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기념) 우리집 가족사 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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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404회 작성일 20-01-10 02:46본문
우리집은 대대로 흙수저 집안.아버지는 청소일을 하셨다. 좋은 말론 환경미화원. 나름 9급 공무원임.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옛날엔 진짜 못배우고 못사는 사람들이 최후의 최후에 선택할 법한 직업이었다.
그런 내 아버지는 평소엔 과묵하다가도 술만 들어가면 사람이 돌변했다.말도 안 되는 걸로 트집잡아서 가족들한테 욕을 하고 손찌검하기 일쑤였고한 번은 힘들게 사는 우리가족 많이 지원해주던 큰이모네 사촌형을 개패듯이 패는바람에 관계가 소원해진 적도 있음.
제 3자한테도 수틀리면 손을 대는데 가족이야 말해 뭐하겠는가.엄마는 아버지 술만 취하면 매맞고 눈물짓는게 일상.어렸던 나는 여동생 데리고 아버지 술 깰 때까지 동네를 배회하곤 했다.동생이 집에 가고싶다고 징징대는걸 달래느라 혼났지..
조금 더 커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됐을 때부턴 동생만 내보내고 나는 얻어맞는 엄마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아버지를 말렸다.하지만 초등학생이 아무리 용써봤자 노가다하는 어른을 어떻게 당해낼 수 있었을까...오히려 화를 돋궈서 더 심하게 줘터질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대가리가 어느정도 굵어진 고삐리 시절. 이런 지긋지긋한 세계를 벗어나고자 난 나름 공부도 열심히 했다. 공부만 잘하면 뭔가 바뀔 거라고 믿었거든...사실 믿을 게 공부밖에 없었고 할 수 있는 것도 공부밖에 없었기 때문이지만.
그 즈음의 나는 그렇게 공부를 핑계로 아버지가 술에 취해 집에 돌아오면 내 방문을 잠그고 바깥에 무슨일이 일어나도 신경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은 쓰였지만 억지로 신경쓰지 않는 척을 했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 아무리 난동을 피워도 어차피 다음날 아침이면 때린 아버지도 맞은 엄마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멀쩡한 상태로 돌아왔기 때문에.
그런데 그날은 평소와 달랐다. 문을 잠그고 내방에 틀어박혀 있던 나는 아버지의 구타소리와 함께 여동생의 비명소리를 들었다.
악 오빠 살려줘
그 소릴 듣고 반사적으로 뛰쳐나가서 내가 본 풍경은 지금도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진다. 동생은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쥐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머리는 쥐어뜯겼는지 산발을 하고 있었고 얼굴을 가린 손가락 사이로 시뻘건 피가 줄줄 새어나와 바닥에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뭐라 표현을 못하겠다. 머릿속이 하얘져서는 그냥 내 가족을 해친 이 아버지라는 인간을 죽여야만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지금이라면 달랐을지 모르겠지만, 그때의 나는 자제심도 뭣도 없었다. 그냥 몸이 시키는대로 아버지에게 달려들었다. 아버지 얼굴에 주먹을 휘두르고 넘어뜨리고 발로 차고 식탁 의자를 집어던지고... 그 한순간 만큼은 진짜 죽일 생각으로 아버지한테 덤볐던거 같다. 한없이 강하게만 느껴졌던 아버지는 사실 멀쩡히 서있기도 힘들정도로 술에 취해있었기 때문에 죽기살기로 덤벼드는 나에게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맞고만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엄마랑 동생이 나의 패륜짓을 일찍 말려줬다.엄마는 내 허리에 매달려서 아빠한테 이러면 안 된다고... 나는 말리지 말라고 죽여버릴거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동생이.... 오빠 제발 그만해라 내가 이렇게 빌게 나 지금 오빠 너무 무섭다...아버지한테 맞아서 피범벅이 된 동생이 아버지와 내 사이를 가로막으면서 무릎꿇고 빌더라. 동생이 진심으로 공포애 질려있는 모습을 보고 그제서야 나도 내가 도대체 지금 무슨짓을 하고있나 하면서 겨우 제정신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날밤 동네사람들이 신고해서 경찰이 집에 찾아왔고 아버지와 엄마는 파출소로 갔다. 나랑 동생은 당분간 외할머니집에 가 있었다. 내가 아버지 때린건 부부싸움 와중에 엄마가 때린걸로 됐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버지도 부러지거나 크게 상한곳은 없었던 모양이다.
