSE를 학년 석차 3등이라는, 장학금까지 주어지는 우수한 성적으로 마칠수 있었다. 나름의 성취감과 들뜬 행복감을 가지고, 의대에 진학한 선배를 배웅한 나는 Key stage 5에 진학하여 그녀와 같은 휴게실을 쓰게 되었다.
졸업반에 진학하고 그녀와 다시 본격적으로 말문을 트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12, 13학년을 모두 합쳐 40명 남짓되는 인원중 한국인은 6명 뿐이었고, 해외에서 으레 그렇듯 한국인들은 뭉치게 되어있었다. 졸업반 휴게실 한켠의 자리를 점령한 5명의 한국인은 - 나머지 한명은 나와 같은 학년이었는데, 선배들을 불편해 했다. 같이 점심도 먹고, 공강 시간때 수다도 떨고, 가끔 도미노 피자를 배달시켜 먹기도 하면서 즐거운 졸업반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에게 놀라울 정도로 빠진 날 발견했다. 나는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기위해 항상 귀기울이고 있었고, 이어폰을 끼고 학교에 등교하면서도 사실은 음악도 틀어놓지 않은채로 그녀의 단짝친구와 대화하는 그녀의 말을 경청하곤 했다. 나는 다른곳을 보고 있으면서도 그녀의 목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이윽고는 그녀가 자신의 첫사랑에 대해 이야기했을때 그녀가 내 기분 변화를 알아챌 정도로 ㅡ 이유는 얼버무렸지만, 동요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곧 졸업한다, 게다가 그녀는 한국으로 진학하길 원하고 있었고 나는 영국진학을 원했다. 아마 금년 9월부터는 서로 마주치기 힘들 상황이었다. 그런 운명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과 몇달전까지만 해도 나는 청소년기의 남학생들에게 자주 나타나고는 하는 근거없는 낙관론적 자세를 견지하고 있어서였을까, 그런것은 어떠한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었다. 10,000km정도는 내 노력으로 극복할수 있지 않을까- 하는 대책없는 낙관론.
나는 미쳐가고 있었다. 그녀와 내가 줄곧 앉곤 하던 자리의 거리는 항상 1m였다. 1m, 그것이 우리의 거리였다. 그녀와의 거리나 그녀의 졸업은 아무래도 좋았다. 나에게 가장 두려웠던 바는 그녀가 나를 남자로 보느냐였다.
그녀의 시선을 신경쓰며 나는 12학년 초부터 운동을 시작했고, 몸을 불려왔다. 그녀의 시선을 신경쓰며 나는 멋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지나가며 던지는 '그 옷 예쁘다' 라는 말 한마디에 짜릿한 전율을 느끼기도 했다.
하여. 나는 그녀의 이성 친구, 나의 이성친구와 상담하기도 했지만 그들의 대답은 대체로 "여자들은 특유의 감이 있어서 왠만해선 어떤 남자애가 자길 좋아하면 거의 알게되", 라는 애매모호한 대답 뿐이었다.
나는 그녀의 마음을 얻으려 노력했다.너무 좋아하는 티가 나지 않게 자신을 최대한 자제하면서도 이따금 카톡할 꺼리가 생기면 카카오톡을 보내기도 했고, 학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그녀의 스케쥴을 파악하고 있다가 두번즈음은 우연을 가장해, 두번 즈음은 그녀의 물건을 전해준다며 찾아 만나기도 했다.
그렇게 우연을 가장하면서 그녀의 생일선물을 선물하기도 했고, 선물을 받고 기뻐하던 누나의 모습에 가슴벅차하던 기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누나는 진심으로 고마워했고, 생전 먼저 카카오톡을 하는법이 없던 그녀가 고맙다며, 정말 마음에 든다며 감사인사를 보내기도 했다. 2만원 짜리 립글로즈 치곤 괜찮은 성과였다. 당일 친구들과 채팅으로 농담이나 주고받는데 '너 약했냐?' 라는 소리를 들을정도로 당시의 나는 들떠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다였다. 곧있으면 대학 진학인 그녀는 특례입시 준비에 너무나도 바빴고, 그녀와 만날기회는 학교 이외엔 좀체 생기지 않았다.
상황은 완전히 정체되어 버렸다. 나는 그녀에게 끊임없이 좋아한다는 암시를 보냈으나 그녀는 나를 친한 동생 이외로는 생각치 않는듯 했다. 내가 카톡을 하면 친절히 받아줬지만, 그녀가 먼저 카톡을 하는 법은 없다. 그녀의 1순위는 언제나 대학이었다.
