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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에서 만난 첫사랑 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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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365회 작성일 20-01-10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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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인천에서도 가장 후지다는 동인천 출신이다.


서로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성당에서였다. 나는 친구따라 맛있는 걸 먹으러 다녔었고, 그 아이는 온 가족이 다같이 성당을 다니던 케이스였다. 나는 사실 보잘 것 없었지만 그 아이는 성당에서도 예쁘다고 소문난 하얗고 아름다운 아이였다. 대충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아이는 원래 강원도 출신인데 아버지가 자동차 관련 일을 하셔서 인천에 이사왔다고 듣게 되었다. 강원도 출신은 뭔가 까무잡잡하고 시골스러운 이미지였는데, 그 아이는 내가 본 어떤 서울 사람들 보다도 희고 나긋나긋한 말투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예쁘고 조신한 그 아이와는 달리 나는 키만 컸지 까까머리에 (동인천지역은 아직까지도 두발규제가 있는 학교들이 많다.) 여드름도 나고 숫기가 없어 틱틱댈 줄이나 아는 놈이었다. 거기다 취미는 게임! 이보다 더 찐따같은 스펙도 없을 것이다. 그 아이를 계속 눈여겨 보게 되었지만, 참 이상하게도 그 아이 근처 10m 안에도 접근하지도 않게 되었다. 그러나 항상 기회는 있다고, 성당에서 청소년부 겨울 수련회를 하게 되었다.
나와 그 아이는 같은 조였다. 덕분에 처음 서로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뭐 여느 성당이나 교회 수련회가 그렇듯 같이 놀고 먹고 예배하다보니 가까워 지는 것은 생각보다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그 아이와 괜히 떨어지려고 노력했지만, 그 아이가 워낙 붙임성도 좋고 착하다보니 내 마음의 벽도 허무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둘이 있는 시간은 없었고 수련회 마지막날 밤 괜히 설레는 마음에 혼자 뒷동산에 올라가 괜히 부풀어오르는 마음을 눌러보려고 마인드컨트롤을 하기 시작했다.
아, 우연이라는 것은 언제나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그 아이가 내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고 날 따라 뒷동산에 올라온 것이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그 아이는 먼저 말을 걸어주었다. "야 나 너랑 동갑인거 알아?""어.""나랑 친구하기 싫어?""별로""뭐야 나 여기에 친구 없는데 너라도 친구해주지""왜 친구가 없냐 여자애들있잖아.""걔네는 나랑 잘 안놀아. 이사온지는 몇 년 됐는데, 내가 미사만 드리고 집에가는 편이라.""나도 미사만 드려서 친구 없다."
뭐 이런 시덥잖은 이야기 들이었는데 십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말 한마디 한마디가 기억날 정도로 떨리는 대화였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 듣게 된 말이었다."나 어차피 내년에 다시 강원도로 이사가는데 그 때까지만 친구하자". 무표정으로 일관했지만 뭔가 마음 한 구석이 무너질 거 같은 이야기였다. 다시 강원도로 이사간다니, 이제야 말을 튼다고 생각했는데 무너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이 날을 계기로 우리는 번호도 교환하고 같이 등교하는 사이가 되었다. 동인천에는 제물포고와 인일여고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는데, 나는 제고에 다녔고 그 아이는 인일여고에 다녔다. 둘 다 화도진이라는 곳에 살았기에 아침에 만나서 학교까지 걷곤 했다. 그 해 겨울은 무척 추웠다는데, 나는 지금도 그 해 겨울이 추웠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교는 같이 못했지만 등교라도 같이 하던 어느 날 그 아이가 말했다. 
"내 생일에 뭐해줄거야?""생일?""12월 28일이 내 생일이잖아. 설마 몰랐어?"
알리가 없었다. 나는 청소년 미사때마다 잠만자는 아이였기에 광고시간에 뭘 들은 기억이 없었다. 
"케이크 사줄게.""진짜? 약속한거다. 와 나 케이크 받아보는 거 처음이야.""무슨 생일에 케이크도 못받아보냐. 얼마나 한다고.""야 케이크 비싸. 나 초코케잌 사줘. 먹어보고 싶어. 아니다 생크림 사줘. 아 둘 다 먹고 싶은데.""다음에는 생크림 사줄게."
순간 정적이 흘렀다. 아마 서로 내년부터는 못볼 거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한 탓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 아이는 말했다. 
"다음에 생크림 케잌 사주기로 한거다? 약속이야."
그 해 생일은 내가 초코케잌을 사주며 성당 친구들과 그 아이 집에서 생일파티를 하는 것으로 지나갔다. 서로 마음속에 있는 말이었겠지만 다음엔 생크림 케잌을 사주기로 한 약속에 대한 말은 이사가는 순간까지 꺼내지 않았다. 그 다음이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서로 했을 것이다. 그렇게 그 아이는 떠났고, 나는 서울에 대학을 진학하게 되었다.그렇게 첫사랑은 지나갔다. 그 사이 대학에서 여자친구도 만들어봤고 헤어져도 봤다. 매년 12월 28일에 괜히 전화해보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는 나지 않았다. 의대를 졸업했기에 6년이란 시간과 레지던트까지 총 10년이란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 아이에 대한 기억도 희미해져갔다.
난 산부인과를 전공했기에 군의관 대신 공보의를 지냈다. 그리고 속초로 가게 되었다. 문득 속초라는 지명을 듣자 그 아이가 양양출신이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한 번 그 아이에 대한 생각이 나니 그 생각이 멈추지를 않았다. 그러나 그 아이가 사는 곳, 전화번호 하나 알 수 없었고 그 아이에 대한 단서는 오직 그 아이 집안이 모두 천주교라는 사실 하나였다. 그런데 그 사실 하나가 생각보다 좋은 증거였다. 성당은 교회처럼 난립한 형태가 아니라 지역별로 교구를 정해서 설치하기 때문에 매 주 양양지역 성당을 돌기 시작했다. 만날 수 있다는 확신도 있었다. 그러나 그 아이도 10년이라는 시간동안 어디론가 가버렸을까, 결국 양양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그렇게 양양지역에서 찾지 못하고 속초의 한 성당을 갔을 때 그 아이의 아버지를 어렴풋이 보게 되었다. 그 아이의 아버지를 보자마자 몸에 전기가 흐르는 듯 했다. 
'그 아이는 지금 이 성당에 다닌다.'확신이 들었다. 무조건 여기에 있는게 확실했다.