그 후로 아버지의 폭력은 사라졌다. 대신 부자지간에 대화도 완전히 사라졌었는데...어느날은 엄마가 나를 앉혀놓고, 아빠가 그 일로 충격을 많이 받은것 같다, 술을 먹어도 만취하지 않을 정도로 자제한다, 아빠 너무 미워하지마라 아빠도 사실은 불쌍한 사람이다 라면서 오히려 나를 설득하면서 아버지와 나 사이에 다리를 놔주셨다.덕분에 '엄마를 봐서라도'라는 핑계로 아버지와의 관계를 좁혀나갈 수 있었고, 성인이 된 이후로는 완전히 풀어져서 보통의 부자지간처럼 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군대를 갔다온 후 얼마 지나지않아 아버지는 너무나도 허무하게 돌아가셨다. 뇌경색으로 병원을 오가시더니 급성심근경색으로 어느날 갑자기 세상을 뜨셨다.
아무도 안보는 곳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럴듯한 추억거리 하나 없다. 병원에 모시고 갔다 오는길에 곱창전골에 소주 한 병. 그게 내가 아버지와 함께한 유일한 외식이었다. 곱창전골. 고작 곱창전골이라니....이건 아마 내 평생에 한으로 남겠지.
오늘은 추석이다. 오랜만에 가족들이 모였다. 그날 코피를 쏟으며 엉엉 울던 동생이 지금은 만삭이되어 곧있으면 아이 엄마가 된다. 엄마는 나보다 더 건강해서 100살까진 거뜬하실거 같다. 항상 그렇듯이 빨리 결혼하라고 보채신다...으으.... 그리고 나는 아무도 안 읽을 장문의 뻘글을 남기고 있다...하...이렇게 가족이 모였는데...아버지 계셨으면 곧 손주보실 생각에 좋아하셨을텐데... 지금이라면 진짜 근사한 곳에서 외식도 하고... 그런 생각이 들어서 괜히 속이 시큰거린다.
모두 추석 잘 보내고 가족간에 화해있게 지내길 빈다.누구에게나 지금이 가장 좋을 때라고 생각한다.
그런 내 아버지는 평소엔 과묵하다가도 술만 들어가면 사람이 돌변했다.말도 안 되는 걸로 트집잡아서 가족들한테 욕을 하고 손찌검하기 일쑤였고한 번은 힘들게 사는 우리가족 많이 지원해주던 큰이모네 사촌형을 개패듯이 패는바람에 관계가 소원해진 적도 있음.
제 3자한테도 수틀리면 손을 대는데 가족이야 말해 뭐하겠는가.엄마는 아버지 술만 취하면 매맞고 눈물짓는게 일상.어렸던 나는 여동생 데리고 아버지 술 깰 때까지 동네를 배회하곤 했다.동생이 집에 가고싶다고 징징대는걸 달래느라 혼났지..
조금 더 커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됐을 때부턴 동생만 내보내고 나는 얻어맞는 엄마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아버지를 말렸다.하지만 초등학생이 아무리 용써봤자 노가다하는 어른을 어떻게 당해낼 수 있었을까...오히려 화를 돋궈서 더 심하게 줘터질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대가리가 어느정도 굵어진 고삐리 시절. 이런 지긋지긋한 세계를 벗어나고자 난 나름 공부도 열심히 했다. 공부만 잘하면 뭔가 바뀔 거라고 믿었거든...사실 믿을 게 공부밖에 없었고 할 수 있는 것도 공부밖에 없었기 때문이지만.
그 즈음의 나는 그렇게 공부를 핑계로 아버지가 술에 취해 집에 돌아오면 내 방문을 잠그고 바깥에 무슨일이 일어나도 신경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은 쓰였지만 억지로 신경쓰지 않는 척을 했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 아무리 난동을 피워도 어차피 다음날 아침이면 때린 아버지도 맞은 엄마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멀쩡한 상태로 돌아왔기 때문에.
그런데 그날은 평소와 달랐다. 문을 잠그고 내방에 틀어박혀 있던 나는 아버지의 구타소리와 함께 여동생의 비명소리를 들었다.
