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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반만에 고딩시절 첫사랑 만난 썰(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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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393회 작성일 20-01-08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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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시간 끝나서 썰즈넷 옴 헤헷
이전 글 댓글에 밥줄로 보인거라는 댓글이 있더라고ㅋㅋㅋ
나 기말 끝나고 영화보기로 함 :)
그리고 그런애 아니여 ㅋㅋ 그런 애였으면 애초에 그때 내가 사랑했을 일도 없었겠징
나 눈 상당히 높은 남자임




어쨌든 나와서 카페를 찾기로 했어.
날씨가 막 더울 정도는 아니고 적당히 따사로운 초여름 날씨?
걔 표현을 빌리자면 '아직은 햇살이 따갑지 않은' 날씨래.
여튼 걔랑 나란히 붙어서 걷는데
막 차도 지나다니고 햇볕은 쨍쨍 사람들도 많고
불쾌지수가 막 치솟고 그래야 정상인데 이상하게 상쾌했음ㅋㅋ
그래서 처음 들어갔던 카페는 자리가 맘에 안든다는 핑계로 나가서 딴데 가자고 함 흐힛
사실 조금만 더 같이 걷고 싶어서 그랬어.
그래서 뭐 자주 가본 곳 있느냐 어디 커피가 맛있느냐 이런 시덥잖은 이야기 하다가
결국 별다방을 가게 됐음.
너네들 별다방이 흰 고래 모비딕에서 나오는 일등 항해사 이름인거 알아?
그냥 알아둬. 이런 잡지식 쓸모있지는 않지만 이야깃거리론 좋당.


여튼 그렇게 카페에 들어가서 2층 소파에 앉았지.
좀 낮고 작은 테이블이랑 1인소파?
얘기 나누려면 좀 숙이고 다가서야 하는 불편함이 있긴 한데
오히려 그 핑계대고 다가갈 수 있으니까 좋은 거 같기도 하고 ㅋㅋ
난 라임티 마시고 걔는 커피 뭐시깽이 마셨는데 뭐였는지는 생각이 안난다. 난 커피 잘 안마심
여튼그렇게 차를 앞에두고 이야기를 실컷 했지 진짜.
밥먹을 때는 뭔가 소개팅 같은 느낌이었다면
카페에 앉아서는 추억돋는 얘기들 하면서 진짜 오랜만에 만난 친구 느낌이 들더라.
고등학교 시절에 이랬지 저랬지
누구는 어쨌네 걔는 소식이 없네 이러면서 시시콜콜 시답잖은 이야기들 하다가
내가 가장 어렵고 고민이 많았던 순간이 언제였던가 하는 얘기를 했는데,
보통은 남들한테는 잘 하지만 얘한테는 정말 하기 어려운 얘기였지.
내 첫 사랑이자 첫 고백의 이야기였어.
그거 나올때쯤 이미 될대로 되라는 마인드여서 그랬는지, 얘기가 술술 나오더라.
내가 고1 때 편지로 고백했는데
그땐 여자랑 어떻게 사귀어야 하는지, 어떻게 친해져야 하는지조차 모르던 어리벙벙한 때라서
1.2,3 이라는 단계가 있으면 그딴거 다 건너뛰고 바로 3으로 가서 좋아한다고 고백한거지.
물론 얘도 벙쪄서 거절했고.
여튼 그러면서 그 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떨리고 어렵던 순간이었다고,
그 이후로 내가 뭐든 할 때 용기있게 하는 법을 알게 됐다고 고맙다고 그랬지 ㅋㅋ
그런 이야기도 나누고
내가 좀 감성돋는 사람이라 미술동아리 했던 내용이나, 고민이 있으면 글로 쓴다는 둥
그런 잡설을 하다보니
예전에 편지 정말 잘 썼었다고 ㅋㅋㅋ 무슨 시인줄 알았다면서 정말 감명깊었다는거임ㅋㅋㅋ
에라이 잘 쓰면 뭐하냐 성공을 못했는데 하면서 같이 웃었다.


또 이런 얘기들 말고도 지금 사는 이야기
어느 교수가 자길 힘들게 하네, 진로 고민이라던지 (난 대학원생이고 얘는 대학원 고민중이거든)
이런 이야기를 하다보니까 어느새 세시간이나 흐르더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 한다는게 뭔지 사실 잘 몰랐거든.
지금까지 사귄 여친들이랑도 이런 경험은 없었는데, 진짜 시간이 확 지나가더라.
중간에 영화 취향 이런 이야기도 하다가
최근에 바빠서 영화를 잘 못봤다, 위대한 개츠비 보고싶었는데... 맞아맞아 나도
이러다가 걔가 그럼 담엔 영화 같이 보자! 이러더라.
그래서 기말고사 끝나고 내가 또 올라가면 그때 같이 영화보기로함
살짝 설렜음 헤헤.
그러고 자리를 뜰 때쯤 너무 웃어서 볼아프다며 볼을 양손으로 감싸는데 귀염 대폭발해서 기절할뻔했음.
여튼 그렇게 차를 얻어먹었지.
퀴즈에 팀플에 바쁘다고 점심만 먹자던 애랑 이렇게 신나게 이야기할 줄 상상도 못했던 터라
괜시리 기분이 좋더라.
나중에 물어보니 자기도 바쁜거 아는데 너무 재밌어서 일어날 수가 없더래 ㅋㅋ


그러고 나왔는데, 바로 헤어지기 아쉬웠나보더라 얘도.
잠깐 걷자고 하더라.
그래서 내 생전 처음으로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 옆 인도를 산책했다.
공기도 매캐하고, 차소리도 시끄러운데
얘 목소리는 어찌나 잘 들리고, 기분은 어찌나 상쾌한지.
단 한 순간도 서로에게서 주의가 벗어나고 대화가 끊긴 적이 없었더랬지.


30분 정도 산책을 하다가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 주고, 다음에 또 보자는 말, 잘 들어가라는 카톡을 보내고 헤어졌다.
이게 벌써 2주 전이네.
서로 바쁘게 살다 보니 연락도 잘 안하고 하지만,
내가 해줬던 '간절하면 다 이루어지니까' 라는 말이 살짝 돌려서 카톡 대화명에 있는걸 보면서
다음 데이트에는 내 마음을 담은 편지 하나 써서 줄까 생각중이다.
시시껄렁한 고백 편지가 아니라
너가 나에게 어떠한 흔적이었으며, 나는 그 책장을 어떻게 덮었는지.
내 인생에서 나에게 미친 영향이 얼마나 중요했으며
그것에 어떻게 감사하는지를 적어서 전해줄까 한다.
그리고 이제 첫사랑이 아니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당당하게 다가가볼까 해.


여기까지 읽어줘서 고맙다. 오늘 하루 즐겁게 마무리하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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