나는 정체된 상황에 대한 답답함에 미쳐버릴 노릇이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상담을 해보자, 그들은 나를 굉장히 한심히 여기기도 하고, 딱히 여기기도 하며 결국은 고백을 종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도, '지금 아니면 평생 못할거야' 라는 생각에 얼마간은 마음을 굳히는듯 했다. 이마음을 전하자, 라고.
하지만 매일같이 얼굴을 맞대는 친구들의 의견은 달랐다. 학교에서 가장 친하게 지내는 일본인 여자친구와 베트남 남자친구에게 누나에게 고백하겠다는 결심을 말하자, 한국 친구들과는 상반된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마라', 라고. 그들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고백해서 얻고 싶은게 뭐냐', '고백하면 지금과 같은 친구관계로는 돌아가지 못한다' '지금 네가하는 고백은 용기가 아니라 절박함이다' '그녀가 널 좋아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지도 않은데, 고백은 도박이 아니라 확인을 위해 하는거다' 라고.
완전히 꼬여버린 이 상황에, 너무나 답답한 마음뿐 이었다. 우유부단한 나는, 고백을 또다시 미뤘다.
크리스마스에는 독서실에서 시험공부를 하고 돌아오며 길거리를 보는데 즐거워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에 이질감과 답답함이 벅차올랐다. 집에와선 아무것도 할수 없었다. 까닭모를 울적함과 공허함, 절망감과 상실감이 머리와 심장 모두에 맴돌고 있었고, 아무 생각도 할수 없었다, 나는 우울함의 이유도 모르고 있다가,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고나서야, 그제서야 내가 우는 이유를 깨달았다. 나는 화가나면서도, 내 자신이 딱해 울었다. 짝사랑같은거 하지말걸, 후회하면서 울었다. 초라한 내 자신을 욕하며 울었다.
그녀를 사랑하기 시작한 이후로 나는 점점 자기혐오적으로 변해갔고, 타인을 대할때는 줄곧 '나'를 가장한 페르소나를 뒤집어쓰고 연기해온 덕에 들키지 않은, 왕따와 부모님의 이혼 등 순탄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을 보내며 형성된 이중인격적인 성정과 뒤틀린 성격이 더욱더 뒤틀리는것이 느껴졌다. 내 자신이 피폐해짐을 느끼고 있었다. 사랑은 정신병적 증상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사진을 컴퓨터에 모았고, 스파이 카메라로 그녀의 평소 모습을 찍어 컴퓨터로 보내 저장했으며, 그녀와의 대화를 때때로 녹음했다.
고백을 하고 싶다. 지금 고백하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못할것만 같고, 평생 후회 할것 같다. 그녀를 너무나도 사랑한다. 그녀와는 결혼도 할수 있을것만 같이 그녀를 사랑한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나의 고백을 허락하지 않는다. 라는 가슴을 쥐어 뜯고 싶은 상황이었다.
그렇게, 하염없이 시간만 보냈다. 어제가 오늘같고 오늘이 어제같은 평온-을 가장한- 학교생활을 하루하루 보내면서, 그녀를 보면서도 아무렇지 않은듯 가장하면서, 속은 썩어 문드러져 갔다. 그녀를 사랑하며 얻은 조울증적 성격과 이중인격적 모습은 날이 갈수록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하는거 아닌가 하는 위기감까지 들정도로 커져갔다. 나는 미쳐가고 있었다.
항상 밝은 나를 연기하는 나는 친구가 적은편이 아니었다. 아니 되려 유쾌한 친구들을 잔뜩 가진 편이었다. 주말마다 어울려 놀곤 하던 주로 경상도 출신의 유쾌한 녀석들로 구성된 한국인 친구들과 6명의 갱을 이루고는 맛집탐방, 피씨방을 전전하기도 했고, 위에 이미 언급된 일본인, 베트남인 친구와 일식집에서 3시간 내내 수다를 떨기도 했고, 아주 친한 한국인 여자친구와는 소울메이트를 자칭하며 서로 10년뒤에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며 깔깔거리곤 했다.
그 순간이 즐겁지 않다는건 아니었다. 다만, 혼자가 되면 상황은 달랐다. 남는게 없었다. 혼자가 되면 마음은 공허하게 비었고, 그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시간을 보내고 온듯했다. 그녀를 사랑하면서 심해진 증상이었다. 페르소나를 뒤집어쓰고 연기하기.