그러나 10년만에 앞에 나타난 다는 것은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했다. 그 아이가 남자친구가 생겼을까, 어떻게 변했을까, 날 반기지 않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10년만에 다시 타오르는 마음을 끌 만큼은 아니었고, 내 나름의 이벤트를 준비하기로 했다.
2012년 12월 28일, 나는 생크림 케잌을 사들고 금요일 미사에 찾아갔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항상 금요일마다 미사를 드리는 걸 알고 있었기에 무작정 케잌을 들고 찾아갔다. 다행히 그 아이의 아버지는 있었지만, 그 아이는 없었다. 10년만에 만난 염치불구하고 무작정 물었다. 
"ㅇㅇ이는 어디에 있나요?""너 혹시 ㅁㅁ이 아니냐?, 너가 여기는 왜..""오랜만입니다. 지금 ㅇㅇ이 어딨나요? 약속이 있어서 그런데."
내가 급한 말투로 묻자 미사가 끝나자마자 아버님이 앞서 그 아이의 집에 가게 되었다. 하필 눈이 지독하게 내려서 그 짧은 거리가 1시간도 더 걸렸다. 아이는 집에 없었고 나는 무작정 기다리기로 했다.저녁 먹을 시간에도 오지 않았고, 8시 9시 10시.. 오지 않았다. 두려웠다. 혹시 남자친구 만나러 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그냥 돌아갈까 10번도 넘게 생각이 들었지만 이왕 남자가 칼을 뽑은 것 무라도 썰자는 기분으로 기다렸다.
그리고 11시 30분, 그 아이가 나타났다. 눈 때문에 늦은 모양이었다.대문앞에 서서 서있으니 그 아이의 눈이 동그래지는 것이 보였다. 그 아이가 먼저 말을 꺼내려 할 때 10년만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이번엔 생크림 케잌인데, 같이 먹을래?"

-

내 아내는 그렇게 어렵게 내 곁에 와주었다. 다시 만난 그 날 부터 공보의 하는 내내 자주 만나며 교제하면서 결혼까지 골인할 수 있었다.아내는 현재 인천에서 빵집을 하고 있다. 다시 만났을 때, 이미 대학을 졸업했지만 늦게나마 제빵기능사를 딴 후였고 날 만난 이후에도 모은 돈으로 조그마한 빵집을 내더니 지금은 프랜차이즈 빵집 사장님이시다. 수익은 솔직히.. 뭐 내가 열심히 벌면 된다.
생각해보면 정말 영화같은 만남이었다고 어딜가든 자랑하고 다니고 있다.비록 관객도 극장도 없는 그런 영화겠지만, 난 평생 소장하고 다닐 영화임에는 틀림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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