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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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340회 작성일 20-01-08 03:26본문
안녕 형들
오늘은 인생썰을 풀어보려해
사실 나는 힘들게 산 인생도아니고
나보다 훨씬 힘들게 살아온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걸 알아서
우리 집안은 왜 이런가 하고 세상을 한탄하지않아
난 아주 올바르게 자랐고 자신감있게 살아가는 스물다섯의 청년이야.
여자친구문제로 심난하기도 하고 그래서 일하다멈추고
시간도 보낼겸 끄적여볼게.
좀 길어질 것 같고 몇번정도는 나눠쓸수도 있으니
그런거 싫어하는 사람은 꺼도좋아.
내 기억으로 우리집은 정말 가난했었어
단칸방에서 세가족이 살았지.
두분은 맞벌이를 하셨고 나는 어린이집인지 놀이방인지를 갔다가 어머니가 대리러올때까지 근처에 친척집에있었어
그럼 저녁9-10시가 되면 어머니가 날 데리고 집으로갔었지
근데 난 아버지에대한 기억이 거의 없어.
기억이 나는 거라곤, 아버지가 술먹고 나를 던졌던 기억이나
어머니랑 싸운기억 정도 뿐이야.
어머니도 항상 돈을벌어야했고 아버지가 거의 안계셔서 난 어려서부터 혼자하는 일이 많았어
난 5살때부터 목욕탕을 혼자 갔어
요즘에는 그렇지 않지만 예전에는 대부분의 집에서 일요일마다 목욕탕을 갔던것 같거든
어머니가 때밀이아저씨한테 부탁해놓으면 아저씨가 날 씻겨주고 때밀어주고 다 해주셨지.
그리고 7-8살 이빨이 빠지는 나이엔 혼자 의료보험증 들고 치과를 다녔어.
그리고 국민학교에 다닐때는 집이 이사를해서 버스를타고 다녔어
경기도 의왕에서 안양으로.
그렇게 지내다가 9살때 안양으로 이사를 가고 학교도 전학을 갔지.
그러던 어느날이었어.
우리 외가가 전라남도인데, 그 쪽으로 간다더라
근데 아버지는 회사일때문에 서울에 계신다고 했어
사실 이때부터 헤어져 산거였고 아무말없이 내려갔지만
나도 이 사실을 인지했었던 거는 같아
근데 엄마한테 한번도 아빠에 대한 소식을 물은적은 없었어
먼저 말씀 꺼내시기 전에는.
그리고 그 전남에서 사는데(지역은 밝히지 않을게)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인가? 어떤 아저씨랑 엄마가 만나는 것 같더니 어느새 같이 살았어
그리고 그아저씨는 나보다 세살많은 형이 있었어
어찌어찌하다보니 그렇게 네가족이 되어서 같이 살았어
명절이되면 나는 생판모르는 집에가서 세배를하고 돈을받았고 처음보는 친척들한테, 내 성을 바꿔가며 이야길했지.
성이 다른 것 때문에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는 것도 꺼려했어
집에오면 상장같은걸 걸어놨다던가, 어떤식으로든 이름이 보이고, 친구들이 누구냐고 물으면 마땅히 대답할게 없었고
어린 나이에는 이런것들이 참 부끄러웠거든
이런것 말고도 문제는, 이 아저씨도 술버릇이 안좋았어.
술을 많이 드시고오면 새벽까지 훈계를 하는건 일쑤였고
욱 하는 성질때문에 문제가 많았어
그 성격때문에 직업도 이것저것 했고
어떤때에는 중고생인 형이랑 나를 데리고 나가서 아파트에
무슨 녹두즙 같은 선식같은걸 배달하는걸 같이하기도 했었어
이러면서 집안엔 빚이 불어났고, 그걸 떠앉게된건 우리엄마였어
그래서 우리엄마는 절대 사치를 하지않고 계획적으로 돈을 쓰시는 분인데도 지금 신용불량자에서 벗어나지 못했어
한번은 심하게 싸우고 형 포함해서 세명이 집을 나온적도있었어. 그래서 할머니가 병원신세로 계셔서 그 할머니댁에 몇일 있었고.