총체적 난국이었다. 정신적 멘토로 의지하던 선배는 영국으로 떠났고, 시험은 다가오고 있었고, 그녀를 사랑하며 심해진 정신병적 집착과 조울증세는 심해지고 있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나에게는 AS level, 그녀에겐 A2 level 시험이 다가왔다. 학교는 방학을 맞았고, 나는 독서실에 나가기 시작했다. 소울메이트라고 서로 부르곤 하던 한국인 여자친구는 내 정신적 불안정함을 깨달아가기 시작했고, 그녀는 나를 걱정했다.
그리고 나는 결심했다.
고백하자고.
그리고 나는 어제, 그녀를 불러냈다. 그녀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저 '왜? 맛있는거 사주게?ㅋㅋㅋㅋ' 라고 답장해왔을뿐.
토할것 같은 긴장감에 덜덜 떨던 나는, 오히려 8시 30분, 약속시간에 그녀를 만나자 오히려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녀는 내가 준 초콜릿을 기뻐하며 받았고, 우리는 그녀의 학원쪽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게 그 맛있는거야? 초콜릿도 받았으니 카페라도 가서 마실거라도 사줄게!' 라고 생글생글 웃으며 제안해왔다. 시험걱정, 시답잖은 잡담, 지금 나와 독서실에 같이 나오는 그녀의 단짝친구 이야기, 옷이야기. 일상적인, 가벼운 이야기를 하며 우린 걸었다.
그리고, 우리는 카페에 다다랐고, 나와 그녀는 음료를 주문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잠깐 화제가 떨어져 침묵이 둘사이에 자리 잡았을때, 나는 수십번이나 머릿속으로 되뇌어온 이야기를 꺼냈다.
'누나'
'응?'
'만약에, 무언가 성공할수도 실패할수도 있는 일이 있다고 해요.'
'누나라면, 실패한다고 가정할 경우에 하고서 후회할래요 아니면 하지 않고 후회하지 않을,' 나는 긴장한탓에 잠시 말을 더듬었다. '아니, 후회할래요?'
그녀는 잠시 미묘한 표정을 짓더니 평소의 그녀대로 생글생글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나, 너 무슨 이야기 하려는지 알것같아.'
'네? 뭔데요'
'헤헤, 잠깐 생각좀 하고'
그녀는 웃는 모습 그대로였다. 평소의 그녀대로 귀여운 눈웃음을 지어가며, 애써 태연을 가장하려는 모습으로.
'전 역시, 하고 후회할래요'
그녀는 장난기 넘치는 그녀 모습 그대로 '아냐, 하지마' 하며 날 만류했다. 그 모습 마저 매력적이어서, 심장이 쿵쿵 뛰었다.
'누나, 제가 예전에 카톡으로 이성문제 상담한적 있죠?'
'그거 누나 얘기였어요.'
'누나, 좋아해요.'
'선후배나, 친한 누나 동생이 아니라, 이성으로써'
'근데 나 2달후면 졸업해' 그녀는 미묘하게 웃는 얼굴 그대로였다.
'알아요. 그래서 많이 고민했어요. 고백 해야할지 말아야 할지'
'근데, 역시, 전하지도 못하고 끝내는건 역시 슬프잖아요.'
'2달후면 졸업인것도 알아요.'
'하지만, 어떤 대답이던 괜찮아요. 어느정돈 각오하고 나온거니까.'
'누나, 좋아해요.'
잠시간의 침묵이 자리잡았다.
그리고 누나는 웃고 있는것 같으면서도 전혀 웃고있지 않은, 미묘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원빈이 와도 지금은 무리야.'
'곧 있으면 나 입시잖아.'
오히려 예상한 대답이어서 였을까, 심장이 내려앉는듯 하면서도 묘하게 평온했다. 아니, 오히려 모종의 만족감이 자리잡았다. 전신마취 뒤 막 깨어났을때의 몽롱하고 아련한 그 느낌같은 만족감. 나도 고백하는 내내 오히려 평온한 기분으로, 웃는 얼굴인 채로였다. 그녀와의 약속시간 1시간전부터 나와 미친듯이 요동치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했었음에도.
'그래도, 고마워.'
'어떻게보면 굉장한 칭찬이잖아? 너도 알다시피 난 칭찬에 약하고'
'알아요.'