악 오빠 살려줘
그 소릴 듣고 반사적으로 뛰쳐나가서 내가 본 풍경은 지금도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진다. 동생은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쥐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머리는 쥐어뜯겼는지 산발을 하고 있었고 얼굴을 가린 손가락 사이로 시뻘건 피가 줄줄 새어나와 바닥에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뭐라 표현을 못하겠다. 머릿속이 하얘져서는 그냥 내 가족을 해친 이 아버지라는 인간을 죽여야만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지금이라면 달랐을지 모르겠지만, 그때의 나는 자제심도 뭣도 없었다. 그냥 몸이 시키는대로 아버지에게 달려들었다. 아버지 얼굴에 주먹을 휘두르고 넘어뜨리고 발로 차고 식탁 의자를 집어던지고... 그 한순간 만큼은 진짜 죽일 생각으로 아버지한테 덤볐던거 같다. 한없이 강하게만 느껴졌던 아버지는 사실 멀쩡히 서있기도 힘들정도로 술에 취해있었기 때문에 죽기살기로 덤벼드는 나에게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맞고만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엄마랑 동생이 나의 패륜짓을 일찍 말려줬다.엄마는 내 허리에 매달려서 아빠한테 이러면 안 된다고... 나는 말리지 말라고 죽여버릴거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동생이.... 오빠 제발 그만해라 내가 이렇게 빌게 나 지금 오빠 너무 무섭다...아버지한테 맞아서 피범벅이 된 동생이 아버지와 내 사이를 가로막으면서 무릎꿇고 빌더라. 동생이 진심으로 공포애 질려있는 모습을 보고 그제서야 나도 내가 도대체 지금 무슨짓을 하고있나 하면서 겨우 제정신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날밤 동네사람들이 신고해서 경찰이 집에 찾아왔고 아버지와 엄마는 파출소로 갔다. 나랑 동생은 당분간 외할머니집에 가 있었다. 내가 아버지 때린건 부부싸움 와중에 엄마가 때린걸로 됐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버지도 부러지거나 크게 상한곳은 없었던 모양이다.
그 후로 아버지의 폭력은 사라졌다. 대신 부자지간에 대화도 완전히 사라졌었는데...어느날은 엄마가 나를 앉혀놓고, 아빠가 그 일로 충격을 많이 받은것 같다, 술을 먹어도 만취하지 않을 정도로 자제한다, 아빠 너무 미워하지마라 아빠도 사실은 불쌍한 사람이다 라면서 오히려 나를 설득하면서 아버지와 나 사이에 다리를 놔주셨다.덕분에 '엄마를 봐서라도'라는 핑계로 아버지와의 관계를 좁혀나갈 수 있었고, 성인이 된 이후로는 완전히 풀어져서 보통의 부자지간처럼 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군대를 갔다온 후 얼마 지나지않아 아버지는 너무나도 허무하게 돌아가셨다. 뇌경색으로 병원을 오가시더니 급성심근경색으로 어느날 갑자기 세상을 뜨셨다.
아무도 안보는 곳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럴듯한 추억거리 하나 없다. 병원에 모시고 갔다 오는길에 곱창전골에 소주 한 병. 그게 내가 아버지와 함께한 유일한 외식이었다. 곱창전골. 고작 곱창전골이라니....이건 아마 내 평생에 한으로 남겠지.
오늘은 추석이다. 오랜만에 가족들이 모였다. 그날 코피를 쏟으며 엉엉 울던 동생이 지금은 만삭이되어 곧있으면 아이 엄마가 된다. 엄마는 나보다 더 건강해서 100살까진 거뜬하실거 같다. 항상 그렇듯이 빨리 결혼하라고 보채신다...으으.... 그리고 나는 아무도 안 읽을 장문의 뻘글을 남기고 있다...하...이렇게 가족이 모였는데...아버지 계셨으면 곧 손주보실 생각에 좋아하셨을텐데... 지금이라면 진짜 근사한 곳에서 외식도 하고... 그런 생각이 들어서 괜히 속이 시큰거린다.
모두 추석 잘 보내고 가족간에 화해있게 지내길 빈다.누구에게나 지금이 가장 좋을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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