이대로안되겠다 싶었던지 어머니는 어떻게 악착같이 몰래 돈을 모으셨나봐.
그래서 임대아파트를 들어갈정도로 모은거지
그리고 심하게 싸운 어느날 그 집에서 나왔지.
그리고 지금 6-7년이 지났는데 어머니는 계속 빚을 갚고 계셔
나는 대학교4학년을 앞두고 휴학을했어
여행이란걸 해보고싶었거든
우리어머니는 어렸을때도 가난해서
초중학생땐 못가고 고등학교때 첫 수학여행을 가는데 고작 3천원을 들고가셨데.
당시 햄버거가 700원이였는데, 도저히 사먹을 수가 없어서
나는 배부르다며 너네끼리 먹고 오라고 하셨었고
젊음날에 어디 놀러가본적도없이 18살때부터 기술배우고
성인되자마자 일시작하고 23살에 날 낳고 지금까지 고생하셨어.
이런 어머니는 젊음을 일만하며 보낸게 너무나도 아쉬워서 나한테 말씀하셔
아무리 살기 각박하고 힘들어도 젊을때, 학생일때 여행 한번이라도 다녀오라고.
하지만 집에서 여행간다고 돈을 받을수 있는 처지는 아니야
그래서 나는 지금 7시반에 일어나서 출근, 오후 6시까지 회사에서 일을하고 끝나자마자 밥 급하게먹고 지하철 타서 7시까지 출근해서 새벽1-2시까지 일을하고있어
집에서 주는 돈으로 여행가는 애들보면 좋겠다라는 생각은 있지만, 절대 우리가정사 탓을 하지는 않고 잘 살아가려해
쓰다보니 끝맺음이 이상한데,
여튼 그래서 나는 올해 9월이후로 어디로든 떠날 계획이야.
여튼 뭐 그래. 읽어줘서 고마워
오늘은 인생썰을 풀어보려해
사실 나는 힘들게 산 인생도아니고
나보다 훨씬 힘들게 살아온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걸 알아서
우리 집안은 왜 이런가 하고 세상을 한탄하지않아
난 아주 올바르게 자랐고 자신감있게 살아가는 스물다섯의 청년이야.
여자친구문제로 심난하기도 하고 그래서 일하다멈추고
시간도 보낼겸 끄적여볼게.
좀 길어질 것 같고 몇번정도는 나눠쓸수도 있으니
그런거 싫어하는 사람은 꺼도좋아.
내 기억으로 우리집은 정말 가난했었어
단칸방에서 세가족이 살았지.
두분은 맞벌이를 하셨고 나는 어린이집인지 놀이방인지를 갔다가 어머니가 대리러올때까지 근처에 친척집에있었어
그럼 저녁9-10시가 되면 어머니가 날 데리고 집으로갔었지
근데 난 아버지에대한 기억이 거의 없어.
기억이 나는 거라곤, 아버지가 술먹고 나를 던졌던 기억이나
어머니랑 싸운기억 정도 뿐이야.
어머니도 항상 돈을벌어야했고 아버지가 거의 안계셔서 난 어려서부터 혼자하는 일이 많았어
난 5살때부터 목욕탕을 혼자 갔어
요즘에는 그렇지 않지만 예전에는 대부분의 집에서 일요일마다 목욕탕을 갔던것 같거든
어머니가 때밀이아저씨한테 부탁해놓으면 아저씨가 날 씻겨주고 때밀어주고 다 해주셨지.
그리고 7-8살 이빨이 빠지는 나이엔 혼자 의료보험증 들고 치과를 다녔어.
그리고 국민학교에 다닐때는 집이 이사를해서 버스를타고 다녔어
경기도 의왕에서 안양으로.
그렇게 지내다가 9살때 안양으로 이사를 가고 학교도 전학을 갔지.