그리고 누나는 의미없는 잡담을 이어갔다. 하지만 표정은 애써 태연을 가장한 미묘한 표정이었다. 나는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면서도, 내가 차인건가? 라는 비현실적인 감각이 몸을 옥죄어 오는것을 느꼈다. 그런 의미없는 잡담을 이어가다, 시간을 물은 그녀에게 나는 학원 시작 10분전이라고 말했고, 그녀의 학원 앞까지 역시 일상적 잡담을 이어가며 바래다 줬다. 머릿속은 텅비어있었다. 그녀와의 잡담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윽고 그녀의 학원앞에 다다랐을때, 사실 그녀의 말을 제대로 듣고있지도 않던 난 물었다
'저, 차인건가요?'
'그렇게 된건가?' 그녀는 여전히 장난기 넘치는 얼굴이었다. 아마 장난기 넘치는 얼굴을 가장해서 어색함을 숨기려 하는거겠지.
'...그래요. 역시, 좋은 선후배로 남아요.'
'응, 나 들어갈게. 다음에 봐.' 그녀가 돌아섰다.
'누나'
나는 그녀를 불러세웠다. 그리고 그녀의 오른손을 붙잡았다.
'잠깐만, 잠깐만 이러고 있어요.'
그녀는 웃는채였고, 나는 눈을 감고 왼손을 타고 전해져 오는 그녀의 체온을 느끼고 있었다. 오른손엔 그녀가 사준 카페모카 아이스 블랜드를 들고서. 5초라는 찰나였을까. 나는 그녀의 손을 놓았다. 그녀의 손은 따뜻하지도, 차지도 않은, 미적지근한 기분이었다.
'조금은 마음이 시원해졌을지도'
그녀는 웃으며 돌아섰고, 나에게 안녕이라고 말했다. 나는 학원으로 들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학원으로 들어가면서 다시 돌아보고는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나는 완전히 얼이 빠진채로 걷기 시작했다. 그녀가 떠나자 그제서야 뒷통수를 후드려 맞은듯한 기분이 들었다. 온갖 생각이 들었다. 머리속이 완전히 뒤죽박죽이었다. 온갖 노이즈와 온갖 잡음이 섞인, 그녀와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고, 혐오스럽게도, 나에게 호감을 보이던 여자아이의 얼굴도 떠올랐다.
평소 소울메이트 한국인 여자친구와 자주 가던 어느 아파트 단지의 벤치로 걸었다. 벤치에서 혼자 맥주 4캔을 사와 까마셨다. 집안의 술고래 유전자가 이때는 원망스러웠다. 좀 취하고 싶었는데, 조금 어지러운것 빼곤 전혀 취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에게 호감을 보이던, 아까 문득 떠올리고 내 자신에게 진저리를 친, 그 아이에게 그 모습을 보여버렸고, 그녀를 실망시켰다. 그녀는 나를 걱정하면서도 꾸중했다. 집에 빨리 가라면서.
집에 갈수 없었다. 그녀에게 묻지 못한것이 있었다.
나는 독서실에 가 곧장 짐을 싸고 앞뒤 가리지 않고 그녀의 아파트 앞으로 자전거를 몰았다. 11시 40분이었다. 11시 40분부터 1시 25분까지 나는 무작정 그녀를 기다렸다. 학원이 이 시간 사이에 끝나길 빌면서.
하지만 그녀는 오지 않았다. 나는 어지러운 머리를 정리하려 노력하며, 정신 차리려 노력하며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려 애썼다. 그녀와의 기억을 떠올리려 애썼다.
그녀는 오지 않았다.
나는 구차해보일지 몰라도, 그녀에게 묻고 싶었다. 너무나도 사랑했던 그녀기에. 실연 한번에 포기하기엔 가슴이 찢어지는 그녀이기에.
'입시가 없었다면 나를 받아 주었겠는가, 다른 남자를 사귀지 말라는게 아니다. 내가 영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돌아왔을때 나에게 기회를 주겠는가'
1시 25분. 액정에 표시된 배터리 2%를 응시하던 나는, 그녀에게 '반드시 묻고 싶은게 있었어요. 오늘은 학원이 일찍 끝났나보네요. 지금까지 기다리다가 집에 가요.' 라고, 술기운과 이미 고백해버린 마당에 막가보자는 치기어린 마음이었을까, 그런 메세지를 남기곤 집으로 왔다. 내리막길에서 전기엔진을 풀로 놓고, 페달을 밟으며 브레이크도 잡지 않고 내려오는데, 기묘한 해방감이 느껴졌다.
이젠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무엇을 목표로 살아야할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혼란스럽다.
세줄요약
1. 나병신새끼
2. 고백함
3. 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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