그러던 어느날이었어.
우리 외가가 전라남도인데, 그 쪽으로 간다더라
근데 아버지는 회사일때문에 서울에 계신다고 했어
사실 이때부터 헤어져 산거였고 아무말없이 내려갔지만
나도 이 사실을 인지했었던 거는 같아
근데 엄마한테 한번도 아빠에 대한 소식을 물은적은 없었어
먼저 말씀 꺼내시기 전에는.
그리고 그 전남에서 사는데(지역은 밝히지 않을게)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인가? 어떤 아저씨랑 엄마가 만나는 것 같더니 어느새 같이 살았어
그리고 그아저씨는 나보다 세살많은 형이 있었어
어찌어찌하다보니 그렇게 네가족이 되어서 같이 살았어
명절이되면 나는 생판모르는 집에가서 세배를하고 돈을받았고 처음보는 친척들한테, 내 성을 바꿔가며 이야길했지.
성이 다른 것 때문에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는 것도 꺼려했어
집에오면 상장같은걸 걸어놨다던가, 어떤식으로든 이름이 보이고, 친구들이 누구냐고 물으면 마땅히 대답할게 없었고
어린 나이에는 이런것들이 참 부끄러웠거든
이런것 말고도 문제는, 이 아저씨도 술버릇이 안좋았어.
술을 많이 드시고오면 새벽까지 훈계를 하는건 일쑤였고
욱 하는 성질때문에 문제가 많았어
그 성격때문에 직업도 이것저것 했고
어떤때에는 중고생인 형이랑 나를 데리고 나가서 아파트에
무슨 녹두즙 같은 선식같은걸 배달하는걸 같이하기도 했었어
이러면서 집안엔 빚이 불어났고, 그걸 떠앉게된건 우리엄마였어
그래서 우리엄마는 절대 사치를 하지않고 계획적으로 돈을 쓰시는 분인데도 지금 신용불량자에서 벗어나지 못했어
한번은 심하게 싸우고 형 포함해서 세명이 집을 나온적도있었어. 그래서 할머니가 병원신세로 계셔서 그 할머니댁에 몇일 있었고.
이대로안되겠다 싶었던지 어머니는 어떻게 악착같이 몰래 돈을 모으셨나봐.
그래서 임대아파트를 들어갈정도로 모은거지
그리고 심하게 싸운 어느날 그 집에서 나왔지.
그리고 지금 6-7년이 지났는데 어머니는 계속 빚을 갚고 계셔
나는 대학교4학년을 앞두고 휴학을했어
여행이란걸 해보고싶었거든
우리어머니는 어렸을때도 가난해서
초중학생땐 못가고 고등학교때 첫 수학여행을 가는데 고작 3천원을 들고가셨데.
당시 햄버거가 700원이였는데, 도저히 사먹을 수가 없어서
나는 배부르다며 너네끼리 먹고 오라고 하셨었고
젊음날에 어디 놀러가본적도없이 18살때부터 기술배우고
성인되자마자 일시작하고 23살에 날 낳고 지금까지 고생하셨어.
이런 어머니는 젊음을 일만하며 보낸게 너무나도 아쉬워서 나한테 말씀하셔
아무리 살기 각박하고 힘들어도 젊을때, 학생일때 여행 한번이라도 다녀오라고.
하지만 집에서 여행간다고 돈을 받을수 있는 처지는 아니야
그래서 나는 지금 7시반에 일어나서 출근, 오후 6시까지 회사에서 일을하고 끝나자마자 밥 급하게먹고 지하철 타서 7시까지 출근해서 새벽1-2시까지 일을하고있어
집에서 주는 돈으로 여행가는 애들보면 좋겠다라는 생각은 있지만, 절대 우리가정사 탓을 하지는 않고 잘 살아가려해
쓰다보니 끝맺음이 이상한데,
여튼 그래서 나는 올해 9월이후로 어디로든 떠날 계획이야.
여튼 뭐 그래. 읽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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